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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사마 jemisama Sep 08. 2024

소주韓잔 사케日잔-91: 이즈미바시(いづみ橋)

한국무역협회 투고 : 아흔한 번째 이야기

이즈미바시 (いづみ橋, いづみばし)

 - 이즈미바시 주조, 카나가와현 에비나시 (神奈川県 海老名市)

 - 양조장 북쪽에 흐르던 이즈미가와와 옥호였던 하시바에서 이즈미바시라고 작명

 - 철저한 쌀재배부터 양조까지 일관생산 및 수작업

 - 저농약 사용 등 논을 지키기 위해 상징적 논 벌레인 고추잠자리를 심볼로 채택 



도쿄 인근의 가까운 곳에 그렇게 잘 알려지지 않은 명주가 의외로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알려졌으면 하는 정말 좋은 이념과 마인드를 가진 존경스러운 양조장도 많은데 오늘은 그런 양조장 중 하나인 카나가와현 제1위 사케 '이즈미바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즈미바시 쥰마이다이긴죠 - 홈페이지 인용

제가 현재 약 100 여군데의 양조장을 찾아다녔는데 그중에서 정말 인상적인 양조장이 조금 있습니다. 여기 이즈미바시를 양조하는 이즈미바시 주조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 인상적인 이유 중 하나는 양조장 자체의 정경, 분위기였고 또 하나는 정말 친절하고 차별화된 현지 응대였습니다. 


이즈미바시 주조가 있는 곳은 카나가와현 에비나시(海老名市)로 일반적으로 일본인에게 에비나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고속도로 휴게소입니다. 한국의 경부선처럼 최고의 간선이 바로 도쿄와 나고야를 잇는 토메이 고속도로인데 도쿄에서 가장 가까운 휴게소(SERVICE AREA)이자 전국에서 가장 큰 휴게소가 바로 에비나 휴게소입니다.  


칸토지방 카나가와현 에비나시


도쿄에서 나갈 때는 정체가 심해서 대부분 여기를 지나면서부터 풀리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이 휴게소를 들러서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주전부리를 사게 되고, 귀성 시에는 미처 사지 못한 오미야게(토산품 선물)를 이곳에서 구입해서 지인과 가족에게 돌리곤 합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술을 판매하지 않으므로 에비나의 술을 선뜻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의 이즈미바시라는 명주가 있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즈미바시 주조는 일본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이곳 에비나에 에도시대인 1857년 창업했습니다. 


이즈미바시 메구미 블루라벨 


일본 100 명산에도 들어가 있는 탄자와산의 복류수를 사용해서 사케를 빚고 있습니다. 

이 양조장의 가장 큰 특징은 양조장으로서 술만 빚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사케에 쓰이는 쌀인 주조호적미를 직접 재배하는 등 현지에서 모든 재료를 자체 수급해 사케를 만들어내는 일관방식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이즈미바시라는 브랜드는 양조장 북쪽에서 흐르고 있는 이즈미가와(泉川,いづみがわ)와 이즈미주조의 옥호인 하시바(橋場)를 합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1927년부터 쓰고 있는 브랜드로 이즈미가 현대에는 いずみ인데 당시의 강이름은 いづみ로 불렀기에 브랜드는 이즈미바시(いづみ橋)가 되었고 양조장 이름은 이즈미바시(泉橋)가 되었습니다. 


이즈미주조 내부 테라스 


“양조는 벼농사부터”라는 신념을 가지고, 쌀을 키워내는 흙을 개량하고 농약사용을 최대한 억제하는 등 자연환경을 고려한 농업과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이념으로 경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논은 자손들에게 빌렸다는 생각으로 다음 세대에 최고의 논을 물려주기 위해서 논에서 살아가는 벌레와 식물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양조장의 컨셉이자 가장 상징적인 심볼을 논에서 자라는 고추잠자리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고추잠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농약사용의 자제와 토지개량 등의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는 맹세이자 굳건한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즈미바시 심볼 - 고추잠자리


그리고 이즈미바시 주조에서는 모든 쌀을 자체적으로 정미하되 최신 기술인 편평 정미로 하고 있으며 양조알코올을 넣지 않는 쥰마이슈만 생산하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90%를 현지 지역의 쌀을 쓰고 있으며 가장 고집스럽게 고수하는 것은 철저한 수작업입니다.  


일반 농가에서도 정미를 위한 건조기를 별도로 소유하고 있지 않은 곳이 많은 상황 속에서 사케 품질 향상을 위해, 햇볕에 그냥 쬐어 건조해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나쁘면 한결같은 사케를 만들 수가 없다는 생각에 전문 건조기를 설치해서 안정적인 주질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즈미바시 주조 입구에 쓰인 상호


1857년 창업 이래 식용쌀을 중심으로 재배를 해오던 이즈미바시 주조는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조용 쌀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부터는 현지 생산자들과 함께 "사가미 주조용 쌀 연구회"를 발족시켜 주조용 쌀의 연구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사가미는 이 지역의 옛 지명입니다. 2006년부터는 전량을 쥰마이슈만 생산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재배양조장으로 상표등록해서 지역의 특색을 소중히 하며 주조에 임하고 있습니다. (등록상표 제5931100호)


이러한 노력들이 뒷받침되어 이즈미바시는 2018년에 IWC에서 은상을 받았고 2020년부터 도쿄국세청 청주감평회 쥰마이긴죠 부문에서 특등상을 3년 연속받았습니다. 




이즈미바시 주조의 수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코우지부타(麹蓋)라는 옛날 방식의 목재도구를 이용해서 누룩을 제조하는 것입니다. 이는 일반적인 양조방법과 비교했을 때 약 3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요구합니다. 수분량과 온도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고 품질 관리가 편리한 것이 특징이지만 대량생산이 어려워 소량으로 술을 빚습니다.


옛날 방식의 누룩 제조도구인 코우지부타 


두 번째는 사케 술덧(모로미)이 완성된 후, 사케와 술지게미를 압착해서 분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 최근 대부분 양조장이 채택하고 있는 야부타 기계방식을 거부하고 모든 사케를 술주머니에 넣어서 짜내는 옛 방식의 후네시보리(槽しぼり) 방식으로 분리합니다. 

이 또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이즈미바시 주조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방법이며, 처음에 갓 나오는 다소 불안정한 아라바시리, 가장 안정적인 사케 층인 나카도리, 마지막의 걸쭉한 세메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고 세정이 용이해서 위생적인 점을 들어 이 방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분리된 사케를 라인업별로 병입을 하는데 최고급 라인업인 쥰마이다이긴죠는 나카도리만을 엄선해서 병입 하기에 보다 안정적이고 확실한 주질을 확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케와 술지게미를 분리하는 방식  - 야부타 기계방식(좌), 후네시보리(우)           


세 번째는 생산량의 50%를 옛 주조방식인 키모토 양조법을 채택한다는 것입니다. 천연 유산균을 이용한 옛날 양조방식으로, 이 역시 시간은 걸리지만 깊이 있는 맛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이즈미바시 주조 내의 한켠에는 슈유칸(酒友館)이라는 전문 샵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매점 같은 곳인데, 이곳에서만 한정판으로 살 수 있는 사케도 있고 아츠칸 온도계나 도쿠리, 오쵸코 등의 사케의 용기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있던 옛 양조장 건물을 개수공사하여 만든 곳인데 아주 운치가 있습니다. 양조장 견학 후 기념품을 사는 공간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동전을 넣고 원하는 사케를 마실 수 있는 시음도 가능하며 된장 등의 사케 이외의 발효제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슈유칸 전경과 내부 시음 기계


그리고 에비나 역 근처에는 이즈미바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쿠라모토 카코우(蔵元佳肴)라는 레스토랑이 이즈미바시 주조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케와 마리아주가 좋은 음식들을 준비하여 제공하는 코스요리인데, 대략 7~8가지의 이즈미바시를 종류별로 마실 수가 있습니다. 요리는 기본적으로 현지 농가가 재배한 제철 야채와 에비나 앞바다인 사가미만에서 수확한 신선한 해산물, 그리고 지역 축산농가에서 제공되는 소고기 등으로 에비나 지역의 특산물을 이용한 것이 기본입니다. 


쿠라모토 카코우 이즈미바시 입구



제가 칼럼을 쓰면서 일본의 상도의나 경영이념에 감명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금번 이즈미바시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를 겪으면서 사케의 판매가 급감했고 판매가 되지 않으니 당연히 지역농가로부터 자금적으로나 수요적으로나 쌀을 매입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지역사회에 대한 책임과 지역과 함께 하려는 의지로 기존의 매입량만큼 그대로 사들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재고는 남을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유효활용하기 위해서 현지의 빵집이나 급식회사에 제공하면서 농가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옛날에 사회적으로 아주 큰 타격이 있어서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각 도매상에 기존 가격대로 사케를 팔고 이를 소비자에게도 기존 가격대로 팔아달라고 주문하며 스스로가 손해를 안으며 사회적 책임을 다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를 감명 깊게 지켜본 도매상이 이 양조장에게 기쿄(義侠, 의협)라는 브랜드를 작명해 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것과 같은 사례로 보입니다. 


이즈미바시 주조 라인업

  

엄청나게 화려하고 대서특필되는 그러한 초특급 명주는 아니지만 현지의 자연과 농가를 소중히 하며 한걸음 한걸음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이런 양조장의 소박한 모습은 한 철 대박 났다가 금방 잊히는 유행가가 아닌 언제나 들어도 질리지 않는 발라드 같은 은은함이 정말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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