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니혼슈(日本酒)를 좋아하고, 조금 안다는 것이 알려져서 주위의 아주 감사한 지인들이 출장길이나, 여행길에서 그 동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니혼슈를 자주 선물해온다.
그때마다, 꼭 좋은 칼럼으로 보답한다고 대답하는데 그 1편이 될듯하다.
선물도 선물이지만, 그 알콜보다도 진한 우정과 배려가 너무 감사해서 가능하면 칼럼으로 게재하려고 한다.
지인 덕분에 입수한 이번에는 전혀 니혼슈(日本酒)의 이미지가 없는 오키나와(沖縄)에서 유일하게 생산되는 니혼슈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키나와(沖縄)는 일본 최남단의 도도부현(都道府県)이며, 에메랄드 빛 바다를 가진 일본의 남국 리조트 휴양지이다. 술은 일반적으로 아와모리(泡盛)라는 술 장르가 아주 유명하고 메인 생산지이며, 일본인에게도 오키나와의 술이라고 하면, 바로 아와모리를 떠올린다. 물론 오키나와의 지역 맥주인 오리온 맥주(オリオンビール)도 빠뜨릴 수는 없다.
아와모리의 재료는 태국 쌀(タイ米)이며, 2차원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키나와가 발상지라고 일컬어지는 흑누룩균(黒麹菌)으로 만든 쌀누룩으로 빚어서 단식증류(単式蒸溜)한 술이고, 일반 일본 소주들은 알콜 도수가 대략 25도인데, 아와모리는 30도 이상이 기본이고, 45도, 60도까지도 있다.
오키나와의 옛지명인 류큐(琉球) 아와모리(泡盛)
단식증류는 간단히 말해서, 1번만 증류해서 얻어진 술인데, 아무래도 연속식 보다는 맛이 깔끔하다기 보다는 원료자체의 향이 강하며, 과음을 하면 다음날 많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일본 4대섬을 중심으로 하는 본토의 기후와는 전혀 다른 아열대 기후인 오키나와에서는 이런 증류주가 생산에 용이하다.
그런 오키나와에서 양조주인 니혼슈를 만들어내고 있어, 많은 주목을 끌고 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레이메이(黎明)다. 우리 말로 읽으면 여명이 된다.
오키나와현(沖縄県)의 현청 소재지인 나하시(那覇市)에서 차로 북쪽으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우루마시(うるま市)라는 곳의 타이코쿠 주조(泰石酒造) 에서 생산하고 있다.
1952년에 창업했으며, 처음에는 오키나와의 주일 미군에 납품하기위한 양조장이었다.
창업자인 야스다 시게후미(安田 繁史)가 1967년에 니혼슈 제조를 시작해, 현재는 2대째인 야스다 타이지(安田 泰治)가 양조하고 있다.
오키나와에는 고도의 정미(精米)가 가능한 시설이 없기 때문에, 정미된 쌀을 큐슈(九州)나 혼슈(本州)에서 일부러 가져와야 하고, 물은 니혼슈를 양조할만한 적합한 물이 없어서, 천연수를 연수(軟水) 처리해서 사용하고 있는 등 오키나와에서의 니혼슈 양조는 고난의 연속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니혼슈는 초가을에서 겨울사이에 양조를 한다. 그런데, 연간 평균 기온이 20도 전후인 오키나와에서 그 제조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니혼슈를 빚어낼수가 없다. 그래서 술이 양조되는 통과 저장탱크 바깥쪽에 찬물로 계속 돌려서 온도를 15도 이하로 유지한다. 그 방법을 30여년간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오키나와 내에는 니혼슈 제조에 있어서, 정보교환할 업자가 없고, 본토와는 다른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오키나와에서 단순히 니혼슈를 만들고자하는 열정에 의존해서 만들기에, 이 술을 만나게 된다면, 맛보다도 그 열정과 의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마셔야 할듯하다.
오키나와에 서식하는 공작(孔雀)
다만, 창업자인 야스다 시게후미(安田 繁史)는 니혼슈만을 제조하기 위해서 전력을 쏟았다기 보다는 니혼슈도 만드는 생각을 가진 듯하다. 이와테 대학(岩手大学)에서 농예화학 (農芸化学)을 전공하고, 기술자로서의 자존심을 오키나와의 땅에 심었다고 볼 수 있다.
니혼슈를 비롯해, 아와모리(泡盛), 갑류 소주(甲類焼酎), 미린, 혼성주(リキュール)까지 총 5개의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뱀인 하브(ハブ)로 담은 하브슈(ハブ酒)
오키나와는 의외로 높은산이 없고, 평지로 이어져 있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일출과 일몰이 아주 이쁘다.
일반적으로는 온나손(恩納村), 챠탄(北谷) 등 서쪽지역에 관광지 및 리조트가 많이 몰려있고, 이 타이코쿠 주조(泰石酒造)가 있는 우루마시(うるま市)는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해안을 바라보며, 아침에 떠오르는 남국의 일출 즉 여명을 보면서 네이밍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봤지만, 실제는 달랐다.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 (沖縄県 宮古島)
1965년에 나가사키현(長崎県)의 이사하야시(諫早市)의 어느 양조장과 기술제휴를 맺고, 니혼슈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그 양조장의 이름이 바로 레이메이(여명) 주조(黎明酒造)였다. 여기에서 그대로 네이밍을 한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그 열정은 이해하나, 니혼슈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맛있다고는 할 수 없는 술이다. 그런데 최근 2020년에 새로운 니혼슈의 라인업을 출시했다. 정미비율은 70%이고, 주조호적미(酒造好適米)는 큐슈산(九州産) 히노히카리(ヒノヒカリ)를 썼다고 한다.
츄라사키(美ら酒) - 타이코쿠 주조(泰石酒造) 홈페이지 인용
이 술의 이름을 츄라사키(美ら酒)라고 명명했으며, 츄라(美ら)는 오키나와 방언으로 아름답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사키는 사케(酒)라는 글자의 발음에 다소 변형을 준 듯하다.
바닷가의 곶을 뜻하는 사키(崎)의 의미를 부여하려 한것인지, 오키나와의 또 다른 방언인지는 모르겠지만, 네이밍이 상당히 잘된 듯 하다.
오키나와의 수호신, 시사(シーサー)
오키나와에 가보면 가장 유명한 수족관으로 츄라우미 수족관(美ら海水族館)이 있고, 거기 바로 옆에 비세자키(備瀬崎)가 있다. 즉, 오키나와에 가면 츄라와 사키는 아주 쉽게 접할수 있고, 금방 연상되는 단어의 합성인 것이다.
오키나와의 전통 돼지요리인 라프테(ラフテー), 시마 두부, 대만요리 등과도 잘어울린다고 한다.
오리온 맥주 초롱(提灯)
참고로, 오키나와에만 한정적으로 판매되는 오리온 맥주(オリオンビール)도 있는데, 더운 날씨에 니혼슈가 그렇게 구미가 당겨지지는 않겠지만, 상기의 스토리를 봐서라도 한 잔 정도는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