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왜소 소설'

by 젬툰

이름도 특이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단 하나.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예전에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소설을 재밌게 읽었기 때문이다.라고 쓰려고 구글링을 했더니 이 책은 우타노 쇼고가 썼네... 충격적이다. 그의 작품 목록을 보니 내가 읽은 건 없다!!! 그런데 왜 이 이름은 이토록 친숙한 것인가!!! 서두부터 정신이 아득해지네.


아무튼, 이 책은 출판사 편집자들의 시선에서 본 '소설가의 세계'를 아주 일상적인 시선으로 묘사한다. 문학과 예술이라는 거창한 껍데기를 벗겨낸 그 세계는, 그냥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직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편집자가 소설가에게 '일'을 제안하고, 소설가는 그 '일'을 수락해서 글을 쓰고 출판하고 책을 팔아 번 돈을 출판사와 소설가가 나눠 가진다. 당연하게도 이 세계에는 이제 막 데뷔한(입사한) 신입 작가부터 돈과 명예를 든든하게 쌓아 올린 성공한 시니어까지 존재한다.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과 문학에 대한 애정이 뒤섞인 신인 시절과 이미 가진 부와 성공을 만끽하며 오래오래 향유하고자 하는 시니어.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바삐 움직이며 소설이라는 완제품의 부스러기를 먹고사는 편집자까지. 어쩌면 '방송'이라는 완제품을 만들고 있는 내가 사는 세계와도 너무나 닮았다.


단편의 형식을 취하는 짧은 이야기들은 사실 같은 세계관을 느슨하게 공유하고 있어 다 읽고 나면 이게 단편인지 장편인지 살짝 헷갈리게 하는 점이 참 매력적이었다. 앞선 단편에선 주인공이었던 인물이 뒤의 단편에서는 짧게 언급되기도 하고, 앞에서 신인이었던 작가가 뒤에선 꽤 잘 나가는 중견 작가가 되어 있기도 하고. 단편을 선호하지만 늘 장편을 읽고 싶어 하는 나로선 이런 형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하나하나 맛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훌륭한 코스 요리를 먹은 느낌이랄까.


작가의 장난스럽고 가벼운 묘사가 페이지를 훅훅 넘어가게 하면서도, 그 가벼운 묘사에 담긴 꽤 무게감이 있는 풍자도 볼만했다. 나도 만약 방송국을 소재로 뭔가를 쓴다면 이런 식의 접근법이나 시각도 꽤나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참고 참고.


다 읽고 든 생각은 또 그냥 평범한 깨달음이다. 사람 사는 세상 거기서 거기라는 이야기. 다들 먹고살기 위해, 조금 더 누리기 위해, 조금 더 명예롭기 위해 산다. 하지만 먹고 살만 하면 더 좋은 걸 먹고 싶어지고, 누리기 시작하면 죽기 전까지 계속 누리고 싶고, 명예는 가지면 가질수록 더 큰 명예가 탐날 뿐이다. 욕망이라는 깨진 항아리에 평생을 죽어라 물을 부으며 사는 게 우리 인생인데, 과연 그 시지프스 같은 고단함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과연 '적절한 욕망 충족'이라는 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가 요즘 점점 내 인생의 화두가 되고 있다.


너무 잘 읽히고 너무 재미있는 소재였고 세계관을 공유하는 단편집이라는 구성도 너무 좋았다. 곱씹을수록 너무 재밌게 읽은 책이네. 좋아!


BMI 지수 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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