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 을, 병, 정.

그중에 나는 누구?

by JEMMA

새로운 직장에 다니면서 나는 훨씬 여유로워졌다. 잡무도 훨씬 적었고 저녁 휴게 시간도 칼같이 지킬 수 있었다. 예전엔 첫끼로 싸들고 간 빵이나 삼각 김밥 같은 조무래기를 결국 뜯지도 못하고 그대로 집에 가지고 왔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가면 절반도 못 마셔서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한 물이 되어 있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도시락도 싸서 다닐 수 있다. 첫째로 도시락 쌀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격했고, 둘째로 도시락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노예에서 평민으로 신분이 상승한 것 같았다.


그런데 처음에는 천국 같았던 이곳도 시간이 지나며 흠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원장님 입장에서도 내게 불만사항이 있겠지만 일단은 내 입장만 보자면 그렇다. 학원도 여러 스타일이 있는데, 내가 전적으로 업무를 맡아서 프리랜서에 가깝게 일하는 곳도 있고 회사처럼 틀 안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분위기도 있다. 나는 전자의 환경이 더 잘 맞는다. 그럴 때 성과도 더 잘 나타난다. 나를 자유롭게 내버려 두면 마치 머신 러닝처럼 이것저것 실패하다가 발전한다. 그런데 나를 너무 통제하면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의욕도 떨어져서 그저 그런 성과를 얻게 된다. 그런데 현재 다니고 있는 곳은 겉보기에는 자유로워 보이는 데 사실은 자유가 없다. 마치 내가 원장님의 아바타가 되어 일하는 느낌이랄까. 알아서 잘하되 통제를 벗어나면 안 된다.


갑갑한 느낌에 순간순간 불평은 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넘길 수는 있었다. 이 일이 기본적으로 할 일이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업무 강도도 세지 않은 편이고, 사람답게 살 수 있고, 운전도 시작할 수 있었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아직 일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고용주 입장에서도 나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좀 지나 신임을 얻으면 그때는 또 달라질 수도 있다. 고용주는 악덕 원장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최대한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준다. 또한 나는 학원 강사라는 일 자체에 별로 흥미가 없기 때문에 어느 학원을 가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흥미가 없다는 이유로 일을 대충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므로 일단 열심히 일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전보다는 여유가 좀 더 있으니 여러 가지 공부도 할 수 있고 앞으로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직장 동료도 나랑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그 동료는 견디지 못하고 불만을 표시했는데, 그 이후로 원장님과 트러블이 생겼다. 알고 보니 원장님 역시 그 동료에게 불만이 쌓여 있었다. 둘은 일주일 내내 의견 대립을 보였고, 결국 직장 동료는 어느 금요일에 화를 내며 퇴근했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각자 할 일을 하느라 대화도 별로 못 해봤고 연락처도 없어서 그날 이후로 볼 수 없었다. 이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그만둘 생각이 아니라면 절대 불만을 표시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솔직함이 때로는 긁어 부스럼이 될 때가 많다. 그리고 좋지 않은 얘기는 아무리 좋게 말하더라도 기분 좋게 듣기는 힘든 법이다. 내가 주인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고용주가 원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데 내 주장을 밀어붙이는 건 의미가 없다. 어릴 땐 까라는 대로 까고,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나이가 점점 드니 힘들어진다.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싫다. 지인들과 대화할 때면 이렇게 말하며 웃곤 한다.


"꼬우면 내 거 차리자!"


맞는 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난 을이니까. 아니꼬우면 갑이 될 수밖에 없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이 분야와 전혀 상관없는 대학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진작부터 정착하려는 생각으로 올인했더라면. 그러면 삶이 복잡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구처럼 지금쯤 작은 교습소라도 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회되느냐고 자신에게 질문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내가 원해서 도전했던 길이고 도전하지 못한 채 접었더라면 그것이야말로 평생 후회로 남았을 것이다. 실패했지만 도전해 봤으니 되었다. 삶은 끝나지 않았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나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경력 단절 기간을 제외하고도, 이 사교육 분야에 종사한 지 10년 정도가 되었다. 떠난 후 다시 돌아오니 감도 잃었고, 지역까지 옮기니 원점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다 무너져 내린 폐허에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힘이 나지 않았다. 나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를 싫어한다. 정말 싫어하는 가치관의 편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기에 이 일을 싫어했고, 지금도 싫다. 또 버르장머리 없고, 의욕 없고, 사사건건 내 말에 토 달면서 갑질하는 학생들을 대할 때면 그날 당장 사표를 던지고 싶다.


그런데 가끔씩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어떤 학생에게 필요한 선생이 바로 나였던 순간. 늘 모든 학생들과 잘 맞는 건 아니지만, 나여야 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도 문장 구조도 잡지 못하며 매번 내신을 말아먹는 학생들을 보면 속이 탔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도 말아먹을 게 뻔했다. 이제는 공부를 시켜 보면 다음 시험에 몇 점대가 나올지 예상이 되고 대체로 들어맞는다. 그런데 직접 학생을 관찰한 내가 가르치고 싶은 방식을 자유롭게 적용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가끔씩 보다 못해 내가 효과가 있다고 믿는 방식을 밀어붙이면 학부모님과 원장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학생의 실력 향상에 이외로 학부모님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꽤 많다. 상담을 하면 답답할 때가 많다. 또 결국에는 원장님 의견을 따라야 해서 접어야 할 때도 많다. 그럴 때면 언제나 난 권한이 없는 을이기에 한발 물러서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 우겼다가 혹여 내 방식이 통하지 않으면 닥쳐올 재앙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내 방식으로 내가 필요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계속 사교육에 종사하게 된다면, 40대에는 교습소를 차려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학생들만 가르치고 싶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생 대상으로 못하는 학생들을 차근차근 가르쳐서 대형 학원 고급반에 들어가 상위권 학생들과 경쟁하도록 보내고 싶다. 나와 합이 잘 맞는 학생들 중 구멍 난 실력을 메우니 성적이 많이 올라서 대형 학원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난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애들은 더 넓은 곳에서 경쟁하도록 보내고 남은 자리는 또 실력이 약한 아이들로 채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을의 삶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 때도 있겠지만, 조금은 더 보람 있을 것 같다.


삶은 어그러져도,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랑곳없이 계속 내 등을 떠민다. 난 또 그렇게 떠밀려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포기할 생각은 없다. 비록 만년 을의 삶이라 할지라도, 마지막 날에는 웃으며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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