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뷰 맛집과 수딩 시너리
미쳤다. 숙소 무슨 일이야. 들어서자마자 생각했다. 기대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숙소가 맘에 든 이유 중 하나는 소박하고 조용해서였다. 물론 최소 3백만 원은 드는 감성 숙소랑 비교하면 부족하겠지만 나에겐 이 정도면 충분했다. 한적한 동네의 맨 끝에 자리 잡아 조용하고, 2층이어서 마을과 밭이 내려다보이고, 끝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고요한 공간이 앞으로 한 달 동안 쉴 나만의 장소다.
소파를 옮겨서 밭과 바다가 내다보이는 통창을 바라보게 했다. 밖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찜통더위지만 소파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고 있자니 산들바람이 초록색 나뭇잎들을 살랑살랑 흔들어대서 시원해 보였다. 멍하니 앉아서 경치를 감상했다. 앞으로 한 달간 여기 앉아서 멍 때릴 생각을 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벌써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이제 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가는 게 벌써부터 아쉬웠다.
조금 지내다 보니 루틴이 생겼다. 요일마다 도서관 가는 날, 동네 카페 가는 날, 바닷가에 내려가서 산책하는 날, 카페와 식당 투어 하는 날, 동생 집에 가는 날, 집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정해졌다. 보통은 점심때쯤 집을 나서 대부분 해 지기 전에 들어왔다. 차도 없고 겁이 많은 편이라 밤늦게 돌아다니는 게 무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숙소에서 해가 저무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였다.
숙소에 있을 때는 대부분 이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밖을 내다보는 데 시간을 썼다. 매일 같은 경치를 보는데도 질리지 않았다. 한 달이라는 타이머가 계속 돌아가고 있어서였을까. 처음엔 여기 앉아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앞만 내다보기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머릿속에는 계속 앞으로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파도처럼 철썩철썩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날에 대한 실패감이 불어왔다. 움켜쥐고 싶었지만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렸던 그 모든 것들이 생각났다.
적막 가운데에서 필사적으로 응시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풀이 무성한 밭 위로 작열하는 햇살과, 해가 저물고 어두워질 때 하나둘씩 켜지는 한치잡이 배들의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딘가 의심쩍은 휴식이었다. 이 시간을 휴식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지만, 몸은 쉬고 있어도 머릿속은 도무지 쉴 수가 없으니 이걸 휴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면에서 일어나는 풍랑의 질문에 시간은 답변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흘러갔다. 어느덧 아우성은 끝나가고 있었다. 응시하며 얻는 휴식은 은근하고 끈질긴 힘이 있었다. 뜨거운 열기에 모두 달아나버린 한낮의 한적한 밭에서 느리게, 느리게 흔들리는 잎사귀들. 맑은 날엔 파랗게, 흐린 날엔 잿빛으로 일렁이는 고요한 먼 바다. 주황색 노을에 점차 보라색 어둠이 잉크처럼 번져나갈 때 하나씩 불빛을 올려, 마침내 적막한 바다 가득 반짝이는 한치잡이 배의 불빛.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다 깨달았다. 이 삶은 내게 답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딩 시너리(soothing scenery). 평소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마음이 찢어진다, 마음에 화살이 수천 개 박힌다, 명치가 아프다,라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지난날의 고통 한가운데에서 나는 수딩 시너리를 발견하곤 했다. 벚꽃이 만개한 봄날, 근조 화환에서 떨어져 바닥에서 살랑살랑 나뒹굴던 하얀 국화잎들 위로 색종이처럼 살포시 내려앉던 벚꽃 잎. 짐을 부치고 떠나기 전날 밤 나선 산책길에 올려다보았던 까만 밤 속에 감추어진 나무들의 실루엣과 숨은 초록색. 삶은 울부짖고 싶은 내게 그런 장면들을 보여줄 뿐이었다.
삶의 침묵은 매정함이 아니다. 삶은 내게 나아갈 길을 정해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실은 닫힌 문이라는 건 없기 때문이다. 왜 내게만 닫혔냐고 울부짖던 날들. 그러나 수딩 시너리는 삶이 주는 다정한 러브레터였다. 문들은 닫히지 않았다고. 아무 문이나 열고 나아가라고. 네가 여는 문이 어느 것이든 그곳엔 여전히, 변함없이, 너를 살리는 수딩 시너리가 가득할 거라고.
인생 최대 번아웃이라는 위기 속에서, 그렇게 나는 또 수딩 시너리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