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 Aug 19. 2022

부부대화

젊은 커플

익선동 어느 골목길, 저기 앞에 너무 예쁜 커플

뜨거운 여름 한 낮, 두 눈을 바로 뜨기 어려울 정도로 내리쬐는 여름 햇볕을 피해 그늘 찾기에 정신이 없었던 우리 부부와 달리, 저만치 앞에서 두 손을 맞잡고 걸어가고 있는 젊은 커플은 두 손 꼭 맞잡고, 익선동의 분위기를 천천히 익히는 듯 이곳저곳 둘러보며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더위를 피해 에어컨이 짱짱하게 나오는 카페나 음식점, 하다못해 어디 다른 데로 이동할 거면 빨리 에어컨 빵빵한 버스에 올라타든 해야 할 것 같은데, 급할 것 하나도 없다는 듯 여유 낙낙한 이들 커플을 보며, "사귄 지 얼마 안 되어 보이지?"라는 나름의 판단을 고민 없이 내려버리는 우리는 신혼부부 딱지가 떼어질랑 말랑한 N년차 부부.


성장 배경을 비롯하여 생활습관, 선호하는 음식 등 다른 것을 찾자면 수십수만 가지인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끌림으로 만나서 연애를 했고, 결혼을 해서 함께 살고 있다.


여자는 관심 분야가 좁고,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좋아한다. 겉으로는 꽤나 참한 인상인데 반해, 매사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신속하게 결정하여 처리하는 것을 선호하고,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온 삶의 방식에 별 탈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보기에 이 여자는,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본인의 관심 분야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순간 귀를 닫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결정을 할 때, 큰 그림을 그려보지 않고, 당장 결론이 나는 것 위주로, 결론이 날 것 같은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옳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여자가 깨달았으면 좋겠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보니 설득되는 부분이 있었다.


여자는 본인이 변해야 한다는,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사회생활과 부부생활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사회에서 스쳐가는 인연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는 어차피 전부 드러내지 않으니까, 드러내더라도 관계 유지를 위해 상호 간에 부정적인 얘기는 가급적 꺼리는 것이 사회에서 만난 사이의 보편적인 대화 방식이니까.


하지만, 부부생활은 다르다.


사랑으로 맺어진 소중한 인연이되,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서) 거의 모든 면에서 배타적인 두 성인이 같은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관계로 설정되었고, 이를 긍정적으로 지속하려면 서로 간의 다름을 인정하되 상대방의 요구사항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이고 (무지 힘들겠지만) 맞춰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 내가 변하고, 맞춰갈게.


얼마 전의 일이었지,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어."라고 계속 주장하지만, 당신이 "언짢았어."라고 얘기하는 상황에서, 내 주장만 내세워봤자 지루한 싸움이 될 뿐 결론이 나지 않더라고.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지만 당신이 언짢게 느꼈다면, 당신이 느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나'의 결백성을 인정받으려는 욕구, '나'는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인식, '나'니까 상대방이 무조건적으로 받아 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 모두 버릴게. 진심으로, 즐거운 대화였다. 고마워, 남편.

매거진의 이전글 때는 2006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