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 아니라 ... 이었다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by 젬툰

소설은 약간 패스트푸드 같다. 아무리 재밌게 읽어도, 읽은 걸 또 읽긴 쉽지 않다. 그런 적도 거의 없고. 안 읽은 소설인 줄 알고 표지를 열었다가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몰려오는 기시감. 설마설마하면서 서너 페이지를 읽다가 갑자기 머릿속으로 펼쳐지는 스포일러의 향연. 그런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니 소설은 사서 읽는 게 사실 돈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그렇다고 소설 아닌 책들을 읽고 한 번 더 읽은 적이 많지도 않다.)


상암에 스마트 도서관이라는 게 있다길래 가봤다. 뭐 엄청나게 다양한 책이 있진 않았는데, 얼만 전 민음사 유튜버가 추천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가 있길래 망설임 없이 골랐다. 역시 믿고 읽는 세계 문학 전집.


책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의도한 건진 모르겠는데 남주 이름이 로제, 여주 이름이 폴. 성별을 뒤바꿔놔서 처음엔 이게 여자가 하는 말인지 남자가 하는 말인지 헷갈린다. 사실 난 끝까지 잘 적응 못했다. 그런데 또 쉽다. 나오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폴, 로제, 시몽. 이 셋이 전부다. 지리한 연인 관계의 폴과 로제. 그리고 14살 연하의 시몽의 폴에 대한 적극적인 대시. 잠시 그에게 흔들렸던 폴이 결국 다시 지루한 안정감의 로제에게 돌아간다. 이런 이야기. 그런데 폴의 시점이었다가, 로제의 시점이었다가, 시몽의 시점이었다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의 구성 때문에 정신 놓고 읽다 보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지금이야 영화나 드라마에서 숱하게 반복된 소재, 연하남의 열정적인 대시에 흔들리는 중년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아마도 이 책이 나올 시점엔 이게 좀 신선했었나 보다. 그리고 중년 남녀의 다 타버린 회색 잿빛 같은 연인관계에 대한 묘사도.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열정이라는 말에 더 이상 온기가 없어진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랑 그 하나가 삶의 단 하나의 목적인 시몽과 달리, 사랑 그것은 삶을 이루는 숱한 소재 중의 하나일 뿐인 폴. 그럼에도 또 그 달콤하고 따뜻한 신상 사랑의 맛... 소설은 격정을 향해 달려가다 갑자기 스르륵 브레이크를 잡더니 결국 폴과 로제의 재결합으로 끝을 맺는다. 또 쓰겠지만 데미안도 살짝 그런 느낌이었다. 좀 더 길게 쓸 수 있었을 이야기인데, 쓰다 만 느낌이다.


책 이야기와 더불어 프랑소와즈 사강이라는 작가를 살짝 알아보니, 멋있네. 약간 예술가의 로망을 그대로 살았던 사람처럼. 천재적인 재능으로 돈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내가 늘 꿈꿨지만 재능이 없는 건지 용기가 없는 건지 둘 다 없는 건지 아무튼 그런 연유로 절대 살아보지 못한 인생. 앞서 읽었던 성해나의 혼모노에서는 성해나의 다중인격이 느껴졌다면, 이 책에서는 살짝이나마 사강 본인이 살았던 인생의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의 BMI 지수 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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