난춘의 이름은 난춘

그리고 그 봄의 이름이 청춘이 되길

by 델리만쥬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회사에 와서도 그렇고, 뭐라고 해야 할까. 그냥 만나는 네트워크 수가 너무 많다. 대학교 1,2학년 1학기 정도까지는 네트워크 수가 많진 않지만, 네트워크 하나당 달린 노드 수가 꽤 되는 편이었다면 이제는 그냥 노드 수가 적던 많던 네트워크 수 자체가 많아진 것 같다. 전화포비아가, 억지로 없어진 케이스에 속하게 됐다. 전화를 안 받으면, 일처리가 안 되는 그런 급박함이, 내 겁을 이겼어.


그런 와중에도, 귀한 네트워크들이 있다. 함부로 '네트워크'라는 인위적인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은 친구들이다. 코로나 학번 특성상 대학 동기보다 중,고등학교, 특히 고등학교 친구들이 훨씬 친할 수밖에 없는데 (뭐 나만 그렇다면 .... 슬픈 일이고) , 이 무리는 두 달여 전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재회한 동창까지 합쳐 5명이 됐다. 나까지 포함하면 6명.


어제 이 중 큰일을 치렀던 한 친구와 거의 4시간을 통화했다. 각자의 고민이 너무나도 많았고, 놀랍게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마다 환경도 뭣도 전부 다 다르다지만, 친구끼리 닮는 것도 사실이구나 싶었다.


우울의 늪을 지나 2023년 1학기를 휴학한 이후, 2023년 2학기를 7학기(홀수 학기)로 복학하며 괴상한 엇학기가 된 나는 어영부영 7학기를 마쳤다. 조금이라도 또 의욕 넘치게 시작하면서, 일 벌이고 다녔다가는 또다시 축 쳐진 우울의 늪에 제발로 걸어들어가게 될까봐,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는 방향으로 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예전 같으면 이것저것 또 해봤겠지만 이번엔 그냥 '무사히 다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아무도 못 믿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저 가만히', '숨만 쉬면서 다니는' 게 하나의 도전이었다. 대학 입학도 전부터 왜인지 모를 낮은 자존감에, 소위 말하는 '자격지심'에 시달리던 사람인지라 1학년 때부터 미친 듯이 뭐든 찾아다녔다. 없는 활동을 긁어내 지원하고 활동하고 알바를 하러 다녔던 사람이 나다. 다시 말해 절대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따지고 보면, 나는 수시원서 전부 다 학생부 종합전형이었다.


그런 '본투비 나대는 애'인 나한테, 가만히 다니는 건, 그것도 남들이 말려서가 아닌, 내 스스로를 위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우면서 큰 도전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본 적이 없다. 일단 남들이 알바 하나씩은 다 하니까, 남들이 공부하니까, 남들이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이런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저런 음식을 먹고 어떤 운동을 하러 다니니까, 그걸 다 하려고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그 과정을, 남들은 '갓생'이라고 했다. 나는 갓생을 산 게 아니다. 그냥, 남들이 하는 걸 전부 따라하느라 다리 찢어지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런데, 하다 보니 또 뭔가를 '하는' 재미가 있는 활동들이 있었고, 이를 초점으로 활동해온 것뿐.


그런 내가, '나의 상태'를 들여다보며, 기존의 내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얘기를 한 학기였던 거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집에 가려는데 눈앞에 따릉이가 보여서, 학교에서부터 집까지 엉덩이가 배기도록 21km를 넘게 자전거를 타면서, 한강뷰를 보고, 버스에서 보던 한강 합수부를 자전거로 지나가는 경험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빨리 가서 다른 거 하기 바빴을 나였다.


스스로의 상태에 대한 진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다. 넌 지금, 쉬고 싶어서 우울한 '척'을 하는 건 아니냐고, 아니 너무 힘들었는데, 또 힘들기 싫다고, 내 안에서 수많은 자아가 나뉘어 싸웠다. 그런 싸움 중에, 나중에 진단을 하고 말지,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간 그 경험은 스스로 다시 없을 청춘의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내가, 나에게 준 최초의 청춘 정도 되겠다. 그 이후, 혼코딩, 작업 등을 할 때마다 가던 메X커피 같은 저가형 카페가 아닌, 처음으로 백팩과 노트북을 들지 않고, 오로지 읽을 책만 한 권 들고 꽤나 유명한 개인카페에 가봤다. 내 돈으로 아이패드 케이스와 귀여운 폰케이스도 사고, 내가 '나랑은 안 어울린다'는 핑계로 억압해 뒀던 나를 마음껏 표출하고 다녔다. 지금도 진행형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안 했나 싶다, 지금까지.


당연하게도 청춘에는 고민이 가득하다. 사랑 하나조차도 낭만으로 오롯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아니 낭만으로 받아들여지다가도 결국은 난춘(亂춘)이 되는 시기가 대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청춘이기에,

'120세 시대'라는 말처럼 장수하는 것이 기본이 된 이 세기에 청춘의 시간을 갈아 해내는 것으로 장수 여부부터,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그 조건들이 정해지기에.


그런데 그 과정에, 약간의 '청'은 있어도 되지 않을까. 어지럽기만 한 난춘보다는, 따뜻한(暖) 청춘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우린 모두, 낭만을 먹고 자라나는 청춘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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