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바보의 첫 교통사고
운전면허를 딴 후 나는 진짜 장롱면허가 되었다. 직장 일이 너무 바빠서 중고차를 알아볼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도로 주행 연수를 받을 시간도 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면허 있냐고 물어볼 때 전처럼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장롱 면허 맞으니까. 그렇게 2년 동안 떳떳하게 장롱 면허라고 말하고 다녔다.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 한달살기를 다녀온 후 구직하는 동안 중고차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부탁해서 소개를 받았는데 저렴한 비용으로 구매하려고 하니 좀처럼 차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 직장에 취업을 하고 한 달 정도 후에 연락이 왔다. 그런데 2012년식 대형 승용차라고 한다. 겁 많고 운전 못 하는 나로서는 경차나 준중형차를 사고 싶었는데 그런 차들은 훨씬 비쌌다. 여기저기 물어봐도 의견들이 다 달라서 결국 내가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그냥 사기로 했다.
차를 사고 나서도 마음이 왔다 갔다 했는데 막상 차를 끌고 집에 와 보니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차인데도 옵션이란 옵션은 다 넣어놔서 세대 차이를 겨우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깨끗했고 모든 상태가 양호해서 당장 손댈 것 없이 그냥 타고 다니기만 하면 됐다. 신이 나서 자차 연수를 해주는 곳을 찾아 신청을 했다.
4일 동안 10시간 연수를 받은 후에 강사님이 조금 더 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고민하다가 그만 받기로 했다.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주 주말에 혼자 차를 몰고 나갔다. 별 문제는 없었는데 연수를 받았던 평일과는 달리 주말이라 차가 좀 더 많아서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많이 연습했던 길이니까 괜찮겠지.
곧 좌회전이다. 좌회전을 하려면 1차선으로 가야지. 어... 차선 변경을 해야 하는데 차가 너무 많네. 앗... 차선 변경을 하지 못했다. 신호 받고 서서 기다리는 차들 가운데 틈이 나서 좀 들어가려고 했는데 빵빵대면서 오지 말라고 한다. 흑흑. 좌회전 실패. 직진해서 유턴해야 한다. 난 할 수 있어.
유턴을 무사히 하고 우회전을 하는데 중간에 트럭이 멈춰 서 있다. 차가 왜 서 있지? 주변에 버스 정거장도 있고 해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정차해 있다고 생각했다. 차를 피해서 우회전을 하려고 하는데 왼쪽에 차선을 넘어갈까 봐 걱정되어서 좁게 돌았다. 그 순간 들리는 소리. 쾅!
범퍼카를 탈 때처럼 트럭 엉덩이를 들이받아 버렸다. 내 차의 오른쪽 라이트가 깨져서 파편이 튀는 게 보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상깜빡이를 켜고 파킹을 넣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정신이 없었다. 트럭 주인이 내려서 나에게 다가왔다.
"아니... 차가 서 있는데 그렇게 들이밀면 어떡합니까?"
무조건 죄송하다고 했다. 어떻게 봐도 내 잘못인데 트럭 주인을 화나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트럭은 육안으로 봤을 때는 멀쩡했고 내 차는 라이트가 박살이 나고 오른쪽 범퍼가 찌그러져 처참해 보였다. 차 상태와 잔뜩 풀이 죽은 내 모습 때문인지 트럭 주인은 화를 내지 않고 어서 보험이나 부르라고 했다. 보험 회사에 전화를 했다. 보험사 직원이 곧 도착했고 지인 언니도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블랙박스로 확인을 해 보니 우회전 후에 사라지는 도로라서 차선을 바꿔야 하는데 차가 많이 와서 트럭 앞에 또 다른 차가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차례를 기다리다가 우회전을 해야 했던 것이다.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서 풀이 죽어 있는데 보험사 직원이 여기가 원래 사고가 많이 나는 곳이라고 아무도 안 다치고 트럭 주인도 좋으신 분이라서 잘 해결된 게 어디냐, 보험 처리하고 앞으로 조심해서 운전하면 된다고 위로를 해 주었다.
트럭 주인은 다친 데도 없고 괜찮다며 대인 접수는 하지 않았다. 트럭은 우리 쪽에서 도색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내 차는 오른쪽 라이트와 범퍼를 갈아야 해서 190만 원 정도 들었다. 보험처리를 하고 남은 금액은 내가 냈다. 이만하길 다행이었다. 보험사 직원도 친절했고 지인들도 위로와 격려를 많이 해 주었다. 그리고 도로 연수를 다시 신청했다.
다 해결이 되었는데 너무 우울했다. 남들은 10시간 연수받고 잘만 끌고 다니는데 나는 차를 몰고 나오자마자 사고를 내다니. 면허 시험 칠 때도 우회전이 문제였는데 결국 사달이 났다. 역시 대형 승용차를 사지 말걸 그랬나? 다시 운전하기가 무서워졌다. 사고 난 날에는 밤새도록 우회전하는 악몽을 꿨다. 우회전하다가 앞차를 들이받는 꿈. 너무 많이 돌아서 옆 울타리에 박는 꿈. 후진해서 빼야 하는데 뒤차들이 빵빵거리는 꿈. 새벽에 깨서 울었다. 왜 내가 도전하는 것마다 자꾸 실패하고 사고가 나는 거야. 남들이 보면 어이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좀처럼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다. 이번 교통사고 때문만이 아니라 지난 몇 년 동안 쌓인 실패감이 터져서 그런 것 같다.
날이 새도록 울면서 화를 내니 차츰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제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마음이 생겼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내 차는 박살 났지만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수준이다. 상대방 차는 거의 손상된 곳이 없고 차주가 좋은 사람이라 일이 복잡해지지 않았다. 위로해 주는 주변 사람들도 있고 도로 연수를 다시 받을 수 있는 돈도 있다. 실력이 안 늘면 될 때까지 받으면 된다. 비용이 많이 들면 다이소에서 화장품을 사고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면 된다. 지난날들도 헤쳐나가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무사히 잘 지나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운전. 내 삶의 실패 리스트에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속이 쓰라리지만 받아들였다. 어차피 포기할 생각 없으니까, 결국에는 내 정복 리스트에 추가될 예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