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안 중요하진 않지만요..
틀린 말은 아니다.
보상은 분명 중요하다-연봉이 너무 낮으면 사람은 떠난다.
하지만 조직을 조금 더 오래 관찰하다 보면 조금 다른 장면이 보인다.
사람은 돈 때문에 들어오지만, 인정 때문에 남는다.
1. 사람을 오래 붙잡는 건 의외로 사소한 말이다
어떤 조직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그거 네가 잘한 거야.”
“한 건 했네?”
“이건 네 덕분에 된 일이다.”
아주 짧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반복되는 조직에서는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행동한다.
의견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하고, 실수를 조금 덜 두려워하고,어떤 일에 책임을 지는 것을
조금 덜 피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보이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일이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는 느낌.
이 두 가지가 생기면 사람은 이상하게도 조금 더 버티는 걸 봤다.
2. 인정은 생각보다 구체적일 때 힘이 있다
“수고했다”는 말은 꽤 자주 등장하지만, 생각보다 오래 기억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이런 말은 오래 남는다.
“아까 회의에서 그 질문 좋았어.” “네가 정리해준 자료 덕분에 흐름이 잡혔어.”
“그 상황에서 그렇게 판단한 건 괜찮은 선택이었어.” "정리가 많이 개선됐어." 같은 것들.
이 말들의 공통점은 하나라고 생각한다 - 구체적이다.
사람은 자신이 정확히 어떤 행동으로 조직에 기여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 그 경험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 행동을 바꾼다.
“아, 내가 이런 방식으로 도움이 될 수 있구나.”
그러면 사람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한다.
3. 인정이 없는 조직의 공기
반대로 인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조직도 있다.
이런 조직에서는 대화의 대부분이 문제 중심으로 흐른다.
“이거 왜 이렇게 됐지?” “이 부분 다시 해야겠는데.” "그래서 원인이 뭔데?" “이건 아직 부족해.”
물론 문제를 짚는 건 필요하다.
조직은 결국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만 계속 이야기되면, 구성원들은 조금씩 조심스러워진다.
회의에서 말을 줄이고, 새로운 시도를 덜 하고,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사람은,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이 더 크게 보이는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방어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4. 인정은 의외로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조직에서 가장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인정이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자원이라는 점이다.
연봉을 올리는 건 쉽지 않다. 보너스를 주는 것도 조건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여를 한 문장으로 짚어주는 일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많은 조직에서 이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왜일까. 조직마다 특성이 다를 테니 섣불리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인정이 그렇게 큰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실제로 작은 인정 하나가 사람의 하루를 바꾸기도 한다. 그리고 그 하루들이 쌓이면 사람이 조직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진다.
5. 내가 기억하는 몇 문장
어떤 문장은 생각보다 여운이 길다.
가령, 작년 이맘때쯤 일이다. 회사 개발 업무 인턴 분이 처음 오신 상태였고, 내가 이런저런 안내를 해 드리면서 내가 맡은 task를 정리한 ppt를 보내드렸었다.
그땐 회사에서 태스크를 맡은지 6개월이 채 안 된, 그마저도 풀타임 근무가 아닌, 대학원 1기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대표님이 '이전 기록하던 것에 비해 많이 깔끔해졌다'고 칭찬해주셨었다.
그 한마디가 '내가 정말 나아지고 있긴 하구나'를 체감하면서, 지금까지 남아 있게 만든 원동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연구실에서도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2024년에 작업하던 연구 주제를 작년 하반기 PAKDD라는 학회에 투고하면서 올해 2월 억셉 알림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는데, 그때 모두가 "너 아니었으면 우리 촬영스튜디오 대관비 그냥 날렸을 거다"라고 해줬다. 리비전*은 그 말이 준 힘으로 버텼지 않나 싶다.
* revision: 억셉 이후, 익명화를 풀고 받은 리뷰를 기반으로 논문을 보완하는 작업
반대로 내가 그 말을 '해야 하는' 학원이라는 조직도 있다. 그래서 같은 수학 문제 하나지만, 애들 한 명 한 명 그 '인정'을 과도하지 않은 선에서 해주고자 고민을 많이 한다. 가령, “이건 아직 부족하지만 방향은 맞다.”던가 "여기까진 잘 했는데, 여기서 실수를 했네. 다 왔다!"라던가.
실패를 완전히 실패로 만들지 않고자, 그래서 학생이 다시 시도할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말들.
그래서 나는 조직을 떠올릴 때 종종 그 조직의 문장을 같이 떠올리려고 한다. 어떤 조직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문장이 많았고, 어떤 조직은 사람을 조금 더 과감하게 만드는 문장이 많았다.
6. 인정은 리더의 언어에서 시작된다
조직의 분위기는 결국 위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리더가 어떤 말을 반복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서로에게 사용하는 언어도 바뀐다. 리더가 계속 "책임자 누구야?”라는 말을 반복하면 사람들은 실수를 숨기기 시작한다. 자연스러운 방어기제다.
반대로 “이건 누가 잘했지?”라는 질문이 자주 나오면 사람들은 서로의 기여를 더 자주 보게 된다. 일종의 선의의 경쟁이 시작되는 것. 그래서 인정이라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언어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언어가 반복되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도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과제 개시, 제안서 작성, 회사 SNS 담당 등 여러 task가 겹쳐진 요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
오늘 이 조직은 누구를 인정했는가.
그리고 동시에 이 질문도 같이 떠올린다. 나는 오늘 누구를 인정했는가. 내 동료를 인정했는가.
조직은 거대한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문장들로 조금씩 만들어지니까.
다음 글에서는 조직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장면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람들이 왜 ‘능력’보다 ‘안전한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