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 영원한 먹방
평일 오후. 카톡이 와서 열어 보니 뜻밖의 인물이 카톡을 보냈다. 대학생 때 함께 미국 어학연수를 가서 1년 동안 함께 살았던 친구다. 몇 년 전 이 친구의 결혼식 때 마지막으로 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온 연락이다. 인스타에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어떤 빵집과 떡볶이 가게를 보고 가보고 싶어서 내일 오려고 하는데 시간이 되냐고 한다. 평일이라 일하러 가야 하긴 하지만, 오후에 출근하기 때문에 출근 전까지 약 2시간 정도 함께 하기로 했다. 친구는 카톡으로 가고 싶은 곳들 루트를 짜서 보냈다. 빵집, 시장, 떡볶이 가게1, 떡볶이 가게2, 통닭집.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걸 2시간 만에 어떻게 먹어. 하지만 최대한 많은 곳을 왔다 가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보인다. 최대한 가 보지 뭐. 내일 빵집에서 바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사실 내가 만삭이라, 막 빨리는 못 다니는 것 이해해 줘."
으엥? 만삭이라고? 얼마나 오고 싶었으면 만삭인데 내일 당장 오겠다고 루트를 저렇게 잔뜩 짠 걸까. 저길 다 가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만나서 결정하기로 했다.
다음 날이 되어 빵집으로 갔는데 놀라서 입이 딱 벌어졌다. 오픈 전인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오픈하고 나서 거의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게다가 유명한 빵은 품절이 되면 팔지 않는다고 한다. 허, 이 정도라니. 여기가 유명하다고 들은 적은 있었지만 원체 트렌드와 빵에 큰 관심이 없다 보니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곳인 줄 몰랐다. 더 빨리 줄을 섰어야 했는데. 어제 좀 더 조사해 볼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계속 서 있어야 했는데 친구가 신경 쓰여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앉을 곳이 없었다. 이제 곧 우리 차례다. 빨리 빨리.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친구가 간절히 먹고 싶어 했던, 명성이 자자한 이 빵집의 시그니처 빵이 우리 바로 앞에서 품절되고 말았다. 딱 한 개라도 사길 간절히 바랐던 친구는 망연자실했다. 아무 빵도 사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조그마한 빵 몇 개를 사서 나왔다. 다음에 꼭 다시 와 보기로 하고 기운을 냈지만 이미 한 시간이나 서서 기다린 탓에 진이 다 빠져서 시장은 갈 수 없었다. 택시를 타고 떡볶이나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이 지역의 간판 떡볶이집답게 역시나 웨이팅이 있었지만 다행히 자리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었다. 간단하게 떡볶이 2인분만 먹고 바로 택시를 타고 두 번째 떡볶이 집으로 이동해서 또 떡볶이를 먹었다. 아닌 밤중에 웬 떡볶이 폭식이람. 너무 배가 불러서 배를 누르면 떡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통닭집은 당연히 못 간다.
슬슬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직장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친구는 조금 더 앉아 있다가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가기로 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점심도 같이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미국에서 함께 살 때는 아침에 눈 뜰 때부터 밤에 눈 감기까지 늘 함께였는데. 그땐 사람들과 항상 부대끼는 게 피곤하다고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몰래몰래 도망 다니고 했는데, 이제는 시간 맞춰서 만나려고 해도 어렵다.
20대 초반에 우리는 뉴욕에서 월세가 가장 저렴한 지역에 속하는 퀸즈에서 함께 살았다. 경치를 감상하며 출근하는 뉴요커를 흉내 내면서 기분 전환 하고 싶을 때는 E트레인, 피곤해서 갈아타거나 많이 걷고 싶지 않으면 R트레인, 늦어서 시간을 단축해야 하면 F트레인을 탔다가 4번 또는 6번 트레인으로 환승해서 맨해튼에 있는 학교로 갔다.
돈을 아끼려고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켜서 여분의 컵에 반을 따라 비치되어 있는 우유를 부어 라테 두 잔을 만들어 마셨다. 맥도널드에서 원 달러 메뉴를 먹고, 학생증을 보여 주면 할인되어 2달러에 살 수 있는 퀸즈의 퀴클리 버블티를 마시고, 23가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있는 쉑쉑 버거 본점의 길게 늘어선 줄에 함께 서서 학교 숙제를 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원 달러 피자를 사서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후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내면, 한 조각 더 먹자는 신호였다. 타임스퀘어에 1인분에 세금 포함해서 12달러에 버거 세트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함께 신이 나서 달려갔다. 지금도 그리운 유니온 스퀘어의 감자튀김 맛집 폼므 프리츠에서 감자튀김을 잔뜩 사서 광장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와구와구 먹었다.
뉴욕의 추억을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먹은 기억 밖에 안 난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팠던 그리운 시절이다. 이 먹방의 중심에는 친구가 있었다. 두 시간뿐이었지만 약 15년 만에 만나서 먹방을 찍으니 지난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그땐 앞에 펼쳐진 꿈, 미래, 가능성으로 설레었던 시절. 하고 싶은 일들도 많았고, 자신감도 넘쳤다. 그렇게 쏜살같이 세월이 흘렀다. 이제, 좌절의 쓴 맛을 연타로 맞고 나이 들어버린 나의 꿈이란 그저 하루하루 폭풍 같은 마음을 잘 다스리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 되었다.
잃어버린 꿈. 잃어버린 흥미. 잃어버린 계획. 잃어버린 입맛. 잃어버린 것 투성이인 나의 30대 후반. 잘못 들어선 길에서 풍랑을 만났다. 배가 가라앉을까 봐 짐을 하나씩 버렸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다. 도전해라. 그 남자랑 결혼해라. 기준을 낮춰라.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난 도전하지 않은 게 아니다. 난 비혼주의가 아니었다. 기준을 낮출 만큼 대단한 걸 바란 적 없었다. 나더러 무능하다고 한다면, 그건 맞다. 그래서 실패한 게 맞다. 그래서 전부 버려야 했다. 그러나 아무리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것이 있다. 지난날의 추억이다.
추억에 무슨 힘이 있느냐고, 과거에 얽매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행복했던 추억과 헤쳐나간 과거가 없었다면 나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갑작스럽게 몰아친 쓰나미에 나를 둘러싸던 울타리가 전부 떨어져 나갔던 그때. 그때는 아파서 정신이 없었다. 불행 가운데에도 여전히 나를 붙들었던 작은 행복과 행운은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보였다. 내게 추억은 그런 것이다. 지나고 나서야 내가 그때 웃었고, 먹었고, 꿈을 꿨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울. 그래서 나는 추억을 사랑한다. 지금 보이지 않는 이 순간의 행복과 행운도 더 나이 든 나에게는 보일 것이다. 그 사실을 굳게 믿고 여전히 그때처럼 열심히 먹고, 만나고, 웃는다.
몸이 늙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위도 늙어서 예전처럼 먹다가는 병이 날 것이다. 그러나 나이 든 몸에 맞게 먹고, 즐거운 것에 웃으면 된다. 마음은 젊은 채로 놔두자. 늙지 말자. 젊은 날과 마찬가지로 설레고, 도전하고, 꿈을 품고, 좌절하고, 울고, 다시 웃고, 그러다 보면 영원한 집으로 갈 날이 올 테니까. 가난했던 뉴욕의 어학연수 시절은 불행했던 내게 선물처럼, 꿈처럼 떨어졌던 시간이었다. 지금 이 삶도 그때와 같다. 삶의 위기를 지나서 여기까지 다다랐다. 그러니 원 달러 피자와 공짜 우유를 넣은 카페라테에 행복하게 웃었던 것처럼, 그렇게 웃어서 미래의 나에게 힘이 될 추억을 가득 만들어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