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악마라 다행이다
운전하기 전에는 엄마가 본가에서 가끔 내려오시면 주로 동생이 운전해서 여기저기 다니곤 했다. 그러나 동생이 결혼해서 제주도로 떠나고 난 뒤로는 대중교통으로 엄마와 갈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엄마와 나 둘 다 걷는 것을 꽤 좋아하는 편이라 어느 정도는 힘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중교통으로 다니는 건 한계가 있었다. 나 혼자 뚜벅이로 다니는 거야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엄마와 같이 다니려고 하니 신경이 꽤 쓰였다. 슬슬 운전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 중 하나였다.
운전을 시작한 지 반년이 되었지만 주말에만 잠깐 하기 때문에 실력이 많이 늘진 않아서 아직 다니는 곳만 다닐 수 있다. 가끔씩 복잡하지 않은 곳은 도전하기도 하지만 역이나 백화점 근처 같은 곳은 못 가기 때문에 엄마가 와도 마중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엄마가 버스를 타고 집까지 온 후에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곤 한다. 엄마도 본가 지역 내에서는 운전을 하기 때문에 옆에 있으면 덜 무섭다. 닭갈비집 외나무다리를 통과할 때 맞은편에서 오는 차 때문에 멘붕이 와도, 카페 주차장이 다 차서 내리막길 도로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뒤에서 차들이 밀고 들어올 때도 엄마가 봐줘서 무사히 해결됐다.
처음에는 비가 아주 조금 안개처럼만 내려도 무서워서 대중교통을 탔다. 그런데 엄마가 와서 같이 놀러 갈 때마다 계속 비가 내렸다. 엄마가 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차로 1시간 걸리는 근교 지역으로 드라이브를 하기로 한 날도 역시 비가 내렸다. 역시 난 '날씨 악마'인 게 틀림없다.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엄마가 가고 싶어 했으니까 용기를 내기로 했다. 악마야, 쫄지 마. 넌 할 수 있어. 비도 내리고 몇몇 구간은 차가 많아서 무섭긴 했지만 무난히 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빠져야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오른쪽에 빠지는 길이 두 개나 있었는데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두 번째 길이라고 했는데 나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하는 게 맨 바깥쪽 길이라고 우기면서 엄마 말을 안 듣고 맨 바깥쪽으로 빠졌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너무 시골길이다. 간절히 내비게이션을 들여다보았지만 이 중요한 순간에 내비는 잠잠하다.
"뭐야? 경로를 이탈한 거야, 아니야? 응???"
부질없이 말을 걸어보았지만 이놈의 내비는 나 몰라라 침묵하고 있다. 나는 내비게이션에게 "야! 빨리 안내해!"라고 소리치고 엄마는 나에게 "쯧쯧... 잘못 왔다니까?" 하며 혀를 차고. 소란스러운 바로 그때, 눈앞에 경악스러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일부러 깔아놓기라도 한 듯 쇠똥이 카펫처럼 쫙 펼쳐져 있는데, 한 50미터 정도 되는 것 같다. 차는 이미 달리고 있기에 멈출 수도 없고, 달리 방도도 없기에 그저 쇠똥길을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
"으아아악!!!!"
아... 우리 민트. 소똥 밟았어. 어떻게 해. 몸서리를 치며 쇠똥길 중간을 지나가는데 내비게이션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말을 시작했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누가 몰라, 이 망할 내비야! 분노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는데 엄마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것 봐. 엄마 말을 안 들으니까 소똥을 밟는 거야."
"응, 내 잘못 아니쥬~ 내비 잘못이쥬~"
나는 깐족거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저기 빠져나가는 넓은 길이 있어서 경로에 다시 진입했다. 지난번에 지인들과 간 산꼭대기에 있는 카페가 엄청 예뻐서 거기 가기로 했다. 가는 길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멋진 경치를 보면서 드라이브도 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다.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갈 때마다 온통 푸른 나무로 가득한 산이 우리를 양팔로 가두다가 다시 팔을 펼치며 파란 하늘이 보일 때까지 뒤로 물러선다. 긴 겨울이 지나 어느새 파릇파릇한 어린잎들이 산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두색 잎들이 햇살에 더 밝게 빛난다.
"와~ 경치 너무 예쁘다! 너무 좋다~."
엄마는 창 밖을 보며 연신 감탄을 했다. 나는 운전하느라 경치를 만끽하지는 못했지만 엄마가 좋아하니까 좋았다. 지난 추석 명절에 엄마와 놀러 갔을 때는 시내 안에서만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다닐 수밖에 없어서 덥고 힘들었는데 이제 운전해서 경치 좋은 곳으로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카페에 도착하니 마침 명당자리가 하나 비어 있길래 잽싸게 뛰어가서 자리를 맡았다. 경치를 보면서 브런치와 커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조금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다행히 카페에 있는 동안에도 비가 내리지 않았다. 엄마가 여기 온 게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뿌듯했다. 어서 운전을 더 잘하게 되어서 역에도 가고 다른 복잡한 곳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은 다시 비가 제법 내리고 차들도 많아졌다. 무서웠고 꼭 쉬는 날에만 날씨가 이 모양이라서 화딱지가 났지만 집에 도착하고 나니 다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비 오는 날에도 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바퀴에 잔뜩 묻었던 소똥도 다 씻겨 내려갔다. 럭키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