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온다.

가장 추운 봄의 문턱에서

by JEMMA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아껴둔 채 매일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있다. 늘 겉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계절까지 아이스커피를 아껴두었다가 어느 따뜻한 날에 오랜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며 그 설렘을 즐기곤 했다. 이번 겨울 끝무렵에는 마침 심한 감기에 걸려, 목이 아파 음식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서 일주일 내내 죽밖에 못 먹었고 차가운 음료를 마시면 통증과 기침이 더 심해졌기에 마실 수 없기도 했다.


2월은 조바심의 계절이다. 늘 2월에는 좀처럼 기다리는 봄이 속히 오지 않아 역정을 내곤 했다. 내 기다림을 골탕 먹이기라도 하는 듯 날씨는 따뜻해질 듯 말 듯 10도를 넘어섰다가 다시 5도로 떨어졌다가 하며 애를 태운다. 오늘도 요 근래 가장 추운 날이다. 벗어던지고 싶은 겨울 코트를 다시 꺼내 입었다. 아직 목이 다 낫지 않았지만 목도리만은 내던져 버리기로 한다. 길을 나서자 목으로 찬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그러나 성큼 다가선 봄의 기운에 날카롭던 칼바람은 한풀 기가 꺾였다.


오늘도 얼음이 짤랑거리는 아이스커피의 유혹을 물리치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글을 써 본다. 갑자기 많아진 업무를 처리하느라, 또 갑자기 찾아온 권태 속에서 헤매느라 글쓰기는 물론이고 독서나 다른 취미 생활도 딱히 하지 않았다. 감기 몸살 때문이기도 했다. 보통 때는 이삼일 푹 자면 낫는데 이번 감기는 거의 삼 주 동안이나 몸이 회복되지 않아서 꽤 고생을 했다. 봄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 아주 혹독하다.


작년에는 봄을 기다리며 무엇을 바랐었나? 재작년에는, 또 그전에는? 세월이 갈수록 잘 기억나지 않는다. 또 설령 기억이 난다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소망이라는 듯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나이가 드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올해는 무엇을 바랄까. 그저 봄이 오기를 바라는 이 마음이 덧없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생각을 하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추운 날씨임에도 햇살이 좋다. 일부러 창가에 앉았는데 꽤나 포근하다.


요즘 윤동주의 시집을 읽고 있다. 얼마 전 윤동주 문학관에 가서 시를 읽었는데, 한자가 적혀 있고 펜으로 줄을 긋고 수정해 놓은 친필 복제본이 마음에 들어서 이번에 1955년 정음사 버전으로 나온 것을 샀다. 윤동주의 시는 감동과 희망과 의욕을 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절망감을 주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그는 시대를 초월하는 흔적을 남겼으나 나는 훨씬 덜한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지쳐버려 아무 흔적도 없이 풍파에 밀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 두려움을 내가 극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계속 살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헤쳐 나가야만 한다. 그렇게 헤쳐 나가다 보면 어느 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그때 헤쳐 나간다는 것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도 포함된다. 나는 이번 겨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어쨌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고, 설에는 여행도 갔다 왔고, 만사가 귀찮으면서도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었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 왔고, 해야 할 일들을 아슬아슬하게나마 다 해내면서 2월을 보내고 어느새 3월이 되었다.


이 세상을 이미 지나간, 그리고 현재 지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봄을 기다린다. 윤동주도 봄을 기다렸고 나도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지 않는다며 화를 내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봄이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봄이 오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떠나버린 이들에게 나의 철없는 마음이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이제는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기억하리라. 나의 추운 날과 그들의 추운 날을 잊지 않으리라. 마침내 봄이 온다면 웃을 것이며 봄이 오지 않는다 해도 웃으리라. 다정한 마음이란 봄뿐만 아니라 겨울까지도 품을 수 있는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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