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비티아이 논란

까불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by JEMMA

MBTI가 유행하며 한때 "너 T야?"라는 말이 퍼진 적이 있다. 그와 더불어 학원이 바뀌고 학생들이 바뀌어도 내가 변함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T에요?"


대답을 안 해주면 병아리 같이 졸졸 따라오며 계속 삐약삐약 물어댄다. 패턴은 항상 이런 식이다.


"저 엄마랑 싸웠어요. 숙제 안 해서 엄마가 화냈어요. 집 가기 싫어요."

"어머님만 화나신 게 아닙니다. 저도 화가 났습니다."

"선생님 T에요?"


"저 글씨 평소보다 더 잘 쓴 건데요."

"진짜? 와~ 근데도 못 알아보겠다. 다 지우세요."

"선생님 T에요?"


"선생님, 제가 카네이션도 드렸는데 왜 혼내시는 거예요?"

"카네이션이랑 네가 까부는 거랑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선생님 T에요?"


어느 날은 그냥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손을 들더니 대뜸 T냐고 물어본다. 수업 중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잔소리를 하려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내가 F 같은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럼 T 같은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갑자기 어떤 놈은 의자 위에 올라가서 십자가처럼 양팔을 뻗어 대형 T를 만들고 다른 놈은 벌떡 일어나서 팔을 휘두르며 허공에 T를 가득 그린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데 웃음이 나온다.

"... 미치겠다, 진짜."

결국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학생들은 꾸준히 나를 화나게 한다. 예를 들면 애들은 나를 무서워하는 척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놀려먹는다. 오랜만에 옷 쇼핑을 해서 야심 찬 올블랙 패션을 입고 갔는데 교실로 들어가니 저승사자가 지옥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다고 한다. 교실 태블릿 바탕화면이 피라냐 사진으로 되어 있었는데 언제 바탕화면을 셀카로 바꿨냐고 한다. 스승의 날에 아무것도 없는 백지를 주고는 나를 향한 순백의 마음이라며 소중히 간직하라고 한다. 앞머리를 잘못해서 너무 짧게 잘랐는데 다른 반 애들까지 다 몰고 와서 박장대소를 하다가 내가 쫓아가면 비둘기 떼처럼 푸드덕 달아난다. 크리스마스에 웬 솔잎 뭉텅이를 길바닥에서 진짜 주워와서는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오다 주웠다고 한다. 내신대비기간에 하도 공부를 안 하고 문제를 계속 틀려서 계속 "저런~"이라고 했더니 뭘 열심히 받아적길래 뭘 적냐고 하니 내가 "저런~"이라고 할 때마다 체크하고 있다면서 내가 30분 동안 "저런~"을 17번 했다고 한다. 왜 내 손등에 핏줄이 튀어나왔냐고 자꾸 물으며 귀찮게 해서 남의 손등에 신경 끄라고 했는데 갑자기 내 팔을 위로 들어 올리길래 뭐 하는 거냐고 했더니 팔을 들어 올리면 핏줄이 들어간다고, 자기 할머니가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나를 열받게 하다가도 웃음을 줄 때도 있다. 숙제 제대로 안 하고 많이 틀린다고 계속 갈궜는데, 내가 심한 감기 때문에 목이 다 쉬어버렸을 때 공책 숙제 마지막 부분에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어서 나으세요!'라고 적어놓기도 하고, 칠판에 츄파춥스, 쿠크다스, 마이쮸 같은 것들을 선물이라며 주욱 늘어놓기도 한다. 교재 본문에 실팔찌 만들기가 나왔는데 그걸 보고 실제로 팔찌를 만들어서 주기도 하고, 무슨 농업 박람회인지를 가서 샀다는 엄마한테 줘야 하는 꽃바구니를 나에게 주고 가기도 한다. 맨날 돈 없다고 했더니 짝퉁 명품 지갑을 만들어 돈(?)을 넣어서 주기도 한다. 어떤 학생은 학원 뺑뺑이를 도느라 저녁을 못 먹어서 아빠가 챙겨준 과자들을 나에게 주려고 해서 너나 먹으라고 했다니 많이 있다면서 억지로 손에 쥐여준다. 일이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시큰둥하게 대하다가 오래간만에 이런저런 사적인 질문을 하면, 복사기 앞까지 쫓아와서 재잘재잘 그동안 밀린 티엠아이를 늘어놓는다.


이런 이유로, 애들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가도 애들 때문에 못 그만두게 된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며 아이들을 잘 다루거나 보살피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오랜 시간 부대끼며 살다 보니 어느새 서로를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서로의 발작 버튼만 누르지 않으면 무사히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도 여전히 학생들과 티격태격하며 살고 있다. 내가 애들에게 가장 자주 쓰는 말은 "까불지 마세요"다. 갈수록 민감한 세상이라 요즘에는 좀 더 정중하게 "까불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라고 한다. 이 말을 하면 대략 5초 정도 효과가 있다. 화가 나면서도 웃기고, 웃기면서도 화가 난다. 다음은 최근 나와 학생들의 대화이다.


"선생님, 저 거미한테 물려서 수업을 듣기가 힘듭니다."

"까불지 말고 책이나 펴세요."

(5초 후)

"선생님, 저 거미한테 물렸는데 오늘 놀면 안 돼요?"

"나한테도 물려볼래?"


"선생님, 장원영 따라 했다면서요? 풉 킥." (따라한 적 없음!!)

"까불지 말고 사라지세요. 장원영보다 제가 더 먼저 태어났ㅇ※#*~@!!!!" (그라데이션 극대노)


"선생님, 수업 마칠 때까지 말 안 하고 3과 다 풀면 저 안 맞죠?"

"... 내가 언제 너를 때린 적이 있었나요?"

"네!"

"진짜로 맞기 전에 까불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T에요?"

"응, 니나 잘해."

"선생님 T죠? 선생님 T죠? 선생님 T죠?"

"제발 까불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학생들이 MBTI가 뭔지 물으면 나는 대답해주지 않고 그저 미소 지으며 신비로운 척을 한다. 어떤 학생은 내 MBTI가 뭔지 알겠다며 자신만만해하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해맑게 외친다.


"E! S! T! J!"


피식. 또다시 신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다 틀렸어 임마. 사실 나는 10년째 변함없는 찐 F다. 그리고 INFP다.


킹받는 구께(??)지갑(로고도 킹받음). 킹받는 1억 딸라. 킹받는 진짜 돈 1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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