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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시각장애인에게 말을 걸다.

by 최우주

눈이 보이지 않은 사람이 미술을 감상할 수 있을까?


“그게 어떻게 가능해?”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벽에 걸린 바나나를 보고 작가의 의도를 단숨에 파악하는 사람은 엄청난 직관을 가진 사람이다.


현대 미술이 매력적인 것은 의도를 설명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도 장님이다. 결국 두 사람은 같은 선상에 있다.

눈이 보이는 사람은 장점이 있었다. 바나나의 색상과 크기를 알 수 있었고, 바나나의 색상도 알 수 있었다.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오로지 귀로 정보를 습득한다. 후각이 좋은 사람은 향긋한 바나나 냄새로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줄에 매달린 바나나는 황당하게도 새것으로 교체되었다. 하루만 지나도 물러터지고 검게 변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줄에 매달린 바나나를 빼서 먹기도 한다. 그러면 작품 훼손이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이 상황을 오로지 상상만으로 유추해 본다. 누군가는 태어날부터 앞을 보지 못하고 빛도 감지하지 못한 노란색을 알지 못한다. 단지 그것이 조금 둥글둥글하고 만졌을 때 왠지 말캉하고 따뜻할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혹은 아주 향긋한 냄새를 가지고 있는 색깔이라고 생각한다.


눈이 보이는 사람은 작품의 의도를 해석해 본다. 의도를 파헤치고 작가의 배경을 생각하기도 하고 바나나가 매여져 있는 줄의 질감도 본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여러 가지 주워들은 정보로 덩어리를 만들어 본다. 모양도 생각해 보고 색깔 그리고 촉각까지 판단하여 덩어리를 붙여가듯이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한 명의 정안인이 소리친다.

그리고 세 사람은 작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배경지식과 감각을 이용해 자기만의 해석을 내놓는다. 사실 작가의 밝힌 설명과 의도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


한 가지 장점은 시지각에 지배당하지 않은 한 개인의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날까 하는 점이다.

생각보다 사람은 보이는 것에 지배당하고 편견을 가지게 된다.

이처럼 상상력은 어떤 사람이 동그라미, 네모, 세모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양한 그림이 그려졌다. 누군가는 네모를 크게 그리고 위에 세모를 올려 집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는 큰 직사각형 네모를 만든 후 안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넣어 문처럼 그려 넣었다. 이처럼 시지각의 제한 없이 상황만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자유롭게 상상하고 재미있는 해석을 하게 된다.


이것을 미술관에 해보니 즐거운 놀이처럼 생각되었고 문득 모든 사람의 모든 상상력이 하나의 프레임워크에 들어갈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대학교,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2024년 하반기 서울대학교와 <베리타스 실천: 눈과 마음>이라는 수업에 참여하면서 실질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시각장애인으로 친구와 미술관에 방문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시라토리 겐지” 씨에게 영감을 받은 이 수업은 “이야기 감상법”이라는 새로운 감상법을 제안하였다.

말 그대로 감각이 차단된 사용자를 중심으로 작품의 다양한 측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방법이다. 혼자서 조용히 감상할 때는 작품의 의도와 형태를 하나씩 뜯어보는 방식을 보았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작품을 붙이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 통해 얻는 장점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들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점을 알게 되었고 전달받은 사람도 풍부하고 직관적인 해설을 통해 머릿속에 새로운 해석을 담고 이를 전달자에게도 공유할 수 있었다.


실제 작품이 되었다.

banner_eye100 (1).jpg 전시 포스트와 설명

지난 12월 말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교육과에서는 제7전시실을 활용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때로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다른 미술관에서는 쉼터를 제공하거나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있었고, 국립현대미술관도 이러한 니즈를 반영한 새로운 공간을 설계하길 원하였다.

백개의눈시안.png

그러나 단순한 공간 설계가 아닌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모든 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워크숍이 포함되길 원하였다. 이중 유니마인드랩과는 <백개의 눈>이라는 새로운 기획을 하게 되었다.


<백개의 눈>은 앞서 설명한 “이야기 감상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디바이스로 옮기는 워크숍이다. “이야기 감상법”의 몇 가지 단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관람을 방해할 정도의 설명이 금지된다는 것이다. 사설 도슨트로 비추어져 시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감상 내용이 휘발된다는 것이다. 제한된 시간에 집중된 감상이 현장에 있는 한 사람에게는 도움 될 수 있지만, 곧 휘발되어 데이터로 남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여, 설치된 디바이스에 감상을 입력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미술관에서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길 원했다. 모양, 색상, 질감으로 구성된 질문은 작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원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자유롭게 입력할 경우 주관적인 감상이 들어갈 수 있어서 최대한 질문에 대해 객관적인 묘사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하였다.


디바이스는 스크린 2개와 입력장치로 구성했다. 처음에는 QR코드를 통한 모바일 입력을 제안하였지만, 현장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로 입력하지 않으면 참여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하여 입력장치를 따로 마련하였다. 하나의 스크린에는 작품 정보가 게시되었고 상단에는 지금까지 몇 개의 문장이 등록되었는지 실시간으로 체크하였다. 마우스를 작품에 올리면 확대할 수도 있다.


입력 스크린에는 각 질문에 대한 관람객의 답변이 출력된다. 이때 출력되는 문장은 전날 관리자가 승인한 문장만 출력하게 설계되었다. 관람객은 3개의 질문에 답변하고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AI합성.png

그러면, 3개의 문장을 AI가 합성하여 하나의 문장으로 보여준다. 문장을 확인하고 저장하면 저장소(서버)에 등록된다. 여기에서 활동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장된 문장은 관리자에 의해 다시 선별되고 선택된 문장은 점자로도 인쇄되어 오른쪽에 비치된 아트북에 끼워진다.

즉 관람객이 하는 모든 활동은 공중에 흩어지는 것이 아닌, 인쇄물로 바뀌어 시각 정보, 점자 정보를 원하는 관람객에게 다시 환원된다. 이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관람객은 별도의 작품 해설을 청취하지 않아도 다른 관람객이 작성한 문장을 통해 작품을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게 된다.

아드북.jpg

약 3개월간의 작업 과정을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의 주제는 소통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활동에 조금만 넛지(Nudge)를 주면 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활동으로 변할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도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하나의 아이디어가 모든 계층에 도움을 준다. 이 관점에서 끊임없이 소통하게 된다면, 그 과정은 조금 우회하고 시간이 더 걸릴 수 있겠지만, 결국 그 혜택은 도움을 주기 시작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


이러한 작은 노력을 시작으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미술관을 좀 더 자주 방문하고 함께 편하게 관람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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