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빛 국민학교
까치울 초등학교의 입학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교실에 책상과 걸상을 다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빼곡했다. 책상과 걸상의 행렬은 교탁을 압도하여 선생님이 칠판에 붙을 지경이었다. 나도 살면서 우리 동네에 이렇게 많은 애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학교가 포화 상태여서 새로운 학교를 짓고 있고 주소상으로 나는 그 새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만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반에 속해 있는 20-30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이동할 예정이었다. 학교 공사가 빨랐으면 이곳에 오지 않아도 됐지만 결국 나는 입학식을 두 번 하게 된 셈이었다.
“큰빛 국민학교”
새로운 국민학교의 위치는 분명 우리 집과는 가까웠지만 까치울 국민학교와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동네를 가로지르는 베르네천과 가까웠으며, 논밭 위에 덩그러니 세워졌다. 나는 올챙이와 올챙이알을 보러 교문을 나서기만 하면 됐다. 그뿐만 아니라 부레옥잠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올챙이알은 마치 눈알처럼 생겨서 징그러웠지만 서서히 올챙이가 되고 올챙이에서 손과 발이 튀어나와 개구리가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교내 중앙에 있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그 논밭으로 공이 날아갔다. 물론 공을 찬 사람이 가져와야 한다. 운동장을 주변으로 철봉, 그네, 나무늘보, 그리고 폐타이어로 경계를 두른 모래 씨름장이 있었다. 사실 그곳은 씨름을 하기보다는 비가 올 때마다 아이들이 작은 도시를 건설했다. 수로를 파고 다리를 만들고 진흙으로 된 성을 만들기도 했다. 흙을 정신없이 파내면 파낸 곳 옆으로 벽이 생겼다. 그 벽을 조금씩 뚫어 또 다른 수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반대쪽에서 수로를 공사하던 친구와 만나 진흙이 엉겨 붙은 손을 서로 맞잡아 악수를 했다.
“어우 최씨네는 공사가 잘되고 있었어?”
“물론이지!”
공사판에서 어른들이나 할 만한 대화를 능청스럽게 소화했다. 공사판의 풍경은 동네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곰분식도 하루가 멀다 하고 지어지는 건물에 밥을 날랐다. 공사판 어른들은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음식을 찾았다. 아마 손을 맞잡아 까끌해진 감촉을 같이 느꼈을 친구도 누군가의 자식일 수 있었다. 언젠가 담임 선생님의 지시로 가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적어야 했다. 부모의 직업을 넣는 곳에 나는 무어라 적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곰분식’이라고 적었다. 이내 엄마는 등짝을 때리고 ‘상업’이라고 적으라고 했다.
“상업”
상업이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다 아시는 것 같이 단어만 읽고 그냥 넘어갔다.
“어머, 노동? 경태야 아버지가 노동일 하시니?”
아이들은 웃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도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엄마도 웃었다. 좀 더 고상하게 썼어야 했다고 말하셨다. 그런데 나는 어차피 식당에서 일하던 공사판에서 일하던 다 같은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오히려 그 ‘일’을 고상하게 표현한 게 ‘노동’이 아닐까 생각했다.
큰빛 국민학교 모퉁이에는 농구장이 있었다. 그 농구장에는 골대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감쪽같이 사라졌다. 주변 학교 형들이 와서 쉴 새 없이 덩크슛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이 형들은 키가 닿지 않으면 남의 등까지 올라타 덩크슛을 하기 원했다. 그렇게 골대를 잡는 기분이 좋았을까? 골대 없는 농구장은 네모난 농구대에 대충 맞추면 점수가 올라가는 식으로 규칙을 바꿔서 놀았다. 그런데 그것도 별로 재미없었는지 농구장에서 3:3으로 축구를 하고 놀았다.
축구 골대 뒤 논밭과 맞닿아 있는 공간에는 천막이 쳐져 있었다. 드문드문 긴 의자가 있고 휴식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운동장에서 비와 햇빛을 피할 공간은 그곳뿐이었다. 체육 수업을 하다가도 비만 오면 천막 교실로 달려갔다. 그곳은 항상 여자애들이 공기놀이를 하거나 줄넘기를 하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학교 중앙에는 구령대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그 아래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문을 열면 매트, 뜀틀, 평균대 등 체육 수업에 쓰이는 도구들이 가득했다. 그중 가장 신기했던 것이 모래바닥에 선을 그리는 기구였다. 작은 바퀴가 달린 수레의 모습을 하였고 굴러갈 때마다 터덜터덜 소리가 났다. 통에 밀가루 같은 흰 가루를 채우고 이동하면 바닥에 네모 반듯한 선이 그어졌다. 모래바닥에는 철심과 깃털이 박혀 있는데 선생님들은 그 철심들을 이어 가서 선을 그었기 때문에 매번 운동장에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흰 가루로 그어진 선은 아이들이 발로 몇 번 훔치면 금세 사라졌다. 그래도 괜찮았다. 언제든 다시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령대는 교장 선생님의 지루한 말씀이 울려 퍼지는 공간이다. 나는 그 시간에 항상 발로 모래를 모았다가 흐트러뜨리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발 안쪽의 오목한 부분을 이용해 모래를 모아 마치 길게 늘인 마름모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를 살살 밟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반복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 열중쉬어, 차렷, 구호에 맞춰 월요일 아침마다 국민의례라는 것을 반복했다. 비가 오면 담임 선생님과 함께 스피커에서 울리는 음성에 따라 진행되었다. 태극기는 교실마다 걸려 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전반과 오후반
까치울 국민학교에서 친구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2반에 배정되었고 친구들과 인사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오전반 친구들이고 오후반에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9시에 등교하면 12시 반에 집에 가는데 오후 1시에 등교하는 우리 반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2반은 총 80명이 있다고 했다. 나는 오후반이 좋았다. 당연히 늦게 일어나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전반과 오후반은 한 달에 한 번씩 순서를 바꾸었다.
새 책
나는 세상에서 책이 가장 좋았다. 책의 내용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냄새와 감촉이 좋았다. 특히 처음 교과서를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다. 약간 기름 냄새가 나고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졌다. 책을 묶은 부분은 풀이 덜 말랐는지 물에 젖었다 말린 오징어처럼 울퉁불퉁했다. 집에 있는 책들은 괜찮은데 유독 교과서만 그랬다. 평평하게 만들려고 무거운 책도 올려보고 손으로 문질러봤다. 그런데 별로 소용이 없었다.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교과서의 제목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큰 글씨, 귀여운 그림 등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즐거운 생활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만들기가 가득하여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한글은 이미 서울에서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배워왔다. 글씨도 서툴지만 쓸 줄 알았고 받아쓰기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뒤떨어지지 않았다. 매번 ‘그런데’를 ‘그런대’로 잘못 쓰고 선생님이 빨간 펜으로 고쳐주었다.
나는 ‘그런데’, ‘그래서’, ‘그러므로’와 같은 단어에는 초콜릿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가나 초콜릿과 이름이 비슷해서인가, 크런키라는 초콜릿과 비슷해서인가 단어를 쓰고 말할 때마다 달콤한 맛이 났다.
나에게는 이런 ‘말맛’이 몇 개 더 있었다. ‘누가’, ‘싶었다’라는 단어인데, 초콜릿이 범벅이 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맛이 났다. 그래서 받아쓰기를 하고 책을 읽으면서도 그 단어를 일부러 쓰고 ‘말맛’을 음미하고자 했다.
교실
우리 반은 1층에 있었다. 각 반마다 창문에 표시가 있었다. 1-2는 1학년 2반, 2-2는 2학년 2반이다. 2학년은 2층, 3학년은 3층을 쓴다는 것을 건물 밖에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창문마다 동그란 구멍이 하나씩 있었는데 겨울에 그것이 난로의 연기를 빼는 구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치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선물 배달을 하듯이 반마다 연통이 연결되었다. 바닥은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나뭇바닥이었다. 여자아이들은 그 바닥에서 공기놀이를 하다가 손에 가시가 박히곤 했다. 아이들은 손날이 벌게지도록 공깃돌을 훑었다. 칠판은 아주 진한 녹색인데 그 진득함은 검은색에 가까웠다. 분필은 흰색, 붉은색, 파란색으로 선생님은 주로 흰색을 사용했다. 언젠가 상자에 가지런히 놓인 분필을 본 적이 있었는데 마치 방앗간에 보았던 따끈따끈한 떡볶이 떡 같았다. 선생님은 칠판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흰색 물감에 붓에 묻혀서 칠판 좌측 상단에 글씨를 썼다.
‘199 년 월 일’
’학습 목표 : ’
다음에 빈칸이 있었고 월, 일 앞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아래는 학습 목표를 적을 수 있도록 칸을 비워두었다. 매일매일 날짜를 바꾸었고, 목표도 매 수업 시간마다 바꾸어 쓰셨다. 칠판지우개가 닿아도 그 물감으로 쓴 부분은 지워지지 않았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볼펜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반드시 연필을 쓰도록 했다. 볼펜은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자국이 평생 남기 때문에 언제든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연필을 쓰라고 했다. 그러나 연필을 매일 샤프너로 깎아야 했고 자주 부러졌다. 볼펜의 쓰임은 거의 다 쓰고 난 몽땅연필의 끼워 몸통 역할을 했다. 선생님은 칠판에 지워지지 않는 볼펜을 쓰면서 우리에게 쓰지 말라고 하니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일기를 연필로 쓰면 나중에 고칠 수도 있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반드시 볼펜으로만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