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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석주 Feb 04. 2019

당신의 세뱃돈은 안녕하신가요

당신의 이십 대는 안녕하신가요

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는 최근까지 세뱃돈을 받았다. 받는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다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뻔뻔함이 아닐까 싶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돈에 있어서는 유독 뻔뻔했다. 명절 때마다 사양과 겸양의 문화랍시고 서로가 서로의 돈 봉투를 밀어내는 모습은, 나에게 썩 유쾌하지 않았다. 그냥 받으면 되는데 왜 굳이 저렇게까지 돈을 가지고 옥신각신 하는 것일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친척 중 누군가 빳빳한 돈 몇 장을 건네면,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감사하다는 물기 없는 말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친척들은 어린놈이 벌써부터 돈 맛을 안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그래, 이렇게 돈을 주고받으면 되는데. 하지만 부모님은 아니었나 보다. 그럴 때마다 안방으로 나를 조용히 불러 훈계하곤 했다. 원래 돈을 받을 때는 받더라도 최소 한 번이라도 거절하는 게 예의라고. 나는 그 예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또 돈 앞에서 괜히 사람이 굽신 거리는 거 같아서, 언제나 뻔뻔하게 돈을 받았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도 친척들은 나에게 세뱃돈을 주는 게 아닐까 싶다.

또 나는 남들과 다른 세뱃돈의 관념이 있었는데, 바로 절대로 부모님에게 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청동색 만 원짜리를 한 손에 쥐고 나팔거리면 부모님은 늘 그 돈을 가져가려 했다. 나중에 커서 주겠다며, 다 널 위해서 쓰겠다며. 나는 뻔뻔한 것도 모자라, 영악한 구석까지 있어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부모의 말에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명령 같은 부탁을 거역할 수는 없었으니 내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했다. 우선, 알겠다고 말해놓고는 그럼 친구들에게 자랑만 하고 와도 되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때쯤 얘가 돈을 순순히 내놓겠구나 라고 생각한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을 했고 나는 그 길로 곧장 마트에 들어가 사고 싶은 걸 그 돈으로 모조리 사버렸다. 맡겨야 할 돈을 없애버린 것이다. 사고 싶은 것을 잔뜩 사서 집에 돌아가면, 엄마는 늘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나는 세뱃돈을 유난히 오랫동안 받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썼었다. 그래서인지 세뱃돈이라 함은 나에게 설렘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세뱃돈은 명절의 표상이었고, 명절의 선물이었다. 그런 내가, 어느덧 세뱃돈을 줘야 할 나이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줘야 할 나이가 된 것이 아니라, 줘야 할 지위를 갖게 되었다. 돈도 벌겠다, 나를 삼촌이니 아저씨니 하는 이상한 호칭들로 불러대는 꼬맹이들도 늘어났겠다, 세뱃돈을 안 줄래야 안 줄 수 없는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것이, 받는 입장에서 주는 입장으로 돌아서니 더 이상 세뱃돈이 곱게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선물 같던 그 돈이 벌금으로, 짜릿한 돈 비린내가 근심을 만들어 내는 악취로 변모한 것이다.

어느덧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고, 밤톨 같은 어린애들부터 솜털이 굵어진 학생들까지 옹기종겨 모여 어른들에게 절을 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과연 쟤들은 정말 우리의 새해 복을 빌어주는 것일까. 온갖 것들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이내 그들은 알사탕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각자 나이에 맞는 적당량의 돈을 쥐어주고 나서야 한바탕 소동이 끝이 났고, 나는 얇아진 지갑을 보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 나도 예전에 많이 받았으니까. 별 쓸 데 없는 자기 위안을 궁시렁거릴 때쯤,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까 돈을 받았던 아이 중 한 명이다. 외삼촌의 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대뜸 나에게 받은 돈을 나에게 건넸다. 이거, 저 필요 없어요. 나중에 주세요. 그러고는 내 손에 돈을 구겨 놓고 후다닥 거실로 도망을 갔다. 나는 한동안 벙 쪄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하다가 이내 돈을 다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곧장 그 애에게 다가가서, 아니야 그냥 받아둬 너 맛있는 거 사 먹어라는 인자한 멘트를 내뱉고 돈을 다시 그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애는 그제 서야 얼굴에 활기를 띠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엄마에게 쫄래쫄래 달려가 내 돈을 자기 엄마에게 주었다.

지금 생각하건대, 아마 그 애가 처음 받은 것은 돈이었을 테고, 나에게 돌려준 후 다시 받은 것은 복이었을 테다. 과거 내가 받았던 것은 전부 돈이었다. 거기에는 단 하나의 복도 없었다. 그저 속물적 근성만 잔뜩 내뿜으며 명절의 낭만이라든지, 명절의 훈훈함 같은 것을 모조리 불 질러 버린 것이다. 단순히 사양과 겸양의 문화가 아니란 말이다. 물론 지금에야 명절의 의미도, 명절이 주는 감정도 모조리 퇴색되고 변색되어 버려 볼 품 없어졌지만, 그 와중에도 명절의 명맥을 이어가는 것은 아마도 세뱃돈일 테다. 어느 학교에 들어간 것을 축하하며, 작년에도 고생을 많았고 올해는 더 잘 풀리길 바란다며, 건네는 그 돈은 처음에만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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