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샷추의 계절

추억에 추억을 샷 추가

by JEMMA

프렌치토스트 3개월, 참깨라면 1개월, 레이즈 트러플맛 감자칩 3개월, 일본 인절미 과자 훈와리메이진 1개월, 스타벅스 트러플 머쉬룸 수프 3개월, 동네 닭꼬치집 소금맛 닭꼬치 2개월. 나는 한 번 꽂힌 음식은 몇 주고 몇 달이고 질릴 때까지 먹어댄다. 그러다 다른 음식에 눈이 가면 갈아탄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도 있고,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아이스티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아샷추'는 여름마다 돌아오는 나의 계절 음료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호불호가 꽤 갈린다. 내가 아샷추를 주문하면 "어, 나도!" 하며 따라 주문하는 사람도 있고, 한 입 마셔보고는 얼굴을 구기며 이걸 무슨 맛으로 먹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처음 마셨을 때는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스티를 좋아하고 커피도 좋아하지만 섞으니까 별로였다. 아샷추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스티를 싫어해서 아샷추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커피를 안 마셔서 아샷추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예전의 나처럼 섞은 맛이 이상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또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이스티는 달다고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에스프레소 샷을 넣으면 괜찮다는 사람도 있고, 아이스티와 커피 둘 다 좋으니 아샷추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사는 모습과 성격처럼 입맛도 제각각이다. 좀처럼 바뀌지 않는 한결같은 입맛도 있고, 새로운 맛을 도전해 보고 받아들이는 입맛도 있다. 싫어하는 음식은 절대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별로 안 좋아해도 누군가 권하면 먹고 괜찮네,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겉으로 보기엔 이것저것 다 잘 먹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런 편이다. 개고기, 뱀, 벌레, 날음식 등을 빼고는 다 먹는다. 굉장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지만 절대 못 먹을 정도로 싫어하는 음식도 딱히 없다. 그래서 지인들을 만날 때면 남들의 입맛을 맞춰주는 편이다. 심지어 원래는 입에 대지 않는 회까지 어느 정도 먹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완고하고 좀처럼 변하지 않는 입맛을 가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하면 별로 안 좋아하는 음식도 그냥 먹는 것일 뿐, 웬만해서는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끔씩 입맛이 아예 변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모두 지난날의 좋은 추억과 관계가 있다. 그 음식을 먹었던 순간이 오랫동안 따스하게 남아있을 때, 그때 먹던 음식이 뭐였든지 좋아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나는 고수를 정말 싫어해서 절대 먹지 않았는데 이제는 없어서 못 먹는다. 함께 식사할 때 상대방이 고수를 싫어하면 냉큼 달라고 해서 가져간다. 미국 어학연수 시절 살던 동네에 있던, 베트남 사람이 하는 쌀국숫집의 단골이 되었다. 다른 곳보다 가격은 싼 데 양은 많아서 자주 갔다. 그 집 쌀국수에는 향이 아주 강한 고수가 잘게 썰린 채 국물 가득 동동 떠 있었다. 처음에 먹고 질색했다. 그 후로 미리 고수를 빼달라고 했다. '노 시앙차이!' 하며 팔로 엑스 표시를 하면 주인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러나 여럿이 우르르 가서 허겁지겁 먹다 보니 고수를 빼 달라는 말을 잊을 때가 많았고, 귀찮았던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배가 고파서 그냥 나오는 대로 먹어치웠다. 그러다 익숙해졌던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주인이 '노 시앙차이?' 하며 물어보았을 때, 나는 '예스 시앙차이! 시앙차이 플리즈!!'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주인은 또 웃었고, 그 후로는 늘 고수가 가득 든 쌀국수를 먹었다.


고수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재정이 넉넉지 않아서 룸메이트들과 외식하는 날을 정해놓고 쌀국숫집에 가기로 하면 며칠 전부터 두근거리면서 기다리던 시간. 꼬질꼬질한 도로의 매연과 월마트,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제각각 갈 길을 걷던 쌀국숫집 가는 길. 식당 주인의 서글서글한 웃음. 쌀국수의 우둘투둘한 고기 부위와 버미첼리의 락교. 달짝지근하게 구운 숯불고기와 좁쌀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의 쌀밥. 이런저런 수다. 그런 것들이 떠오르기에 어느새 고수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스티도 비슷한 이유로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 야자 시간에 마시려고 친구와 사물함에 작은 카페를 차렸다. 맥심 알커피, 제티, 복숭아 아이스티 가루 등을 모아놓고 골라 마셨다. 그때 나는 아이스티 가루를 찬물에 타 먹는 걸 좋아했다. 아이스티를 타서 홀짝홀짝 마시며 내다보던 운동장. 2부 야자를 째고 친구들과 운동장 구석 나무 그림자에 숨어서 웃긴 얘기를 하며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던 때. 그때의 산들바람, 풀 냄새, 벌레 소리. 그런 이유로 아이스티를 좋아한다. 싸구려 맛이 날수록 더 좋다.


이런 아이스티에 어느 날 에스프레소 샷을 넣는 게 유행이라고 하기에 주문했다가 실망했다. 맛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마시지 않았는데, 어느 여름에 놀러 갔다가 너무 많이 걸어서 탈진하기 일보직전 눈앞에 나타난 어떤 카페 입간판에 아샷추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찍혀 있었다. 지체 없이 주문해서 들이켰는데 아이스티의 달달한 맛에 씁쓰름한 카페인의 풍미가 착 달라붙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그 이후로 여름이면 아샷추를 즐겨마시고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을 장착한 아이스티에 여름날의 그 여행길이 얹혀, 아샷추는 실로 어마어마한 음료가 되었다. 아샷추가 좋은 이유는 맛이 있어서가 아니다.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지겨운 일상을 어루만져주기 때문에 좋아한다. 좋은 날은, 완고한 입맛까지 바꾸며 추억 속에 묻히고 난 후에도 나를 계속 나아가게 한다. 좋은 날은 누구에게나 있다. 지금 없다면 앞으로 있을 것이다. 좋은 날을 발견하려면 오늘 상냥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기쁠 때에도, 화가 날 때에도, 울고 싶을 때에도, 환멸이 날 때에도 여전히 주변에 있다. 아름다운 것들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그건 스스로 찾아야 한다.


여름이 끝나갈 때까지 열심히 아샷추를 마시며 길을 걸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볼 것이다.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다음 여름이 되면, 또 다른 추억이 덕지덕지 붙어 있을 나의 아샷추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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