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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석주 Jan 11. 2019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신가요 - 2

당신의 이십 대는 안녕하신가요

섹스는 섹스일 뿐이잖아


B는 서슴없이 얘기했다. 섹스라니.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섹스란 볼드모트 같았는데(쉿! 그 이름을 말해서는 안 돼), 친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단어를 떠들어댔다. 아, 섹스라. 그걸 하면 결혼하는 건가. 아니지,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원나잇이라는 것도 있잖아. 그래도 섹스라 함은 상대방과 가약을 맺을 각오로 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듯 스무 살의 나에게 섹스는 낭만성과 순수성으로 쌓아 올린 보루였다.

하지만 B는 아니었다. B는 금요일마다 클럽과 감성주점을 번갈아가며 다녔다. 매번 알딸딸한 상태로 테이블을 휘젓고 다녔다. B는 질퍽거리는 숨소리에 달콤한 단어들을 섞어 상대방의 귓속에 뱉어댔다. 아니면 스테이지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그 사람의 뒤로 가서 자신의 몸을 열심히 비벼댔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상대방의 입가에 초승달이 그려질 때면 B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람들은 B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B 역시 자신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꽤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B는 연애라고 불릴만한 것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연애하기에는 아깝다나 뭐라나. 한 사람에게만 종속되기에는 자신의 매력이 아깝고, 젊은 날을 낭비하는 거 같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랬다.

B의 카톡창에는 B의 애인들이 가득했다. 자기야, 여보야부터 시작해서 손발이 오그라들어 없어질 거 같은 별명들을 불러가며 서로의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B는 단호하게 이건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 선은 긴장감과 책임감을 갈라놓았다. B는 성적인 긴장감은 충분히 즐기기 위한 선을 주욱 그어놓고, 관계에서 오는 책임감은 모조리 선 밖에 있다며 자신에게 관계를 강요하지 말라며 열불을 냈다.


나 걔가 좋아졌어.


뭐, 그게 B가 선택한 삶이니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처지는 아니었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는 건 자신의 몫이니까. 그 살얼음판에 금이 가고, 그 금으로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구멍이 나서 자신의 관계가 망쳐지는 건 본인의 몫이니까. 어쩌면 본인이 주욱주욱 그어대던 선 때문에 금이 가는 거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B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애인 중 한 명이 좋아졌단다. 질투가 난단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사람과 썸을 타고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단다. 근데 붙잡을 명목이 없다면서, 애써 쿨한 척 축하해주는 거 밖에는 답이 없단다. 너라면 어떻게 할래.


질투라. B에게도 그런 게 있었나. 그때는 B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어떤 판단도 서지 않았다. 그렇게 B는 그 애인과 절연했다. 정확히는 절연당했다. B가 술에 취해 그 애인에게 사랑을 구걸하자, 그 사람은 얼음장 같이 차가운 헛웃음을 짓고는 B를 차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B는 자신의 감정에 서툴렀던 사람 같았다. 젊은 날의 치기로 자신의 감정을 포장해, 좋아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무시한 그런 사람. 나는 어쩌면 B가 자신들의 애인들을 모두 좋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내 젊은 날의 객기는 너와의 추억을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포장시켰고, 날 두근거리게 만들었지. 그 두근거림은 곧 설렘이 되었고, 그 설렘은 곧 사랑이 되었나 봐.


하지만 나의 서툰 사랑이 너를 시들게 만들었어. 또한 나를 시들게 만들었고. 운명이라 여겼던, 인연이라 여겼던 선물 같던 순간을 시들게 한 거지.


미안해 너에게. 미안해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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