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태어나지 않는다

낭만주의자의 자본주의사회 생존기 (10 - 2024, 가을2)

by 레브뉘

1) 아기 리더의 분투


"박PD는 나중에 딱 박PD같은 후배를 만나봐야 해."


한 선배가 내게 날린 애정어린 조언이었다. 자아가 강했던 나는 어지간해서는 상사 말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장이 되고 다행히(?) '나 같은' 팀원을 만난 적은 없다. 팀원 복이 좋았던 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차라리 나같은 후배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서른둘. 급작스러운 승진은 나를 곧바로 외로운 전쟁터로 밀어 넣었다. 어제까지 함께 웃고 울던 동료들이 한 순간에 돌아서는 경험을 했다. "너 어디 잘하나 두고 보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은 회사 안에는 별로 없더라. 그저 운 좋게 자리를 얻었다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실장님이 회사를 떠나고 승진 기회를 얻기는 했지만, 폐지될 뻔했던 팀을 지켜낸 건 오롯이 내 노력 덕분이었는데도.


팀장이 되자 위아래로 치이는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실장님의 우산이 없어진 빈 자리에서 오롯이 혼자 맞아내는 비는 너무 차가웠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었던 대표님의 실적 압박은 무겁기만 했고, 아티스틱한 작가와 감독의 멘탈 관리도 버겁기만 했다. 여기에 팀원의 멘탈 관리까지 더해졌다. 매니지먼트가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그런데 내 멘탈은 대체 누가 관리해주나.


저렇게 되고싶다고 생각한 상사보다,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생각한 상사가 훨씬 더 많았던. 눈물에 젖은 지난날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에는 리더 교육이 따로 없었고, 지금껏 그래왔듯 혼자 분투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직을 떠나 리더가 된 선배 PD님들을 찾아가 고민 상담을 했다. 트레바리 등 소셜 살롱 적극 활용했고, 수 년동안 연락이 없었던 과거 동아리 회장들까지 찾아갈 정도로 절박했다.


23년 말. 결국 멘탈이 약했던, 묵묵히 속으로만 삭히던 팀원이 떠나갔다. 방송사로 이직했던 후배 때는 타격이 크지 않았는데, 이번엔 너무 힘이 빠졌다. 하필 때마침 바뀐 대표님은 조직관리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팀원이 나가지 않게 붙잡는 것도 네 능력'이라고 냉정하게 충고하셨다. 누가 모르나.


팀원이 떠나가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건 결국 나다. 내 멘탈을 돌아볼 새도 없이, 당장 조직관리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체득해 건강한 조직을 일구어나가야했다. 물론 팀원이 있을 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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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팀원 없이 홀로 지내던 시기를 지나, 협회에서 교육생 둘을 받았다. 너무 다른 성향의 두 교육생. 교육 기간이 끝나갈 무렵, 대표님은 홀로 고군분투하는 나를 안타깝게 여겨 사람을 뽑아주겠다고 했다. 다만 둘 다 정규직으로 들일 수는 없었다. 그 당시는 전사 인원을 감축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그런데 한 명을 뽑았다가 또 나가면 어쩌지. 신입사원을 도대체 몇 번이나 가르쳐야 하는 거야. 결국 나는 둘 중 한명을 선택하지 못하고, 둘 다 정규직이 아닌 채용형인턴으로 전환하는 것을 선택했다.


결국 안정성 이슈로 한 명이 일찍 떠나갔다. "이 월급을 받고 일하면서, 6개월 뒤에 잘릴지도 모르는데. 그럼 차라리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계속 도전하는 게 낫겠어요." 나머지 한 명에게도 출근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전환 불가 통보를 했다. 조직에 대한 실망감으로 이미 마음이 떠난 후배의 눈은 바싹 말라있었다. 그 앞에서 결국 눈물을 보인 건 나였다. 나는 또다시 실패한 리더라는 트라우마를 안은 채, 완전히 홀로 남겨졌다.


2) 선배 리더들의 발자취를 따라


24년 가을, 리더십과 조직관리 수업을 들었다. 팀원이 떠나고 다시 홀로 된 암흑의 시간이었지만, 이번에는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MBA에서 얻은 선배 리더들 덕분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매 주차 리더십 관련 이야기거리를 던져주셨다. 평균 재직년차 10년의 동기들, 즉 수많은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생생한 경험담을 나누었다. 교수님의 수업 내용도 좋았지만, 사실 찾아보려면 시중 자기계발서나 유튜브를 보고 알 수도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동기들의 생생한 리더십 경험담, 회사 안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었던 피가되고 살이 된 선배 리더들의 조언들은 MBA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얻을 수 있었을까.


MBA의 꽃은 네트워킹이라 하지만, 단지 술자리를 많이 한다고 네트워킹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술자리보다는 이렇게 수업시간 토론을 하고,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서로의 가치관과 성향을 깊이 체득하는 경우가 훨씬 중요했다.


원우회 활동도 그 연장선이었다. '나도 남이 기획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싶다'고 늘 말하고 다녔지만, 내가 직접 기획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행사들에서 얻은 배움의 깊이가 달랐다. 행사를 준비하며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원우들의 전문성에 감탄했고, 인간적으로 더 깊이 다가서며 견고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가을학기 기수 연합 개강총회는 그 네트워킹 경험의 하이라이트였다. 계획에 없던 원우회의 절정이긴 했지만.


종강 MT를 준비하며, 손발이 잘 맞아가던 1학년 원우회였다. 그런데 타 기수와 연합 행사 기획을 하면서 다시 삐그덕거리기 시작했다. 선배 기수가 주도하는 100명이 넘는 대규모 행사였다. 진행 상황이 빠르게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1학년 기획부에서는 불만이 쌓여갔고, 특히 대문자 J들이 극도로 불안해했다.

"우리가 하청 용역 업체는 아니잖아?"


불만이 터지려는 직전, 부장님께서 가스라이팅(positive)을 시전하시며 우리를 다독이셨다. 우리가 주도할 연합 신년회 때는 그러지 않으면 된다고. 그러나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에게, 무보수로 회사를 하나 더 다니는 것 같은 원우회 활동은 후순위로 밀리는 숙명을 가진 걸까. 원우회 내에서도 동기부여 이슈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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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수업을 통해 비로소 내가 겪은 고통이 개인의 무능이 아닌 조직 시스템의 문제였음을 진단할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된 대기업 계열사지만, 50명 이하의 소규모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내가 속한 조직은 스타트업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마침 조별 과제에서 이러한 스타트업 구성원들의 동기 부여 전략을 다루었고, 나는 곧장 내 조직에 적용할 해답을 찾았다.


팀원들을 떠나가지 않게 만들 구체적인 방법은 명쾌했다. 스타트업 구성원들이 제일 선호하는 주도적인 몰입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가 진행되는 우리 조직 특성상, 각 프로젝트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구성원들을 활기차게 만드는 최고의 전략이었다.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업무를 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러나 어쩌나. 나는 대표가 아닌 걸.


좋은 조직의 청사진을 그릴수록, 내 손으로 직접 이 시스템을 설계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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