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쿠션을 버렸다

실재와 상징 사이에 있는 글

by 정젤리



실재 없이는 상징을 받아들이기 어렵던 날들이 지났어도 여전히 뒤를 돌아보는 나를 위해 적는 글.


나는 학부 때 복수전공으로 의류학을 전공했다.
너무 하고 싶었던 공부였어서 복수전공을 시작했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거의 여기에 몰두했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띄엄띄엄 사진처럼 넘겨짚는 기억이지만
그때 만난 언니들이랑 그 시절 얘기를 한다면 반나절 넘게 같은 얘기를 반복할 수도 있다. 시절이라는 단어를 골라 적을 정도로 같이 보낸 시간은 길기도 길었지만 퍽 촘촘하기도 했다. 핀쿠션에 꽂힌 시침핀처럼.

의류학과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필요한 준비물이 많다. 필요한 실과 바늘, 초크 등은 물론이고 가위도 재단가위와 쪽가위로 두 가지나 챙겨야 했다. 재봉틀을 위한 도구들도 잔뜩이었다. 재봉틀 바늘도 호수별로 있었고 북과 북집, 노루발, 노루발을 바꿔 끼우기 위한 작은 드라이버도 갖고 다녔다. 그래서 커다란 3단 공구함은 재단지가 든 지통과 함께 그 시절 내 필수품이었다. 수업을 듣는 동안 내게 필요한 것들은 거진 공구함에 있었다.

그리고 핀쿠션은 내게 그 공구함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실이나 바늘, 자 등 다른 재료들은 그 색깔과 형태가 정해져 있어서 고르는 데 망설임은커녕 고를 것까지도 없었지만, 핀쿠션은 색상이나 무늬 등이 다양해서 나름대로 취향을 반영할 수 있었다. 이 핀쿠션은 분홍색에 하트무늬가 있는 것으로 당시의 내 취향에 퍼즐처럼 들어맞았다. 투명한 공구함 뚜껑 너머로 보이는 토실토실한 핀쿠션이 얼마나 예뻐 보였던지 모른다.

그리고 핀쿠션 특성상 손목에 시계마냥 매달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면 마치 동화책 속의 어느 재단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당시 동경하던 어느 유명한 디자이너가 된 기분도 들었다. 특히 바디(몸통만 있는 천으로 된 마네킹) 에 광목을 감으면서 손목에 있는 핀쿠션에서 시침핀을 뺄 때의 그 멋짐이란! 오후 세 시 수업이 시작하기 전 두 시 반 즈음부터 가서 멀쩡한 재봉틀 앞에 자리를 잡고 핀쿠션을 손목에 매달고 나면 초라하고 과제에 찌든 내 그림자조차 유리병을 통과한 오후 햇볕처럼 찬란하게 보였다.
나는 핀쿠션의 그림자까지 숭배할 지경이었다.

늦은 밤 정신없이 탄 지하철 안에서 손목에 달린 핀쿠션과 뜻밖의 조우를 하는 날도 많았다. 어느 날은 쑥스러워 허겁지겁 감추었지만 또 어느 날은 자랑스러워서 모르는 척 지하철 손잡이를 잡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정말 참! 남사스러운 일이다.


군데군데 수놓은 것 같이 보이는 패치들은 정말 낡은 부분을 '땜빵' 하기 위해 바느질한 것이다. 시침핀이나 굵기가 다른 바늘들이 하도 왔다갔다하니 자연스럽게 낡아 내장재가 빠져나오게 생겼다. 동대문 종합상가 원단시장에 원단을 사러 갈 때 원단 스와치(원단 샘플 모음을 그렇게 불렀다)를 가져다가 어울리는 색깔 천을 오려 기웠다. 짬나는 대로 했기 때문에 핀쿠션을 바느질하던 바늘이 실을 매단 채로 핀쿠션에 꽂혀 있기도 했다. 내 바느질 솜씨는 손바느질과 재봉틀 다루기 어느 쪽을 봐도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뿌듯했다.

생각해보면 핀쿠션 하나에 이천 원인가 삼천 원인가 했고 나는 동대문에를 자주 갔으니 하나 샀어도 될 텐데, 애착이 이렇게 사람을 즐겁고 이상하게 만들었다.




함께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핀쿠션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다른 진로를 선택하고 나자 자연스럽게 나와 멀어졌다. 공구함 통째로 책상 밑에 두고 거의 몇 년을 찾을 일이 없었다. 색연필 세트와 각종 두께와 색깔의 종이들과 먹으로 물들인 신문지 따위가 나의 새로운 보물이 되었다. 사실 학부의 전공을 따라서 잠깐 갔던 회사에서도 나는 핀쿠션보다는 도식화를 그리는 태블릿과 훨씬 더 가까이 지냈다.


그런 핀쿠션을 다시 발견한 것은 결혼하고 원래 있던 내 방을 완전히 정리하면서다. 그러고도 지금 집에 와서 한동안 공구통 안에 있던 것을 이제야 들여다보게 되었다. 마지막 등교를 끝내고 통째로 넣어둔 공구함 안에, 핀쿠션은 그 시절 그대로 동그랗게 앉아있었다.
고작 반 뼘 짜리 물건인데 이렇게 이어 붙일 글자가 많다니. 바늘들과 시침핀들을 빼내면서 나는 우리끼리만 알았고 이제 나도 잊어 핀쿠션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핀쿠션은 옛날 모습 그대로인 외관과 달리 낡고 구멍 나고 내장재도 왜인지 모르게 딱딱해져서 더 이상 핀쿠션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되었다. 고무줄도 헐거워지고 시침핀들도 재봉틀 위를 오가며 낡아 녹이 슬어간다. 핀들을 빼낸 자리마다 까만 녹이 슬었다. 특히 재봉틀 바늘을 꽂아두었던 곳이 가장 그랬다. 달리 방법이 없었으므로 한때 핀쿠션이었던 물건은 고요히 자신의 역할을 다음 핀쿠션에게 넘겼다. 사실 그의 자리는 공구함 속이 아니라 내 옆이었으므로 진작에 시간이 그의 자리를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물건 정리를 할 때는 이제 필요에 의한 물건들만 두겠다며 단호했는데, 막상 이제 실존하는 물건이 아닌 기억만 가지고 글을 쓰려니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물건뿐 아니라 물건이 가진 시간까지 버린 것 같다. 포트폴리오와 졸업작품을 버릴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는데 그것도 웃기네.


그래도 따분한 말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은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핀쿠션 하나 버린 거 가지고 늘어놓는 이 구구절절한 이야기다. 우리끼리만 아는 구전설화가 우리를 몇 번이고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나는 그 반들반들해져 가는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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