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파업의 첫 관문
잘못 들어선 길이라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잇따른 실패에도 어떻게든 후회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러나 가면 갈수록 아무 보람도 없이 고갈되기만 하는 삶이었다. 주말을 즐길 여유도, 일상의 즐거움을 누릴 틈도 없이 바쁘게 살았다. 꾀 부리지 않았다. 비록 이 일을 사랑하게 되는 날은 오지 않겠지만, 열정을 쏟다 보면 보람과 애착이 생기기를 바랐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가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슴 뛰는 삶.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일. 천직. 그러한 삶을 간절히 바래왔는데.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더 지독하게 살지 못해서, 그래서 놓쳐버린 걸까. 머릿속에 이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수없는 질문 끝에, 결정을 내렸다. 다시 시작해보자. 그리고 그 시작의 시작은 퇴사였다. 끝없이 고갈되기만 할 뿐 즐거움은 전혀 없었던 회색 같은 하루하루. 그런 삶을 끊어낼 용기를 드디어 낸 것이다. 불안했다. 친구과 내 또래 지인들은 모두 자리 잡고, 승진하고, 결혼을 하고, 안정을 찾아가는 이 30대 후반에 나는 다시 유턴을 해야 하니까. 어쩌면 결혼은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집도 못 살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 '만년 대리'같은 인생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이후에는 정확히 무슨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그러나 모든 질문들의 답을 찾는 첫 관문은 바로 퇴사였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답을 얻지 못한 채 회색 빛깔의 삶을 살다가 사그라질 수 밖에 없다. 퇴사하고 차근차근 생각해보기로 했다. 마음에 품어왔던 꿈이었지만 대차게 거절 당했던 그 삶을 다시 도전해볼지, 다른 새로운 일을 찾아볼지, 아니면 현 직종은 유지하면서 다른 직장을 찾아볼지 쉬면서 고민해보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쉽지 않은 근무를 마무리한 어느 여름날, 드디어 퇴사날이 되었다. 거짓말 같은 그 날이 비로소 왔다. 퇴사하는 날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먹고 출근했다. 햇살이 이렇게나 따사로웠던가. 퇴근길에는 카페에 들러서 아무 걱정 없이, 노트북도 킬 필요 없이 아샷추를 마시면서 멍때려야지. 속눈썹 펌과 피부 관리도 예약해두었다. 시간아 빨리 가라. 어서 퇴근 시간이 되어라!
모든 업무를 마무리 하고 미리 싸놓은 짐을 챙겼다. 군데군데 인조 가죽이 뜯겨 나간 실내화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작별 인사 후 마지막 퇴근길,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카페로 가서 아샷추를 시켰다. 널찍한 자리에 앉아서 아샷추를 들이키면서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할 일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그냥 멍하니 빈둥빈둥 앉아서 창 밖의 하늘, 거리, 사람들을 구경했다. 꿈인가? 수없이 그리던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니. 드디어 풀려났구나. 울타리 밖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보니 해방감, 두려움, 행복, 불안함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아, 자유다. 사랑스럽고 두려운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