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백천의 '마음에 쓰는 편지'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 "밤이 아름다워 잠이 오질 않아"
이 밤이 내겐 그렇게 아름다운 밤도 아니고 늦은 오후 커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잠이 오질 않는다. 벌러덩 소파에 누워 별생각 없이 열어본 사진첩 안에 사진 한 장이 내 잠을 저 멀리 내던져 버렸다. 그 사진 속에는 Madonna - La Isla Bonita, Queen - I was born to love you, Natalie Imbrolia - Torn 등등 라디오 생방송 중 모니터 화면에 수많은 곡들이 언제 전파를 타게 될지 모르는 상태로 대기 중이었다. 라디오 디제이 시절 그날그날 선곡을 하며 곡 리스트들을 사진으로 담아두었던 것들이 이 밤 또다시 내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하늘이 맑고 파랗던 가을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 방송에는 어떤 곡들을 청취자들과 함께 들으면 좋을까를 떠올리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음악 한 곡이 가지는 그 힘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분주히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의 마음을 한순간 무장해제시키기도 하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그리운 사람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도 만들었다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주는 위로에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이기에... 계절이 주는 그날의 분위기와 기운을 온 마음을 다해 느끼려고 했고, 방송을 준비하며 많은 후보 곡들을 선곡했고, 생방송 중에는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위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음악 두 곡 혹은 세 곡이 디제이의 멘트 없이 이어져야 하는 순간에는 먼저 흐른 곡과 이어질 곡이 최대한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음악을 듣고 또 듣고 이 곡이다 싶을 때까지 들어야 최종 선곡이 되었고, 때로는 희극과 비극을 오가는 우리네 인생처럼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도 마치 두 곡이 처음부터 짝꿍이었던 것처럼 잘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전파를 타게 되었다. 그렇게 흐른 멜로디가 누군가의 귀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콕하고 박혔을 때 어떤 이는 주방일을 하다 식탁의자에 앉아 멍하니 음악만 듣고 있다고 전해왔고, 또 어떤 이는 주차장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그리고 현장에서 작업 중이라는 어떤 이는 굴삭기 운행을 하며 눈물이 난다고도 했다. 나 또한 그렇게 마음을 전해주는 청취자들과 다른 공간에서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며 방송으로 깊이 빠져들어갔다. 그렇게 내 이름을 건 두 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이 클로징 멘트와 함께 막을 내리면 내가 사용한 스튜디오 주변을 정리한다. 방송원고와 펜 헤드셋을 정리하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청취자들의 반응이 훨씬 더 좋은 날은 더 바랄 게 없었다는 후련한 마음으로, 또 어느 날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없는 무거움이 내 마음을 짓누를 땐 아무도 없는 나만의 공간으로 순간이동을 바라기도 했다. 그렇게 매일 두 시간, 어느 라디오 채널에서는 음악 한 곡 한 곡이 전파를 타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으로 흐르기까지 라디오 디제이의 수많은 고민이 늘 함께 였다.
부쩍 쌀쌀해진 공기가 마음뿐 아니라 시린 손을 비비게 만드는 10월의 어느 밤, Eagles의 sad cafe라는 곡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에 온기를 담아 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