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리도 운이 없었던 어제 하루에 대한 단상
어제, 2월 4일, 수요일.
유난히 일이 자주 어긋났다.
아침 9시 연구실 미팅은 취소됐고, 10시 줌엔 다른 회사 분들이 출장으로 거의 참석하지 못하셨으며, 개인 일정을 위해 나가던 길 눈앞에서 열차를 놓쳤고, 일정이 평소보다 늦게 끝났다.
이 정도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따뜻한 게 먹고 싶어 들른 죽집에선 주문이 밀렸다며 저녁 식사시간도 늦어졌고, 급하게 탄 열차는 반대 방향 열차였다. 집까지 30분은 족히 더 걸리는 길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밤 10시가 다 돼서, 씻고 쉬어야겠다 싶었는데 샴푸칠을 끝내자마자 물줄기가 약해지는가 싶더니 물이 끊겼다. 동파될 날씨는 아닌데, 싶었는데 확인해보니 정수기도 싱크대도 물이 안 나온단다. 알고 보니 아파트 전체 수도 밸브?가 고장난 거라 했다. 언제 고쳐질지 모른다는 말을 듣는 순간 다음 날의 일정이 생각났다. 아침에 씻을 시간이 없네, 싶어 생수로 머리를 마저 감았다.
이런 날을 두고 사람들은 보통은 머피의 법칙, 으로 퉁친다. 여기서 일부는 “그래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평소의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 등으로, '감사' 혹은 '우울해도 웃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멋진 모습이지만.. 그 말들이 오늘의 상태를 설명해 주지는 못했다.
나는 다행이라는 말보다, 이 하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는 쪽에 더 가까웠다.
‘내가 나로 살 수 있다면 재가 된대도 난 좋아’
르세라핌의 노래 HOT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사실 그리 취향인 노래는 아니지만, 저 가사는 유독 마음에 조금 걸렸다. 그렇게 참신한 말은 아닌데도. 재가 된다는 건,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뜻 아닌가? 내가 재는 아닌데 말이다. 형태도, 온기도, 지속성도 없는 상태.
그런데 어떻게 “내가 나로 살 수 있다면”과 “재가 되어도 괜찮다”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을까. 분명 논리적으로는 모순이며 감정적으로는 강렬하다. 그래서 더 자주 인용되는 문장일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가사는 ‘결과’를 말하려는 문장이 아니다. 재가 되겠다는 말은 존재의 끝을 말한다기보다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각오에 가깝다. 인정받지 못해도, 남는 게 없어도, 흔적이 지워져도 그 선택만은 내가 하겠다는 선언.
그래서 이 문장은 맞느냐 틀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나는, 그 말에 끝까지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나는 ‘나로 산다’는 것이 완전히 사라질 준비를 마쳤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은 남고 싶다.
이야기라도, 문장이라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걸리는 무엇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재가 되겠다는 말 앞에서 자꾸 멈칫하게 되고, 불타는 선택보다 지속되는 선택에 더 마음이 간다.
어제는 운이 없었다. 그 사실을 다른 말로 바꾸고 싶지 않다.
다만, 우리는 왜 자꾸 하루를 의미로 정리하려고 할까. 왜 설명 가능한 상태로 만들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걸까. 이런 의문은 남는다.
어떤 날은 그냥 엉망인 채로 끝나도 된다.
재가 되지도, 교훈이 되지도 않고 그저 지나가는 하루로, 말이다.
그냥,그런 날이었다.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날.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날.
그리고 어쩌면 나로 산다는 건 불타겠다는 선언보다, 이런 날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