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관련 스타트업 창업기
제목 그대로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다. 이름은 “유니마인드랩”이다. 원래 유니버설 마인드(Universal Mind)로 하려고 했었다. 동명의 글을 내 첫 브런치 글로 포스팅했으며, 내가 가진 장애에 대한 철학도 함께 녹아 있다. 그래서 되도록 유니버설 마인드라는 이름을 쓰고 싶었지만, 무언가 우주를 포괄하는 정신? 약간 회사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공동창업자의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유니마인드로 바꾸고, 연구하는 조직을 떠올리면서 랩(Lab)을 붙였다.
[소개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3pccLe4R3B
유니마인드랩을 창업하다
예전부터 장애 관련 서비스를 만들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기존에 하던 사업이 바쁘기도 하고 혼자 힘으로는 불을 붙이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평소 자주 뵙던 홍대 김승범 교수님과 2022년 3월경 식사를 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알던 교수님이었지만 내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거의 5년 만에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장애와 접근성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려고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의 장애를 이야기하게 되었고, 충분히 논문 화하기 좋은 아이템이라고 평가를 듣게 되었다. 나와 교수님은 2021년부터 홍대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산학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2022년 상반기 연구는 내가 평소 관심 있던 키오스크 접근성 개선에 대해 연구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곧바로 학생을 모집하였는데 2일 만에 10명이 넘는 학생들이 지원하였다. 우리는 2명의 학생을 선발하였고, 2달여 동안 다양한 키오스크 접근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시각장애인과의 만남
2019년 장애 등급을 받은 후 용기를 내기로 했다. 그것은 동료 시각장애인을 만나는 일이었다. 2020년부터 ‘클럽하우스(Clubhouse)’라는 앱이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이 음성 채팅 기반 SNS를 시작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이곳에 시각장애인이 많이 활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생각보다 많은 시각장애인 분들이 노래자랑, 게임, 수다 등 음성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나누고 있었다. 특히 고민을 상담하고 의견을 주고받는 방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의 고민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직업의 다양성 문제, 그리고 두 번째는 문화생활에 대한 갈망이었다. 직업의 경우 ‘헬스키퍼’라는 이름으로 기업에 고용되어 안마사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마사’라는 전문직으로 고용되는 것이 아닌 ‘사무직’ 형태로 되어 대부분 비정규직이라 지속적인 수입이 부족하다고 했다. 특히 시각장애인도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한데, 대부분 안마사 이외에는 특별한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대부분 눈을 사용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장애 유형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생활은 또 다른 문제였다. 정부에서는 활동지원사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이 제도는 장애인의 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 검증된 활동지원사가 장애인의 활동을 돕는다. 되도록 업무 시간에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으며, 미리 예약을 통해 정해진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비용은 정부 지원으로 이루어지지만 일부 본인 부담금이 존재한다. 활동지원사는 업무를 지원해 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문화생활이나 여가활동을 돕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은퇴 후 활동지원사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내가 만나게 된 시각장애인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속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운신의 폭을 넓히는 활동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 시각장애인 동료를 만나는 일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특히 나와 같은 질환으로 인해 실명된 사람을 만날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만,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시각장애인과 직면하였고, 더 나아가 내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와 리소스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깃발을 들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미션
유니마인드랩이 첫 번째로 시도한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직접적인 만남이었다. 특히 비장애인의 경우 분리교육과 특수교육이라는 이름하에 장애인과의 접점이 적었다. 사회에 나와서는 관계도 줄어드는 마당에 장애인을 ‘일 보러’ 만나기에는 상황이 마땅치 않았다. 서로가 나누는 대화 주제, 활동 방식이 다른데 이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것은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2022년 10월 우리는 ‘그냥’ 만나보기로 했다. 무식한 방법일지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본래의 취지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직원을 채용하고 ‘서로(Seoro)’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장애인 커뮤니티와 접촉하여 사용자를 모았다. 장애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좋았다. 예상대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일들을 제안하고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비장애인의 응답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찾다가 ‘대외활동’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대학생들은 방학 기간이나 유휴시간을 활용하여 ‘서포터즈’ 같은 대외활동에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를 모집하는 전문적인 사이트도 존재했다. 우리의 목적은 기업들이 운영하는 마케팅적 대외활동이 아닌 정말 ‘소셜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장애인과 소통한 적이 없었다면, 유니마인드랩을 통해 단 한 명이라도 장애인과 만나 활동하는 것이다. 이 포인트가 적중했는지 1기부터 40명의 대학생이 몰렸다. 우리는 운영의 효율을 위해 10~15명의 서포터즈만 운영했다. 1기 때는 주로 장애인 분들이 가고 싶은 곳을 신청받아 수행했다. 은행 업무를 보기도 하고, 석촌호수를 가기도 했다. 심지어 롯데월드에 가서 무제한 우선탑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2기부터는 장애인 분들이 갈 만한 코스를 학생들이 미리 선정하고 기획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곳에 장애인 분들을 초대하여 서비스를 제공했다. 3기는 성동구와 협업하여 성동구 내 카페나 음식점, 팝업스토어를 경험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4기 때는 카카오의 장애인표준사업장인 ‘링키지랩’과 협업하여 진행하기도 했다.
사업을 확장하다
2023년, 2024년에는 각종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카카오의 비영리 재단인 브라이언임팩트의 ‘사이드임팩트’ 기업에 선정되었고,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1,500만 원의 마케팅 지원금도 획득하였다. 이후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예비사회적기업 지정까지 성사되어 2025년까지 약 300명의 장애인과 500명의 학생이 만나 서로 교류를 진행하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서로플랫폼(https://seoro.me)은 자체적인 프로그램 개발과 더불어 자발적인 소통을 바랐다. 그리고 차후에는 초단기 매칭을 통해 내가 언제든지 도움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현재 날이 어두워지면 아내가 직접 역까지 마중을 나온다. 그러나 이 플랫폼을 통해 나를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입구까지 데려다줄 수 있다면 나와 아내가 크게 걱정 없이 날이 어두워져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과 함께하다
유니마인드랩은 그동안 많은 기업과 협업을 하기도 했다. 특히 Apple 잠실에서 연락이 와서 접근성 기능을 배우는 클래스를 함께 진행했다. Apple은 ‘손쉬운 사용’ 기능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실제로 직원들은 장애인이 아님에도 나보다 손쉬운 사용 기능을 많이 알고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접근성 기능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참가자를 모아 함께 수업을 들었다. Apple 잠실에서도 이 사례를 국내 Apple Store 구성원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카카오 링키지랩은 실제 장애인 분들이 일하는 사업장이다. 우리 서포터즈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링키지랩이 일하는 방식과 철학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직원들과 함께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볼링을 치는 등 학생과 기업이 함께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했다.
학교와 함께하다
가톨릭대학교 디자인씽킹 수업에서는 매 학기마다 3~4명의 학생들이 유니마인드랩과 협의하여 하나의 문제를 검토하고 해결하는 캡스톤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플랫폼의 유료화 모델을 설계하거나 박물관·미술관의 컨설팅 모델을 만드는 등 기업이 필요한 업무를 학생들과 함께 설계했다.
2024년 2학기부터는 서울대학교 교양과목인 <베리타스 실천: 눈과 마음> 수업에 융합되어 함께 진행되고 있다. 2024년에는 30명의 학생과 5명의 시각장애인이 매칭되어 현대미술을 보는 워크숍과 미술관의 접근성을 높이는 과제를 수행했다. 이때 ‘이야기 감상법’을 실제로 수행했고, 너무 놀라운 관람 경험을 하였다. 이 수업을 계기로 유니마인드랩은 실제 장애인의 문화 경험 향상을 위한 컨설팅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립현대미술관과 작품을 만드는 성과를 냈다.
2025년 기준 약 3년의 기간 동안 기대만큼 엄청난 수익을 거두거나 사회문제 해결의 혁신을 이루진 못했지만, 비로소 일하고자 마음먹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 활동을 이어온 결실에 뿌듯한 마음이다.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 많은 시각장애인을 만났고, 나와 같은 질환을 겪는 사람이라도 놀라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문제 해결 측면에서 접근한다. 비로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도 용기를 얻고 작은 일 하나라도 동참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