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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yfish Jun 20. 2024

그림 그리기가 어려운 미술선생님?

그냥 그리면 되지, 왜 어렵지?


"우와. 잘했네? 잠깐 이리로 나와볼래? 애들한테도 보여주자."


반 대표로 포스터 그리기를 지원한 나의 그림을 보고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난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가리며, 선생님 책상 앞에서 일어나 교단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미소가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밤새 정성껏 그린 내 그림이 교실 바닥에 팽개쳐졌다.


툭.


그림은 밤새 정성껏 그린 노력이 무색하리라만큼, 내 발 밑으로 떨어졌다.


심각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화려한 무늬의 형광 핑크 나시티와 쇼트 팬츠. 하필 난 오늘 왜 이런 옷을 입은 걸까?


Wonder의 한 페이지. 공감하며 그린 이유


"OO이가 이런 그림을 그려왔어. 우리 반 대표로 한 명 밖에 없는데, 이걸 어떻게 내니? 우리 반 망신이다. 어떡하니."


딱히 해결책이 없는 어린 나이의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서 있었다.


내가 잘못한 건가? 미안해해야 하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어떤 감정이 이 상황에 합당한 지 이성의 끈을 붙잡으려 했다. 선생님은 그런 나의 노력이 쓸데없다는 듯, "왜 거기 서 있어? 들어가!"


내 자리로 서둘러 걸어갔다.


"야, 그림 치워! 거기 두면 어떡해? 그건 내지도 못해."


다시 서둘러 교실 앞으로 가서 초라한 내 그림을 가지고 들어왔다.




초등학교 2학년? 3학년? 그때 즈음의 일이다.


자존감이 뭔지도 잘 몰랐을 적. 그녀에게 짓밟힌 것이 내 자존감이란 걸 깨달았다. 그때 느꼈던 분노란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때 전까지만 해도, 난 그림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 날 이후 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아니, 못 그렸다.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자꾸 힘이 들어가고, 그때 느꼈던 수치심이 떠올랐다.


어린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 중에 하나였는데, 그게 없어져버렸다. 날개 잘린 새처럼 뒤뚱뒤뚱 걷는 느낌이었다.


결국 미술 전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은 욕구를 누를 수는 없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도 미술 전공을 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았다. 바로 조소과.


미술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을까 계속 외면했다. 영어를 잘하니, 번역도 해보고, 무역회사에도 취직했다. 디자인 전공도 해봤다.


하지만, 꿈은 꺾이지가 않았다. 물고기는 바다에서 살아야지, 아무리 노력해도 나무를 오를 수는 없는 법.


결국 먼 길을 돌고 돌아 29살의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소묘, 입시 미술이 필요 없는 길을 찾았다.


작품을 만들 때도 스케치를 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그날의 일을 떠올린다.


이제는 다 치유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녀를 만나 이 말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화가 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난다. 왜 그냥 그렇게 서 있었던 거야?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정확히 어떻게 그리라고 가이드라인을 주셨나요? 주제만 줬잖아요. 짧은 기한(하루) 내에 제가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린 거예요. 그리고, 맘에 안 드신다고 해도,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상처되는 말을 꼭 해셔야 하나요?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게 뭐죠?


당신이 말한 그 한 마디로 난 다른 길을 갔어요. 그땐 너무 어려서 나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도 몰랐고, 당신이 말한 그게 언어폭력이란 것도 몰랐어요. 나이가 많고, 교사라고 해서 학생에게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학생 또한 인격체입니다."




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난 그녀와 정반대의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고 해도, 교사의 표정, 말투, 손짓, 눈빛 하나하나를 모두 느끼고 기억한다.


"난 그림 그려요.", "못하겠어요."라고 그림 그리기를 주저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릴 때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이렇게 같이 해보자."라며, 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때면, 상처받은 어린 나의 마음도 같이 치유가 되는 것 같다.


점점 주저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이 아이들 덕분에 나도 수업할 때만큼은 주저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


그렇게 해온 지 벌써 6년 차. 상처는 단단해졌다. 그림을 즐겨 그리진 않지만, 그리기가 무섭진 않다.


어린 내게 상처를 줬던 그 한 번의 기억보다, 즐겁고 기쁜 기억이 훨씬 많다.


아이들과의 시간은 내게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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