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떡볶이 저런 떡볶이
오늘은 무엇을 할까.
장마 기간이라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데 오랜만에 맑은 날씨라 밖에 나가보기로 했다.
그동안 바빠서 프랜차이즈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었는데 줄곧 시장이나 개인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예전에 좋아했던 떡볶이집은 줄이 너무 길어서 평일 낮에 가야 덜 붐비는데 시간이 안 맞아 갈 수 없었다. 가고 싶은 세 곳 중 두 곳을 골라 오늘과 내일 떡볶이 투어를 가보기로 했다.
노트북 없이 간단한 에코백을 들고 버스를 탔다. 한산한 평일 낮의 풍경이 평화롭다. 뚜벅이라 대중교통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 노선이 애매해서 버스에서 내린 후에 꽤 걸어야 한다. 큰 도로를 지나 주택가와 좁은 골목을 걸어갔다. 군데군데 예쁜 카페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근방을 지나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속속들이 탐방해본 적은 없어서 마치 여행 온 기분이 들었다. 한창 일할 시간에 이렇게 빈둥거리면서 돌아다니는 날이 오다니! 만약 일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첫 끼인 삼각김밥을 한 입에 쑤셔넣고 우적우적 씹으면서 정신없이 깨면 깰수록 불어나는 저주받은 퀘스트를 깨느라 정신이 없었겠지. 거기서 탈출해 나오다니, 정말 행복하다. 이렇게 따사로운 햇살을 쬐며 이렇게 한적한 마을을 걸으면서 느끼는 고요함이란!
첫 번째 떡볶이는 단맛은 최소화하고 매운맛은 최대화된 매서운 떡볶이였다. 굉장히 드라이한 맛으로, 대학 시절에 룸메이트와 거의 3일에 한번씩 먹던 떡볶이 맛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무슨 맛으로 먹냐고 하고, 사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남들에게 맛있다며 추천할 수는 없는 맛이지만 이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되어 순간순간 생각나 달려가게 만드는 맛. 떡볶이를 실컷 먹으려고 아무 것도 안 먹은 채 한참을 걸어와 너무 배가 고파서 떡볶이, 계란, 김밥, 순대와 간을 1인분씩 시켰다. 주문할 때 주인 할머니가 혼자 온 게 맞는지 내 주변을 두리번거리셔서 조금 부끄러웠지만, 놀랍게도 남기지 않고 혼자 다 먹고 왔다. 아, 추억의 맛. 달려오고 싶었지만 오지 못한 채 세월이 지났다. 가물가물한 설렘이 살아나 눈물이 나왔다. 잃어버린 나의 떡볶이를 돌려받았다!
다음 날 먹은 두 번째 떡볶이. 달달매콤한, 누구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맛있는 맛이다. 오늘은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떡볶이와 튀김 오뎅과 만두만 먹을 생각이라 2인분을 시켰는데 커다란 그릇 두 개가 나와서 꽤 당황스러웠다. 이틀 연속으로 떡볶이 폭식이다. 더 이상 먹자마자 소화되던 20대 초반의 위장이 아니라서 걱정스러웠지만 일단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떡볶이를 먹는데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평일 낮인데도 이렇게나 사람이 많다니. 주말에는 아예 들어오지도 못할 것 같다. 큰 테이블은 자리가 나는대로 모르는 사람도 같이 앉아서 먹고 오래된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늙어버린 내 위장만 빼고 모든 게 완벽한 타임슬립이었다.
드라이한 맛이 더 좋은지, 달달매콤한 맛이 더 좋은지는 결정할 수 없었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다. 인생이란 이 맛 저 맛이 어우러져야 지겹지 않은 법이니까. 맛이 이렇든 저렇든 상관없는 마음으로 좀비처럼 사는 게 아니라 이런 때는 이런 맛, 저런 때는 저런 맛을 원하고 또 맛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많이들 이렇게 말하고, 또 이 말이 맞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언제나 이 말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사람이란 강인하기도, 나약하기도 하다.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는 마음가짐 하나만으로 헤쳐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이들의 격려를 들으며 더 절망을 느낄 수도 있다. 나의 마음가짐이 부족해서 이런 것이라고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런 시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용기란 사람마다 다르다. 나에겐 모든 것을 일시정지할 용기가 필요했다. 더 나아가기 위해 멈추고, 이 멈춤으로 인해 일어날 모든 결과를 책임질 용기.
이번 인생 파업을 지나고도 난 또 불만족할지도 모른다. 또 잘못된 선택을 하고, 또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있을 실패에도 지치지 않기를. 푸르렀던 때를 잊고 내가 어떤 것에 설레었는지 까먹고 메마른 하루하루를 보낼 때, 햇살이 비치는 곳을 발견할 수 있기를. 다시 햇볕 드는 곳으로 빠져나와 여러가지 맛을 보는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이 삶의 유종의 미를 웃으며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