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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석주 Jan 08. 2019

당신의 자취는 안녕하신가요

당신의 이십 대는 안녕하신가요


서울에서의 첫 자취를 결정했을 때, 내 수중에 있는 돈은 이백 만원이 전부였다. 이 이백 만원으로 방을 구해야만 했기에 시작은 부동산 어플일 수밖에 없었다. 날은 추웠고, 서울까지 올라가서 이 부동산 저 부동산을 돌아다니는 것 고역이니까.

부동산 어플에서 본 방들은 넓었고, 예뻤으며, 모든 게 갖추어져 있었다. 옷장, 침대, 냉장고, 전자레인지, 신발장, 인덕션 등 ‘풀옵션’이라는 명목 하에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내 집은 없었다. 당장 써져있는 보증금은 천만 원이 넘어갔고, 아무리 못해도 오백 만원을 넘겼다. 이백 만원으로는 턱도 없었다. 더 변방으로, 더 후미진 곳으로 어플의 지도를 따라 들어가고 들어가니 내가 살만한 집들이 나왔다. 보증금 이백 만원에 관리비 포함 월세 오십만 원. 보증금 삼백 만원에 관리비 포함 월세 사십오만 원. 단, 보증금 조절 가능. 아, 드디어 살 집을 찾았다. 사진을 보니 방도 괜찮았다. 오히려 지금 내 방보다 넓은 것 같았고 여기도 풀옵션이었다. 드디어 내 집을 찾은 것이다.

적혀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하고 일정을 조율했다. 다음 주쯤 서울로 오란다. 서울에 와서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하면 데리러 가겠단다. 그래, 이제야 청춘 같네. 자고로 청춘이라면 부모 밑에서 벗어나 본인의 삶을 영위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모든 것이 결정된 것처럼 느껴지자, 서울에 가기까지 모든 시간들이 설레었다. 자취하면 일단 요리를 해 먹어야지. 무쇠 팬을 사서 근사하게 플레이팅도 하고, 세련된 식기에 담아야지. 인테리어는 또 어떻고. 전구색 조명을 사서 천장에 쏠 거야. 벽에는 선물 받은 그림이랑, 명화 액자들을 사서 걸어놔야지. 커튼은 당연히 아주 어두운 회색. 단 한 줌의 빛도 흘러들어오지 않을, 그런 커튼.

그 날이 됐고, 난 영하 십삼 도의 날씨를 뚫고 서울에 도착했다. 얼음보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을 때마다 쓰라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집에 가서 난방을 틀면 안 추울 테니까.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서 전화를 걸고 10분 정도 지나자, 국산 SUV를 탄 서글서글한 이십 대 중후반의 남자가 왔다. 나를 보며 반갑게 손을 흔들더니 차에 타라며 손짓했다. 차에 타자마자, 편하게 형이라고 하라며, 내 나이를 물어보지도 않은 채 호칭을 정리했다.


부모님은? 혼자 온 거야?
네. 저 혼자 방을 구해야 해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말은 하면 안 됐다. 날 분명 만만히 봤을 텐데. 하지만 이미 뱉은 말들을 담아다가 다시 목 안으로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 형이 일하는 부동산으로 가면서, 그 형은 나에 대한 호구조사를 실시했다. 나는 미련하게도 그 모든 질문에 일일이, 그것도 아주 상세히 대답했고 형은 알다가도 모를 미소를 지었다.

부동산에 도착하자, 형은 나에게 얼마를 생각하고 있냐고 물어봤다. 난 월세는 상관없다고, 보증금이 무조건 낮은 집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월세 정도야, 내가 아르바이트하면서 벌면 되겠지 라는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형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스읍하는 소리와 함께 컴퓨터를 두들겼다. 나는 괜히 형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닌지, 그 미안한 마음에 연거푸 월세는 정말 상관없다며 보증금만 싸면 된다는 말을 뱉어댔다.


너 보증금 얼마 있는데?
저 이백만 원이요. 근데 월세는 정말 상관없어요.


분명히 들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러면 고시원에서 살지 라는 말이 형의 미세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삐쭉 튀어나온 것을. 아니, 분명 자기가 집을 올려놓고 난 그 방을 보러 온 건데 왜 뭐라 하는 거지.

형은 나에게 네가 말한 그 집을 보러 가자며 나가자고 했다. 다시 국산 SUV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굽이진 골목을 지나고 을씨년스러운 동네에 도착했다.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가, 싶었지만 바로 앞에 보이는 세탁소와 아주 조그마한 편의점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서있었다. 형과 함께 들어간, 그러니까 내가 어플로 본 방의 실제는 처참했다. 왜소했고, 낡았으며, 형편없었다. 이런 집에서 살려고 월 오십만 원이나 내야 한단 말인가. 나는 몇 달 뒤에나 부동산 업자들이 광각렌즈라는 걸로 방을 실제보다 넓게 찍는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어플로 본 집도 아마 이 렌즈로 찍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봤던 사진과 이 정도로 차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게 네가 본 집이지? 아마 가지고 있는 보증금으로는 이 집 밖에 안 될 거야.


나는 또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래, 가진 돈이 이것밖에 없는데 뭘. 이런 집도 감지덕지지. 그래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화장실 변기의 수압과 샤워기의 수압, 창문의 상태, 냉난방의 작동 유무 등을 확인했다. 이미 이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먹어서인지, 나쁠 게 없었다. 풋내기의 점검이 끝나고 나는 그 길로 다시 형이 일하는 부동산으로 갔다.

갑자기 형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집이 주택이 아니라 주택 외 건물, 그러니까 교육용 주택인가 뭐시기로 설정이 되어있어서 다른 집들보다 복비가 두 배나 비싸단다. 그래서 얼마냐고 물으니, 사십 육만 팔천 원이란다. 근데 내가 지방에서 올라와 고생했으니 부동산 사장님께 잘 말해 사십만 원만 받겠단다. 난 또 내가 육만 팔천 원을 깎았다는 생각에, 내 집이 생긴다는 흥분감에 곧바로 사십만 원을 줬다. 이후 집주인과 통화하여 입주 날짜를 정했다. 열흘 후에 입주하기로 합의하고 나는 원래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오늘 했던 이 미련한 짓들을 생각하지도 않고 다시금 환상적인 자취 생활을 상상했다. 그렇게 열흘 후만 손꼽아 기다렸다.


자취를 시작하며 제일 먼저 휴대용 버너를 샀다. 집에 인덕션이 있었지만, 형편없었다. 무언가 끓일 때 너무 오래 걸렸고, 특히 직화로 무언가 구워 먹을 수 없다는 점이 싫었다. 그리고 계량컵을 샀다. 본가에 쓰던 냄비에는 주름이 있었다. 세월의 풍파 끝에 얻어낸 그 주름에 맞추어 라면을 끓이면, 라면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았다. 내가 산 냄비는 갓난아기처럼 온몸이 반들반들하여 물을 맞추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

이내 미리 주문해놓은 물건들이 도착했다. 오평 남짓한 방에 택배 박스가 가득 쌓이자 이사 온 것이 실감 났다. 그것들을 풀어헤치고 하나하나 생각해놓은 장소에 배치시켰다. 책장은 구석에, 에어프라이어는 싱크대 옆에, 레토르트 식품들은 부엌 선반에. 각자 착실하게 자기의 공간을 찾아 들어갔다. 정리가 끝나자 방이 꽤 그럴싸 해졌다. 사람 사는 냄새가 은근하게 풍겼고, 온기도 적당하게 느껴졌다. 잘 정돈된 방을 보자 학창 시절 깨끗이 청소한 교실을 본 것처럼 괜스레 뿌듯했다.

밥은 나가서 먹었다. 힘을 쏟은 탓에 밥을 할 힘이 없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럴 힘조차 남겨 놓지 않은 내가 미련했다. 집 앞 분식집에 가서, 아주머니 제육덮밥 하나요. 뻘건 김치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이 나오고 곧 제육덮밥이 나왔다. 학생, 오늘 이사 온 거지. 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에 다 쓰여있어. 부족하면 말해. 밥 더 줄게. 나를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있음에도, 이런 말을 들으면 괜히 울적해진다. 무인도 같은 곳에 나 혼자 격리된 것만 같고, 선의든 악의든 그런 나를 보는 시선들이 연민처럼 느껴진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허겁지겁 밥을 흡입하듯 먹어치우고 나왔다.

침대에 누워서 조용한 휴대폰을 애꿎게 탓했다. 넌 왜 아무런 말이 없니. 방 안을 가득 메운 적막이 싫어서 노래도 틀어보고,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예능을 보며 낄낄거려 보지만 침묵이 더 크게 들렸다. 사람 냄새도, 사람의 온기도 분명히 있지만 전혀 없는 것도 있었다. 북적거림.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북적거림이 없었다. 그 북적거림이 그리워서 원래 살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보지만 받지를 않는다. 바쁜가 보지, 뭐.

해가 진다. 내 집은 오층인 데다가 저기 앞에 관악산이 있어 나름 뷰가 좋았다. 노을빛을 받아 아까 먹은 김치처럼 뻘겋게 익은 관악산을 본다. 턱을 괴고 산의 모습에 취해갈 때 즈음, 창밖이 부산스러웠다. 유치원 꼬맹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가고 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저때도 나는 외로웠나. 사색에 잠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까 전화를 건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야, 나 이사 끝났어. 그럼, 이제 자취생이지. 밥? 밥 먹었지. 응, 이제 자려고. 할 것도 없는데 일찍 자야지. 어차피 내일 1교시라 일찍 일어나야 해. 그래 수고해라. 나중에 집 가면 연락할게. 아니, 이 집 말고 진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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