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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프리스 Oct 22. 2021

아프냐, 나도 아프다.

아직도 어렵기만 한 18년 차 육아

어스레한 땅거미가 지는 저녁 꽉 막힌 도로 자동차 안, 정적이 흐르다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 휴지 있어?" 조수석 서랍에 있던 휴지를 꺼내 건네었더니 받아 들며 이내 눈물 한 방울 뚝 떨어뜨린다. 그리고 엉엉 울기 시작한다. 마스크 안으로 눈물이 흐르자 급기야는 마스크를 벗고 큰 소리를 내며 운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한창인 요즘 아이는 하루하루 험한 산 하나를 힘겹게 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방 불을 끄고 제대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편안히 잠을 청해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희미한 나날들... 가끔은 이러다 뒤로 넘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거운 배낭, 아이가 늘 메고 다니는 검은색 배낭 양쪽에는 그물망으로 된 주머니가 달려있는데 오른쪽에는 3단 우산, 왼쪽에는 물병이 처음부터 본인들의 자리였던 것처럼 언제나 들어있다. . 아이는 오늘도 우산과 물병이 양쪽에 든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녀왔다가 다시 그 가방을 메고 학원으로 향한다. 그것이 아이의 반복되는 일상이고 청소년기 인생의 한 자락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아오고 있건만,  "엄마 오늘 역대급으로 지금까지 이렇게 못 본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망했어" 시험을 보고 돌아온 아이가 내게 말한다. 그런 아이를 말없이 안아주며 등을 쓸어준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친다. '왜 그랬어. 좀 잘 보고 오지. 늘 이렇게 시험을 망쳐서 어떡하니 학원도 다니고 과외도 하는데...' 그러다 드는 또 다른 생각,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책상에 엎드려 잠든 수 없는 날들 그렇게 보낸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너도 얼마나 받고 싶었을까. 시험을 망쳤으니 니 속은 얼마나 상할까. 옆에서 지켜보기만 한 내 속이 상한 것과 어디 비교나 될까' 그렇게 아이는 내 품에 잠시 피곤한 몸을 기대었다가 다시 학원으로 향한다. 아이를 학원으로 데려다주는 자동차 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에 참고 참았던 아이의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생각한다. 이 순간, 엄마로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무거운 아이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을까. 내 아이가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말이 뭐가 좋을까. 그러다 나는 "엄마가 살아보니 삶이라는 게 그렇더라.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훨씬 많더라고. 그런데 또 그런 날들을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찾아오기도 하고. 그리고 세상엔 이런 시도 있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말라. 성내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옮을 믿어라. 그러니 오늘 같은 날이 있으면 웃는 날도 찾아올 거야" "너무 슬퍼말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옮을 믿어봐 알았지?"내 말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옴의 법칙이야? 물리에 옴의 법칙 나오는데..." 하며 울다 웃는다. 




아이를 학원 앞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18년째 육아를 하고 있지만 매일이 새롭고 처음인 듯 엄마 노릇은 어렵기만 하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아이의 일상을 함께 하며 나 역시 순간순간 두려움과 불안함이 가득 차 오른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성적보다 입시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음을, 아이와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해야 하는 것 또한 나는 잘 알고 있다. 아이도 나도 이 시간들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참고 견디다 보면 기쁨의 날이 옮을 다시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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