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점심시간 사용기
어렸을 때는 온 가족 휴가 코스에 교육적인 목적으로 으레 끼어있던 박물관 투어가 그렇게 지루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직장인이 되고 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꽤 자주 박물관을 찾는다. 나에게 있어 박물관은 안식처(어쩌면 도피처)가 되기도 하고, 바쁜 하루 일과 중에 숨쉴틈을 주는 아지트이기도 하다.
오전 내내 전화+회의+업무 처리로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에서 맞이한 점심시간. 주로 혼밥을 하고, 가장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 근처에 자주 찾는 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법적으로 부여된 한 시간의 점심시간 중에 남은 20~30분을 알차게 쓰러 가는 매우 설레는 시간이다.
박물관 문을 열고 안 쪽으로 한 발 내딛는 순간,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가진 특성 중에 하나이기도 한 고요하게 퍼지는 차분한 공기를 마시며 ‘휴, 오늘도 잘 왔다.’ 하는 안도의 마음으로, 제1전시실, 제2전시실, 제3전시실, 기획전시실… 발 길 닿는 곳으로 향한다. (수도 없이 관람했던 곳이라서 전시 주제가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기획전시실 빼고는 대부분의 전시품 위치를 꿰고 있다.)
복잡한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것만 같은, 방문객이 가장 적은 평일 점심시간인 덕분에 종종 전시실 통째를 나 혼자 누리는 호사스러움에 감사한 마음으로, 학창 시절 역사책에서 배울 때는 이름 외우기에 급급했던 어느 고대 유물에 꽂혀 꼼꼼하게 눈과 마음에 담으며 20분을 꽉 채우고, 황급히 발걸음을 출입구 쪽으로 놀린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낮은 조도의 실내에서 해가 쨍한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 햇빛에 적응하느라 눈은 찌푸리지만, '아, 오늘도 이렇게 평안을 찾았다.' 하는 안정된 마음으로 사무실로 복귀하는 일상.
박물관이 주는 안온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만약에, 주말에 시간을 내어 박물관을 찾으라고 한다면, 그 사람 많고 복잡한 데를 왜 가느냐 했을 것 같다. 일종의 보상심리 같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 매여있는 일상이지만 잠시 잠깐이라도 상념으로 가득 찬 머릿속을 비워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게 마침 박물관이었던 것이 아닐지.
점심시간의 박물관 탐험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