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1. 반짝이 손거울

by JEMMA

나는 사랑받는 손거울이다. 거울 부자인 내 주인은 서랍 속의 쟁쟁한 다른 거울들을 마다하고 늘 나를 지니고 다닌다. 언젠가 지인이 제주도에 다녀와서 기념품으로 나를 선물해 줬는데, 그녀는 다른 사람이 들고 다니는 걸 보고 자기도 가지고 싶었던 거울이라며 아주 기뻐했다. 나는 동그랗고 뒷면에 보라색 반짝이와 물이 채워져 있어서 이리저리 기울이면 반짝이들이 출렁이며 가라앉았다 솟았다 한다. 투명한 뚜껑에는 한라산과 해녀, 돌고래가 그려져 있어서 마치 보라색 파도가 치는 것처럼 보인다. 내 주인은 나를 손에 쥐고 수시로 흔들어대며 반짝이를 이리저리 옮기다 돌연 뒤집어 자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본다.


부담스럽게 얼굴을 들이밀며 빤히 응시하는 내 주인은, 내가 비춰 보인 자기 얼굴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이마, 코, 뺨을 구석구석 뚫어져라 쳐다보곤 한다. 집을 나설 때는 만족스럽게 쓱 한번 훑어보고 말더니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거나 그들과 대화하는 도중 문득문득 나를 꺼내 들고 저런 행동을 한다. 매끄럽게 메이크업이 잘 된 사람을 쳐다보고는 나를 들어 올려 혹여나 화장이 뜨진 않았는지 점검하고, 가끔씩 손가락으로 뺨이나 코를 두드려대며 문질러가며 모공을 조금이라도 더 막으려고 애쓴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는 또 나를 꺼내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가 주름, 팔자 주름, 미간 주름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러다가 두피를 주물러대더니 관자놀이를 짚고는 뒤로 주욱 들어 올린다. 팽팽해진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대며 눈을 굴린다. 웃음이 나온다.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보톡스라도 맞을까 고민하고 있다.


간절한 그 눈빛은 이내 이글거리며 마치 '백설공주'에서 거울에게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는 나쁜 여왕처럼 집요해진다. 모공 안 보인다고 해. 주름 티 안 난다고 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쳐다보면 모공이 줄어드나 뭐. 내가 백옥 같고 탱탱한 피부를 만들어줄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를 그렇게 쏘아보면 뭐라도 떨어지는 것처럼 붙잡고 귀찮게 한다.


드디어 나를 내려놓고 자유로워졌나 싶더니 길 가다가 쇼윈도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거나 남이 찍어 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나를 꺼내서 얼굴을 들여다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 모습은 가짜고, 지금 자기가 원하는 각도와 표정으로 꾸며낸 얼굴이 자기 얼굴이라고 여기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자기 마음에 드는 표정이 나올 때까지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아까 보여준 얼굴이 맞잖아! 근데 왜 저 대형 거울로 보니까 못생겨 보이는 거야? 따진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한다. 나는 그녀의 좋지 않은 안색이나 늙어 가는 피부를 보여줄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 눈빛에서 나오는 생기와 찡그리거나 웃음을 터뜨릴 때 시시때때로 변하는 표정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다. 사람들이 보는 건 그녀가 나를 볼 때 꾸며대는 그런 정적인 표정들이 아니다. 웃을 때, 찡그릴 때, 무표정일 때, 황당할 때, 성질날 때,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거릴 때 얼굴에 떠오르는 생동감이다. 얼굴 가죽을 뚫고 나오는 그 생명력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기도 하고 불쾌감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녀를 사랑했던 그 사람은 그녀가 예뻐서 사랑했던 게 아니며, 그녀를 미워했던 그 사람은 그녀가 못생겨서 미워했던 게 아니다.


달빛에 반사된 잠든 그녀의 얼굴을 슬며시 비추어 본다. 입은 헤벌어진 채 멈춰 있지만, 그럼에도 생명이 뿜어져 나온다. 나에게 비치는 상(像)은 이 보이지 않는 빛을 보여줄 수 없다. 생명을 가진 존재, 특히 인간들은 자신이 남보다 더 아름다운지를 신경 쓴다. 그러곤 주눅이 들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는 것이다. 우습다. 생명은 모두 자기의 빛이 있기 마련인데, 그 빛은 더욱 빛날 수도 있고 초라히 사그라들 수도 있다. 세상 어디에서도 다시 찾을 수 없는 고유의 빛을 덜 아름답다, 더 아름답다 하는 것도 우습고 그 빛을 사그라뜨리는 것이 바로 자신임을 모르는 것이 우습고 안타깝다. 우리 무생물은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생기를 가졌으면서, 무생물인 내가 겨우 흉내 내어 복사해 주는 상에만 의지하려 하다니. 살아 있는 것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죽은 것도 흉내 낼 수도 비추어낼 수도 없다는 것을 아는지.


내 주인아, 그대에게 전하고 싶다. 나이 들어 늙어가는 피부를 뭐 어떻게 하겠는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톡스라도 맞든지. 그것까진 안 말리겠다. 열심히 일해서 피부 관리받고 좋은 화장품 사고 마음대로 해라. 그러나 그걸로도 안 되는 부분을 가지고 전전긍긍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긴 세월 그대가 간직해 온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상냥함에서 스며 나오는 수많은 표정들이다. 그대에겐 그대만의 미소가 있고, 다른 이들에겐 그들만의 미소가 있는 것이다. 피부나 외모의 어떠한 부분 때문에 멀어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버려라. 그대가 나를 들여다볼 때마다 모공이 아닌 눈빛을, 늙은 얼굴이 아닌 영혼의 생기를 볼 수 있기를. 나아가 다른 이들을 볼 때에도 그들에게서 외모가 아닌 생명의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리하여 다른 생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전 01화JEMMA의 물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