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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Aug 23. 2022

영화 '기생충'

계단과 수석, 그리고 단단한 자아(自我)

*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작성했던 감상평을 활용한 에세이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계단: 끝도 없이 내려가는 계단, 그 아래 펼쳐질 내가 원래 머물던 곳의 처절한 풍경.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다다르고 나니 그야말로 대혼란(Chaos). 저 높디높은 계단을 올라 동경하는 그곳에 다다를 날이 과연 다시 올까. "그때가 되면 아버지는 그냥 올라오기만 하세요."라는 아들의 마지막 대사는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그래서 아들은 잠깐, 내려가는 계단에 멈춰 서서 망설였던 것인지도.


영화에 등장했던, 비가 억수로 퍼붓는 밤 기우(최우식 역)네 가족이 처절하게 도망치듯 내려가던 계단은 ‘자하문터널’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가보면 시각적으로 꽤나 압도적이다. 살짝 흐리고 비가 잠시 비추던 5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건너편에서 그 계단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때 그 장면이 다시 떠오르면서 눅눅하고 습한 냄새가 아스라이 피어나는 것 같다.     


수석: '이 돌이 왜 이렇게 나에게 붙지...'라고 나지막이 내뱉는 아들. 그리고 그 돌에 의해 일격을 당한 아들. 그 돌이 왜 당신에게 붙는 줄 알아요? 그것도 굉장히 안 좋게 말이야. 그건, 그 돌이 원래 있을 곳에 있지 않아서라고 볼 수밖에...


원래 있던 곳이란 어디일까? 내가 태어난 곳? 유년기를 보낸 곳? 대학교를 다니던 곳? 유학 시절 머물렀던 도시? 결혼하고 살고 있는 동네?


나의 의지가 일부라도 반영되어 살고 있는 곳은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찾은 지금의 보금자리가 유일하다. 결혼하면서 비로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던 나는, 결혼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다르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 별 다른 저항 없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 그게 전부인 줄 알고 만족하며 살았다면,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한 후에는 지금 이대로가 최선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게 되었달까.


결혼 전에는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고 유유자적 혼자만의 길만 걸었던 것 같다. 분명히 인생의 파고를 겪는 길목길목에서 내 선택의 옳고 그름에 대해 뼈와 살이 되는 충고를 해 준 이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의 충고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들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한 집에서 살림을 꾸려가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유리 보호막은 처참하게 깨지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나의 사고방식에 참견을 하려는 남편을 마치 남의 편인 것처럼 여기며 밀어내기 바빴는데, 시간이 갈수록 받아들이는 방법을 터득하고 남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면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 원래 있던 곳에서 벗어나서, 남편을 만나면서 독립적이고 단단한 자아를 형성하였고, 새로운 인생을 탐구하게 되었다.


"돈도 많으면서 참 착하고 바른 사람들이야"라는 기택(송강호 역)의 말처럼, 세상은 부지불식간에 변했다. 돈이 많으면 심성은 고약할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던 시대에서 돈도 많은데 너그럽고 이해심이 가득한(또는,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다.


한 가지 잣대로 누구의 삶이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시대. 혼돈의 삶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 각자의 삶에서 단단한 자아를 지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영화 ‘기생충’에 대한 총평은?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물건 하나, 등장인물 각각 사연이 있고 시사하는 바가 있었던 너무도 잘 만들어진 시대 반영 현실주의 새드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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