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봄, 2. 우리 동네 이야기

by 최우주





이사


“우리 부천으로 이사 갈 거야.”


엄마의 뜬금없는 이사 발표였다. 나는 내년에 관악국민학교로 입학할 예정이었다. 그 학교와 우리 집은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2층으로 된 빨간 벽돌로 지어졌다. 매우 경사가 급한 비탈길에 위치해 있어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썰매를 타도 될 정도였다. 집 앞마다 다 타고 남은 연탄들이 놓였다. 아이들은 그 연탄을 굴려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 집 대문에는 우유를 담는 주머니가 걸려 있었다. 한 번은 여름에 배달된 우유를 수거하지 않아서 우유가 상해 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우유는 부풀어 올라 터져 버렸고 마치 두부처럼 덩어리 지고 냄새가 고약했다. 대문을 지나 우측으로 몸을 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3층에 있는 주인집으로도 향했다. 가끔 주인아줌마를 만나곤 했었는데 엄마는 꼭 인사를 잘하라고 이야기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연탄을 넣을 수 있는 화로가 있었다. 연탄으로 방을 따뜻하게 하고 온수도 쓸 수 있었다. 오른쪽에는 얼마 전까지 이모가 살던 작은 방이 있었다. 이모는 지금 결혼을 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 그리고 정면에 안방이 있고 벽에는 구구단, 한글, 숫자 등 다양한 벽보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달력이 걸려 있었다. 기다란 달력에 3개월치 날짜가 써져 있었는데 나는 아주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 3개의 날짜가 덩어리처럼 나뉘어 있었지만 위아래 힘을 주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마치 내가 가지고 놀던 블록 장난감처럼 말이다.


이 집에 이사 온 것은 2년 전이었다. 원래는 이 집보다 더 큰 집에 있었고 그 집에서는 이모와 외삼촌도 같이 살았다. 그런데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정들었던 친척들과 헤어지고 이제 이모까지 나가 버렸다. 이모는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이모 덕분에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엄마,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디서 살아?”


사실 우리 엄마는 모든 일을 말하는 분이 아니었다. 대부분 일이 결정되었을 때 나와 동생에게 통보할 뿐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학교도 가지 않은 아들에게 상의할 내용이 딱히 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골똘히 생각하는 게 많았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물어보기도 했다. TV 뉴스에서 나오는 내용이나 책에서 나오는 내용도 항상 알고 싶었다. 하지만 태권도장에 있는 선생님만 친절하게 대답해 줄 뿐 부모님은 그렇게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으셨다.


1990년 겨울, 순식간에 이사가 진행되었다. 파란색 용달 트럭이 한 대 왔고 차곡차곡 준비한 이삿짐을 날랐다. 엄마는 나에게 책을 포장하라고 말했다. 돌돌 말린 붉은색 노끈을 가지고 내가 평소에 읽던 책들을 포장했다. 처음에는 너무 많은 책을 싸매는 바람에 책을 들 수 없었고 결국 들 수 있는 만큼 책을 포장해서 쌓아두었다. 나는 냉장고, 옷장 등을 가져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트럭에 싣는 짐이 많지 않았다.


“엄마 왜 다 안 가져가?”

“어… 가서 다시 살 거야.”


나는 새 물건을 산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무언가 새 출발을 한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우리 네 가족을 실은 트럭이 출발했다. 엄마와 동생은 운전수 아저씨와 함께 트럭 앞자리에 탔고 나와 아빠는 짐칸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서울에서 부천으로 출발했다.


부천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곳에는 이미 친할아버지의 동생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고 그 집 식구들이 터를 잡고 있었다. 거리도 매우 가까웠다. 우리 가족이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니라 상가 1층이었다. 부모님은 이곳에 분식집을 차릴 생각이었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게만 있지 집이 없었다. 엄마 말로는 가게 안쪽에 방이 있다고 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고 방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방이 어디 있어?”

“주방으로 들어가. 그리고 오른쪽에 문이 있을 거야.”


‘니은’ 자로 굽어진 카운터와 주방으로 들어가니 정말 오른쪽에 문이 있었고 아주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벽과 TV가 보였는데 그 벽 뒤로 살림집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여기서 살아? 근데 화장실도 없고 목욕탕도 없잖아?”


엄마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장실은 문 밖에 있는 상가 1층을 이용했고 목욕탕이 있기보다는 작은 창고에 매우 큰 고무다라이와 수도꼭지가 있었다. 그런데 집이 없어지긴 했지만 식당이 생겨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곰분식

곰분식.png

가게 이름은 “곰분식”이었다. 샷시로 된 현관문에 어설픈 모양의 곰이 비닐로 붙여져 있었다. “신속배달”이라고 씌어 있었고 주요 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왜 이름이 곰분식일까? 그동안 읽었던 책의 내용을 생각하여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곰은 겨울잠을 잔다고 했다. 먹이의 활동이 적은 탓에 무리하게 움직였다가는 곰들이 살아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겨울잠을 자고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사냥을 나선다는 것이다. 백과사전에서 겨울잠에서 깬 홀쭉한 곰을 떠올렸다. 배가 고파서 홀쭉해진 사람들에게 밥을 만들어주는 식당인 것이다. 두 번째는 곰은 아무거나 잘 먹는다는 것이다. 우리 식당 메뉴를 보니 찌개류부터 돈가스, 라면… 안 파는 음식이 없었다. 호랑이 분식으로 했으면 야채를 팔 수 없고 사슴 식당으로 했으면 고기를 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거나 잘 먹는 “곰분식”이 된 것이다.


“아 그러면 사람들이 곰인가?”


까치울

곰분식 밖 동네 주민들은 이 동네를 까치울이라고 불렀다. 까치울은 부천의 북쪽에 위치해 있었고 서울과 아주 가까웠다. 그래서 이곳이 서울이 될 뻔한 곳이었다고 어른들이 이야기했다. 까치울 사거리를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고강동으로 갈 수 있는 언덕길이 있었다. 그곳에는 ‘나드리백화점’이라는 건물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에게는 매우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백화점이기도 하였고 결혼식장이 되기도 했다. 서울이 될 것을 예상하고 지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북쪽으로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우리 집은 비행기가 나는 모습을 그렇게 많이 볼 수 없었지만 나드리백화점 언덕 넘어 고강동 사람들은 항상 비행기 배를 보고 비행기 소음을 들었다. 남쪽으로는 여월동, 부천역을 가는 길이 있었다. 까치울 사거리는 주로 버스를 타기 위해 갔다. 버스는 주로 부천역 방면, 서울 신월동·화곡동 방면으로 운행했다. 그리고 서쪽으로 우리 동네로 가는 길이 있었다. 사거리에서 우리 동네까지 오려면 약 10분을 걸어야 했다. 그래도 지겹지 않았던 이유는 상점과 볼거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신발가게, 옷가게, 피자가게, 슈퍼들이 있었고 노점상도 많이 있었다. 우리 동네 초입에 다다르면 다리를 하나 건너야 했다. 그 다리는 바로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였다. 폭이 아주 넓은 하천은 아니었지만 꽤 위험해 보였다. 얕은 개울과 같은 느낌이었는데 물에 닿으면 당장이라도 피부병에 걸릴 것 같았다. 그리고 너무 나쁜 냄새가 나서 그 하천에 들어가는 상상도 해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그 하천을 ‘베르네천’이라고 불렀다.


베르네천을 건너면 드디어 우리 동네에 온 것이다. 우리 분식집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게들이 있었다. 왼쪽에는 서양전기, 의상실, 멕시칸통닭집, 청룡비디오, 철물점이 있었다. 오른쪽은 쌀집, 세일문방구, 이발소 그리고 바로 우리 분식집이 있었다.


각 가게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지냈다.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어른들을 보면 인사를 잘하라고 하셨다. 사실 우리 집만 가게 안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거의 모든 가게 안에 살림집이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세일문방구가 제일 좋았다. 당연하게도 거기에는 장난감과 문구가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문구점에 들러 구경했다. 문방구집은 남매가 살고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정수형, 그리고 나보다 2살 어린 선경이가 살았다. 정수형 엄마는 매우 무서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말도 거칠었고 사납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선경이에게 “야 이년아”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사실 우리 엄마도 가끔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정수형 엄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집 아빠는 온순해 보였다. 나이가 많아 보였고 우리 할아버지와 비슷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쌀집은 통장님 가게라고 아빠가 말했다. 통장? 무언가 높으신 분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했다. 쌀집네 자녀들은 나이가 많고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가 쌀 팔러 다녀오라는 심부름 말고는 교류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가 왜 쌀을 사러 간다고 하지 않고 팔러 간다는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서양전기에는 희경이와 희철이 남매가 살았다. 희경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엄마와 많이 닮았다. 까치울 사거리에서 만나도 누군지 알 정도로 그 가족의 외모는 비슷해 보였다. 서양전기 아저씨는 키도 크고 단단해 보이는 인상을 가졌다. 실제로도 각종 설비나 전기 공사를 다녔고 항상 모든 장비가 갖춰진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그 가게는 들어가자마자 각종 전기 관련 재료나 물품을 팔았고 작업대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미닫이문을 열면 살림집이 훤하게 보였다. 오히려 가게보다는 집처럼 생겼는데 아마 손님들이 자주 오는 가게는 아니라서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멕시칸양념통닭집이 있었다. 우리 가족의 주요 외식은 양념치킨이었다. 멕시칸은 양념이 매우 훌륭했다. 가격은 한 마리에 5000원이었고 정사각형 종이팩에 호일을 깔고 치킨을 포장해 주었다. 그리고 살짝 넘치는 듯 불룩하게 뚜껑이 닫히지 않았고 노란 고무줄로 고정했다. 나는 왜 상자를 더 크게 만들지 않고 약간 작게 만들었는지 의문이었다.


그 옆에는 청룡비디오가 있었다. 우리 집은 부천으로 이사 오기 전부터 비디오기가 있었다. 아빠가 정말 어느 날 선물같이 삼성 비디오기를 사 오셨고 나와 동생은 그날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우리는 주로 후레시맨, 바이오맨 등 쫄쫄이 옷을 입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 이야기의 끝은 항상 커다란 대포를 각자 나눠 메고 레이저빔 같은 걸로 괴물을 쏘아 죽이는 것으로 끝났다. 특히 후레시맨의 주제가에서 다섯 명의 주인공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처럼 엄마나 아빠 없이 살다가 지구의 용사가 되어 싸우는 모습이 큰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비디오가게 아줌마는 얼굴에 커다란 점이 있었다. 그리고 무섭기도 하면서 나에게 한 마디씩 던지는 게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행동하게 했다. 카운터 앞에는 경주용 자동차 모양의 비디오테이프를 되감는 기계가 있었다. 그 기계에 비디오를 넣으면 처음으로 테이프가 돌아갔다. 언젠가 아빠가 비디오를 다 봤으면 테이프를 돌려놓는 것이 예의라고 하셨다. 그런데 뒤로 감기를 누르면 영상에 지렁이 같은 게 너무 많이 지나가고 테이프가 감기는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아서 그냥 돌려주는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그 아줌마를 만나기 싫어서 비디오집 앞에 있는 수거함에 넣었다.


철물점에는 ‘새우’가 있었다. 진짜 새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이 작고 찢어진 것을 보고 새우눈 같다고 별명이 붙여졌고, 그러고 나서 그냥 새우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새우는 내 친구가 아니라 동생의 친구였다. 새우 할머니가 운영하는 철물점은 좁고 기다란 형태였다. 그 안에 살림집조차 넣을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 정말 다양한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새우 할머니가 이것을 다 외우고 팔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철물점 가장 깊숙한 곳은 물건값을 계산하고 쉴 수 있는 평상이 있었다. 그 바닥은 1년 365일 고동색 전기장판과 연결되어 있어 아랫목처럼 따뜻했다. 그리고 손자를 위해 게임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새우와 동생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할머니의 철물점으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새우는 특히 게임을 좋아했다. 그리고 잘하기도 했다. 내가 지극히 느린 손놀림과 동체 시력으로는 도저히 게임을 깰 수 없었지만, 새우는 능숙하게 게임을 깨고 다른 게임을 찾았다. 나도 게임을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잘 못했기 때문에 빨간색 2P 컨트롤러만 손에 쥐게 되었다. 그래서 게임은 포기하고 책을 읽기로 했다. 나중에는 읽을 책이 없어서 동아전과, 표준전과를 보기도 했다. 부모님은 책을 읽는 모습을 좋아하셨지만, 솔직한 마음은 두 동생들처럼 게임을 잘하고 싶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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