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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세포 치료기 그리고 두 번째 창업

by 최우주

이 치료기의 끝은 해피엔딩일 것이다. 이 치료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나의 로드맵은 크게 두 가지로 설정하였다. 첫 번째는 장애와 접근성에 대해 꾸준히 알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 자세하게 글을 쓰고 시간이 될 때마다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스타트업인 유니마인드랩을 설립하여 많은 사람들과 꿈을 공유하고 있다.

두 번째는 치료다.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유전자세포 치료에 괄목할 만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마냥 난치병, 불치병으로 삶을 비관하며 기다리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질병의 원인

내가 가진 질환의 이름은 ‘망막색소변성증’이며 RP라고도 불린다. 눈의 가장 끝에 있는 망막이라는 조직은 매우 얇은 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부분에 유전자 변이로 잘못 생성된 단백질로 인하여 색소가 침착되는 질환이다. 망막은 빛의 신호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뇌에 전달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카메라로 치면 조리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처음 발병하게 되면 빛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증상을 동반한다. 대표적인 것이 야맹증으로 밤에 사물을 잘 보지 못하고 까맣게만 보인다. 이 질환이 가장 위험한 것은 변성으로 인해 결국 중심시력을 잃고 실명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지만 진단 후 15년이 넘어가면서 어떠한 느낌인지 서서히 경험하게 되었다.


유전자 검사

2019년 장애 등급 판정을 받고 의사의 권유로 유전자 검사를 받았다. 망막이 점점 손상되는 것은 단백질 손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단백질을 어떻게 하면 치료할 수도 있다는 아주 막연한 응답을 받았다. 그리고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추적 관찰을 시작했다. 이때 아버지, 어머니, 동생, 할머니까지 채혈을 진행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방문할 때마다 매번 똑같은 답변을 들었고 치료제가 개발되려면 많은 임상 실험을 동반해야 한다고 했다. 쉽지 않은 것은 알았지만 나날이 저하되는 시력에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소아안과로 이전

2022년 지인에게 서울대학교 병원 소아안과 교수님을 알게 되었다. 매우 우연한 계기였다. 5월 김 교수님을 처음 뵈었는데 첫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치료해 봅시다. 치료하면 되죠.”


사실 의사들은 매우 보수적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상황이 어렵다 하더라도 이런 희망적인 멘트는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이후 김 교수님 외래를 받게 되고, 동시에 정확한 유전자 치료를 위한 유전체의학과 진료까지 보게 되었다. 이곳에서 조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유전자에 대해 공부하다

조 교수님은 매우 따뜻한 분이었다. 대부분 상담 시간이 10분 남짓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변을 듣기도 빠듯한 시간이었는데 교수님께서는 내가 궁금한 모든 것을 답변해 주었다. 사실 듣기는 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들었던 내용을 복기하고 자료를 찾으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의사들마다 모호하게 이야기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정확한 유전자 검사를 위해 한 번 더 채혈을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동일한 변이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 가족 중 증상이 있는 가족을 모두 데려와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였다.


NR2E3

2019년 최초 유전자 검사 시 건국대학교, 삼성서울병원 등에 검사지를 제출했을 때 의심 유전자로 NR2E3를 지목했다. 이 유전자는 빛을 관장하는 세포에 영향을 주어 망막 질환을 유발하는 아주 대표적인 유전자였다. 조 교수님께 자문을 구해 가며 좀 더 어떻게 이상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c.166G>A

염기서열.png 내 유전자에 오타가 발생했다.

우리 몸은 놀랍게도 코드로 이루어졌다. 세포가 있는 모든 동식물이 코드로 되어 있다. 나는 컴퓨터를 다루기 때문에 소스 코드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까지 이미 어떤 코드로 되어 있는지 거의 밝혀진 상태이다. 즉, 설계도를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A, C, G, T라는 문자열이 반복되어 기술되어 있고 이것이 하나의 유전자를 구성한다. 유전자는 이중 나선 구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다리 모양이 나선처럼 꼬여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사다리의 한쪽 부분이다. 그 부분에 GTACGTGA… 식으로 나열되어 있고 반대쪽 사다리는 그에 대응하는 코드가 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나머지는 자동으로 붙게 된다. 우리는 사다리의 한쪽 부분의 서열만 알면 된다. 나의 문제는 그 서열의 166번째가 G로 되어 있어야 하는데 A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오타’가 난 것이다. 이 오타의 후유증은 실로 크다.


Gly56Arg

컴퓨터도 소스 코드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데, 일종의 소스 코드가 존재하고 이 코드를 읽어 변환한 코드로 작동한다. 이런 과정을 ‘빌드’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몸도 이 빌드 과정을 거치는데 염기서열의 코드를 3번 읽고 1번씩 결과를 뱉는다. 이때 생성되는 코드가 단백질이다. 사람의 몸이 6주마다 재생성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DNA로 불리는 설계도는 여전히 보존되니 단백질은 계속 바뀔 수 있다. 결국 생성되는 단백질이 문제인 것이다. 순서에 따르면 G가 A로 오타가 나는 바람에 56번째 단백질이 Gly(글라이신)에서 Arg(아르기닌)으로 잘못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는 문제가 없었다. 아무리 유전자가 잘못되었다고 해도 아주 작은 세포에서 일어나는 일이 단번에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 RP 환자의 경우 10대 때부터 야맹증이 생기는 것은 잘못된 단백질 생성으로 인해 누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치료 방법

치료 방법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오타를 고치는 것이다. 컴퓨터의 소스 코드를 수정하듯이 염기서열을 교체하는 것이다. 202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유전자 크리스퍼’ 기술이 이에 해당한다. 유전자 깊숙하게 침투하여 표적 물질을 통해 가위처럼 자르고 편집하는 것이다. 그러나 듣기만 해도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난이도 문제는 후순위에 두더라도 표적 치료를 위한 약값만 수십억에 달한다. 유전자 치료는 범용적으로 시행하는 치료가 아니기 때문에 약을 만들기 위한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 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다. 두번째는 세포를 주입하는 방법이다. 손상된 망막에 부족한 세포를 주입하여 시력을 회복시킨다. 사실 세포 주입의 효과는 바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세포에 대한 다양성은 많지 않기 때문에 비용도 더 저렴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세포를 주입하게 되어도 유전자 근본 코드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소멸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결론은 두 가지 치료를 같이 받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효과성 입증과 비용 문제이다. 그리고 유전자 치료는 일생에서 딱 한 번만 수행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매우 큰 위험부담을 가지고 있다.


창업 아이디어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문득 이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비슷한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을 모으면 안 될까?”

유전가계도.png 유전가계도 작성 (블러 처리)

만약 약값이 20억이 소요된다고 했을 때 20명만 모여도 단순 계산으로 1억만 부담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우리 가족의 유전 가계도를 그려 보았다. 놀랍게도 우리 가족은 모두 같은 변이 및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에서 변이 보유자가 7명이라면 다른 가족 하나만 더 찾으면 20명이 될 수도 있었다. 동시에 2022년부터 소아안과를 중심으로 환우회가 조직되어 있었고 나도 임원으로 참여하면서 약 400명의 환자, 넓게 보면 2000명 정도의 가족까지 모을 수 있었다.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다시 조 교수님을 찾아갔다. 처음에 나온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비전문가로서 데이터 측면에서 봤을 때 같은 유전자 변이를 보유한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일 텐데, 정확히 치료 대상자로 일치하여 찾는 것은 쉽지 않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러나 현재 환자 중심의 연구가 주요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고, 데이터를 모으고 선별하여 환자에게 쉬운 해석을 주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것임을 알려주셨다.


본격적인 플랫폼 개발 시작

나는 조 교수님을 조금 더 설득하여 플랫폼 개발 및 더 나아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공동 창업까지 제안드렸다. 오랫동안 고민하신 후 플랫폼을 만드는 일부터 같이 진행해 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창업을 염두에 두고 교수님은 서울대학교 교원창업에 신청하여 창업 허가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서울대학교 프로그램으로 특허 출원을 진행하였다. 내가 바라보는 기술의 큰 특징은 바로 표현형이었다. 표현형은 야맹증, 시야 협착 등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신기하게도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표현형은 많이 차이가 났다. 나와 아버지 역시 보이는 정도가 조금 달랐다. 아버지는 색각이상을 겪지 않으셨다. 최근에 발병한 막내 고모는 60대가 가까워졌음에도 시력이 0.7을 유지했다. 그러나 망막 사진을 찍게 되면 변성 변화만으로 환자가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비정형 텍스트 마이닝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회사에서 관련 업무를 하였다. 논문을 찾아봐도 표현형에 따른 비정형 데이터에 대한 모델링 및 결과를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유전자 변이의 결과와 플랫폼을 통해 얻은 표현형 데이터를 조합하여 최적의 그룹을 찾고 싶었다.


온보딩플랫폼

온보딩-메인.png 온보딩플랫폼 메인화면

플랫폼의 이름은 ‘온보딩(Onboarding)’이다. 온보딩은 승선을 의미한다.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조직에 안착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나는 이 플랫폼이 항해의 의미를 담고 싶었다. 나 역시 처음으로 이 질환을 알게 되었을 때 캄캄한 바다에 던져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수영하는 방법을 배우고 무인도를 찾고 배를 만들면서 언젠가는 항해의 끝을 향해 함께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항해일지]

온보딩-항해일지.png 항해일지

매일 감정을 입력한다. 일지를 기록하듯이 현재 기분과 상태를 등록한다. 필요할 경우 증상에 대해 입력하고 그 수치를 단계별로 등록한다. 처음에는 증상 입력만으로 구성하려 했으나 나조차 생각하기 싫은 증상을 떠올리기 싫었다. 그래서 되도록 마음을 챙기고 기분을 전환하는 구성을 마련했다. 그리고 비슷한 증상이나 가족이 등록되었을 경우 댓글과 공감 및 위로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항해지도]

온보딩-검사지등록.png 검사지에서 유전자에서 데이터 추출

채혈을 통해 받은 유전자 패널 검사지를 등록한다. OCR API를 통해 텍스트를 추출하고 GPT로 유전자, 변이 위치를 찾아낸다.

온보딩-항해일지대시보드.png 항해지도 예시

등록된 변이 후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보통 5개에서 10개 정도 나온다. 이를 의사가 한 번 검증하여 최종 변이를 선정한다. 선정된 변이는 항해지도를 통해 한 페이지로 표현된다. 자세한 설명과 구글의 알파폴드 3D 지도를 볼 수 있다. 또한 비슷한 유전자를 갖거나 표현형을 가진 사람들의 공개된 범위 내에서 타임라인을 공유하도록 한다.


[챗봇]

입력된 표현형, 유전자 변이를 바탕으로 챗봇에 질의할 수 있다. 물론 현재는 완벽한 서비스 구축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앞으로 AI는 분명 아주 전문적인 분야에서 사람들을 케어하는 방향으로 진화될 것이다. 이를 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 보면 바이오 기술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컴퓨터와 작동 원리가 비슷하여 데이터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치료 기술이 성숙해졌을 때 가장 필요한 자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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