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적는 고마움에 대한 고찰.
(이라고 쓰지만 사실은 생각의 엔트로피의 나열)
있잖아 는 머뭇머뭇한 말걸기의 서두다.
나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만연체인 사람이라서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를 즐기지 못한다.
즐기지 않는다 라는 표현 대신에 굳이 못한다 를 썼다.
(물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월플라워라는 표현이 있다.
엠마 왓슨이 나온 영화 제목이기도 한데, 사교 파티에서 춤신청을 받지 못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혼자 여는 파티에서조차 늘 월플라워였다.
초라한 유년기와 기대에 못 미치는 사춘기를 보내고
급류에 휘말리듯 20대 어느 즈음
거울 앞에 선 나는 보통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나는 서러웠지만 울 만큼은 아니었다.
나이를 먹으며 좀 괜찮은 겉면을 바르는 법을 배웠다.
일부러 배운 건 아니고 그냥 그렇게 되었다.
즐겁고 유쾌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괜찮은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때로 저 구석에 월플라워로 있는 나를 생각했다. 생각 속의 그는 무심하고 나는 초조했다.
나는 본디 소심한 사람이었다.
있잖아, 그래서 나는 당신이 고맙다.
이 글을 더 친해지고 싶어 - 로 끝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당신이 읽는 내 글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면 좋겠다.
참 감사하게도 나는 소중한 사람을 몇몇 만났다.
누군가는 오래되었고
누군가는 퍽 다정하며
누군가는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특별히 오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당신에게 고마운 이유는
오늘 내가 있던 그 자리 어디에도
월플라워인 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날 아니어도
나도 꽃다발 속에 자연스레 섞이는 꽃도 될 수 있다.
알을 깨고 나온 세상은 선연하다
물론 다른 어느 날 나는 다시 벽을 등지고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겠지만
또 다른 어느 날에 나는 눈을 가만히 감고
오늘을 헤아려볼지도 몰라.
글이 참 가볍다.
나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당신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있잖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