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투어의 부활

백수 뚜벅이의 식도락

by JEMMA

기상. 또 맑은 날이다. 일어나서 침실 창문을 잠시 내려다본다. 야자수가 가득 심긴 정원이 보인다. 불볕더위만 아니라면 정원에 앉아서 경치를 즐길 수도 있을 텐데 도무지 그럴 수 있는 더위가 아니다. 봄이나 가을에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거실로 나가 커튼을 젖힌다. 풀밭과 알록달록한 지붕들, 파란 바다와 하늘이 정겹게 머물러 있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잠시 들여다본다. 혹시나 인수인계가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 하여 아직 퇴사한 직장 메신저를 나가지 않았는데, 수시로 알림이 뜬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맞으며 뒹굴거리면서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메시지를 주욱 훑어본다. 이런저런 계획과 일정들. 그 사이에 끼여서 이리저리 치이던 게 생각난다. 거기 어떻게 있었을까.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한다.


불나는 메신저 속 세계는 잊고, 오늘도 나가보자. 이번 한달살기의 콘셉트는 '동네 백수'이다. 제주도에 오기 전 처음 세웠던 계획은 장을 봐서 소박하게 끼니를 챙겨 먹고 가끔씩만 외식을 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언제 또 제주도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니 주변에 있는 카페와 식당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당초 계획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게 생겼다. 하지만 다시 열심히 벌면 되지 않냐는 또 다른 자아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쬐었지만 아랑곳 않고 선크림과 양산을 믿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원래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어서 견딜만했다. 관광지도 가고 현지인들이 사는 평범한 동네도 갔다. 마사지도 받고 도서관에도 갔다. 시내에 가서 기념품도 사고 야시장에도 갔다. 아파트 단지 상가도 가고 민박집이 줄지어 있는 바닷가 동네도 갔다. 선풍기만 돌아가는 더운 돈가스집에서 돈가스를 먹으며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줄 서는 분식집에 오픈런을 해서 시그니처 메뉴인 쫄면과 김밥을 먹었다. 동네 백반집에서 주민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비지엠 삼으며 옥돔정식을 먹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웬만한 주변 버스 노선을 파악하게 되었다. 타야 할 버스가 안 오면 다른 버스를 타고 근방에 내려서 걸어갔다. 왠지 진짜 동네주민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남 챙길 필요도 없이 그저 내 마음 가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경치와 사람들 구경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니 영혼이 회복되는 느낌이다. 순간순간이 아쉽다. 언제 또 이런 순간이 올까? 시간이 더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바닷가 마을 담벼락
관광지에서 마사지를 받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걷다가 들어선 둘레길
택시 기사님이 본인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가는 식당이라고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해 주신 쌀국숫집


제주도 한달살기 기간에 카페 투어도 다시 부활했다. 어릴 때 카페 투어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러나 점점 카페들이 늘어나고, 비슷비슷해지고, 사람들의 안목도 너무 전문화(?) 되고, 직장 생활로 영혼이 지쳐가면서 어느새 카페를 찾아다니는 일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어 그만두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동네를 돌아다니다 카페도 여러 군데 찾아가 보았다. '동네 백수'라는 콘셉트에 맞게 한산하고 동네 카페 같은 느낌이 나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중 숙소 근처에 있는 샌드위치와 드립 커피를 파는 카페를 가장 좋아했다. 동네 주민도 있었고 관광객도 더러 찾아와서 때로는 붐볐지만 대부분 적당히 한산해서 좋았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이 카페에 가서 커피 두 잔과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이 카페에서 보낸 시간이 한달살기에서 가장 그리운 시간이다. 자주 가니까 사장님이 가끔씩 할인도 해주셨다. 마지막 떠나기 전 캐리어를 들고 카페로 들어섰더니 이제 가시는 거냐고 인사를 건네셨다. 한달살기 후 돌아와서도 문득 생각이 난다. 다시 그곳에서 시간 보낼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옛 친구 같던 간만의 카페 투어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다음에 다시 마음껏 카페 투어를 할 수 있도록 또 열심히 벌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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