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라디오 디제이였다.
"라디오 디제이였다"라고 적었지만 나는 이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내가 라디오 디제이였다는 것이 요즘은 한낮의 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지금은 디제이가 아니라는 또 다른 표현일 테니까.
어느 날, 나는 라디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머지않아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짧으면 8개월, 길어도 1년을 넘지 않을 거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나는 긴 휴가가 생긴 거라고 마음을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고 그럼에도 여러 다른 채널의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디제이를 하며 모니터링을 하고 선곡의 방향을 참고하기도 했던 다른 채널의 프로그램들이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으니까. 우린 이렇게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는 데 너는 왜 라디오 밖으로 나간 거야? 어쩌다...
라디오 디제이는 내 간절하고도 오랜 꿈이었다.
난 그 꿈을 이루었고 일상을 살아가며 늘 마음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난 라디오 디제이야 내가 그토록 원하던 디제이가 되었다고'
이 말이 내겐 축 늘어진 어깨를 펴게 했고 주름진 마음을 웃게 했다.
어디선가 좋은 음악이 들려오면 나는 그 곡에 대한 정보를 찾아 다음 날 선곡에 넣어 청취자들과 함께 들었고 그럴 때마다 음악을 듣느라 자동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집안일을 멈추고 잠시 식탁의자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다고, 이 곡의 제목이 무엇이냐고 가수가 궁금하다고 해 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매 순간 행복했고 더할 나위 없이 감사했다. 그런 순간들을 만들어 주는 내 일이 살아가는 힘이었고 위로였고 존재의 이유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악은 흑백사진 같은 우리 일상에 다양한 색을 입혀 컬러로 만들어 준다"
밥보다 팝(POP)을 더 좋아한다고 말을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라디오를 진행하며 또 일상에서 자주 하던 말이다.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던 우리 일상에 무심코 흐르는 음악 한 곡이 얼마나 그 공간을 풍요롭고 화사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 한 사람이라도 더 그런 경험을 하고 느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내겐 늘 있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이제는 음악을 듣는 일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에 내 가슴에 추억이 흘러 마음이 아려온다. 가슴속 깊이 애써 묻어둔 기억들이 나를 일렁이게 하면 안 되니까.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마주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나는 음악을 멀리하며 세상의 모든 라디오를 피하며 나를 부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