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은 아닐지라도

본가, 동창, 정다운 것들

by JEMMA

처음 본가를 떠나던 때가 생각난다.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고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마지막 근무 날, 마지막으로 들른 직장 앞 슈퍼에서 주인아주머니와 인사를 하면서 이제 대학원에 입학하여 떠나게 되었다고 했더니 엄청 축하해 주셨다.

"와~ 너무 멋지다. 대단하다. 정말 축하해요!"

벅차올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별수 없이 돌아온 고향에서 방황하며 보낸 6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늦었지만 그렇게 나의 멈춘 삶이 서서히 출발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졸업 후 우여곡절 끝에 꿈을 접기로 했다. 그러나 본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잔뜩 들뜬 채 떠났던 곳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실패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동생이 살고 있던 도시로 갔다. 그리고 다시 원래 하던 일을 시작했다. 갓 상경하여 자리 잡을 때 악독한 직장에 잘못 들어가서 몸고생 마음고생하다가 한 달 만에 크게 싸우고 그만둔 후 본가로 돌아가 2주 동안 앓아누워 있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내려온 적이 있다. 이후에는 본가에 잠깐씩 들른 적은 있지만 오래 머무른 적은 없었다.


퇴사 후 오랜만에 본가에서 1주일을 보냈다. 지금 사는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어서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 드러누워 채널을 마구 돌리며 마음껏 텔레비전을 봤다. 그리고 엄마가 쿠팡으로 사놓은 간식거리들과 엄마가 끓여놓은 청국장과 물김치를 계속 꺼내먹었다. 너무 맛있다. 엄마가 만든 수제비, 김치전, 야채찜, 잡채, 박대구이, 김치찌개... 먹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위장의 한계 때문에 다 먹을 수가 없다. 1주일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집에서 실컷 뒹군 후에는 동창들을 만나러 나갔다. 20대 시절 여기서 함께 지낼 때는 수시로 만나서 수다 떨고, 야식을 시켜 먹고, 휴일을 맞춰서 놀러 가고, 연말 파티도 하면서 재밌게 지냈는데 이제는 나를 제외하고 다 시집가서 아이를 키우고 있고 나도 타지에 살고 있으니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내가 일을 때려치우고 쉬러 왔다고 하니 다들 시간을 내주었다. 한동안 못 봤는데도 얼굴을 보면 숨통이 트이는 것 같고 웃음이 나온다. 오랜만에 시답잖은 농담을 하면서 낄낄대니까 마치 20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시간이 되는 대로 이 친구를 만났다가 저 친구 집에도 갔다가 했다. 돌아다니면서 인생네컷도 찍었다. 학창 시절에 오락실에서 스티커 사진을 찍은 이후로 처음이다. 사진을 찍고 설빙에 가서 고딩들 사이에 끼어서 빙수도 사 먹은 후 다른 친구네 집에 쳐들어가서 치킨과 떡볶이를 시켰다. 친구는 냉장고를 털어서 먹다 남은 와인, 과자 등을 가지고 왔다. 간만에 배가 찢어지도록 웃었다. 각자 분주한 삶을 사느라 아마 지키기 힘들 거라는 걸 알았지만, 우리는 헤어질 때쯤 말했다.

"야, 우리 여행 가자. 옛날처럼."

생각만 해도 들떠서 우리는 또 웃었다.


집에서 뒹굴거리고, 친구를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20대 시절 나의 힐링 장소들을 다시 찾아가 보았다. 마음 답답할 때마다 산책했던 강변길과 하천길을 걸었다. 공부하러 들어가 구석자리에 자리 잡고 앉아서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몰래 훌쩍거리면서 울던 카페도 갔다. 그동안 타지생활 하느라 못 먹었던 추억이 깃든 포장마차 떡볶이, 다꼬야끼, 닭꼬치집, 쌀국숫집에도 갔다. 정다운 고향의 품에서 지친 마음이 점차 회복된다.


따분하고 지루했던 고향살이. 닭장 속에 갇힌 닭 같다고 생각했다. 좁아터진 곳에 갇혀 어느새 있던 날개도 쓰지 못하게 된 닭. 날아가고 싶다. 날아가고 싶다. 날아가고 싶다. 늘 되뇌며 하루하루 버티었던 귀양살이였다. 의기양양하게 탈출하여 다시 돌아올 때는 더욱 의기양양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가기 싫었다. 나를 비웃는 눈들과 불쌍하게 여기는 눈들이 싫었다. 나의 실패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 뒤로하고 떠난 고향인데, 번아웃으로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이할 즈음 생각이 났다.


떠나오니 내게 다정했던 순간들만 생각난다. 카페에 혼자 앉아 눈물 흘리고 있을 때 우연히 마주친 친구. 놀란 친구에게 난 콘택트렌즈 때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며칠 후 루테인과 견과류, 귤이 잔뜩 든 종이 가방을 주었다. 함께 한 산책, 카페라테, 늦은 밤 퇴근 후 드라이빙, 연말 파티. 웃고 떠들던 나의 20대 시절.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내세울 건 없었지만 정겹고 다정했다. 내가 좀 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좀 더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더라면 고향 생활을 더 소중히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내 삶은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더 나이 든 내가 지금을 돌아보며 역시 그렇게 생각할까. 그때 그랬었지, 하며 웃어줄까. 그가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을 더 예쁘게 먹어보자. 이 인생 파업이 아쉬운 후회로 남지 않도록, 아름다운 순간들로 잘 채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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