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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Aug 18. 2022

때는 2006년

독일월드컵

붉은 악마가 온 거리를 뒤덮던 2002년의 열기가 조금 사그라들었다고 하지만, 거리 응원의 재미와 흥미를 맛본 대한민국 붉은 악마들은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거리로 나섰고, 나도 인턴기자라는 직함을 갖고 그 열광의 도가니 한복판에 있었다.


한 매체의 정치사회부 인턴 기자로 근무하던 때였고, '거리 스케치'를 해 오라는 데스크의 명을 받아 동료 인턴 기자들과 거리로 나온 참이었다.


그날 밤에 예정된 경기 응원차 나온 시민들로 광화문 온 거리가 가득했고, 높은 건물 위 전광판마다 우리 태극전사들의 모습이 비쳤다. 축구를 잘 모른다고 해도, 축구에 별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 날 만큼은 흥분 게이지가 최고조였다. '거리 스케치'를 할 때 무엇을, 어떤 느낌을 잡아내야 하는지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몸과 마음이 신이 나 있는 사람들 모습을 하나하나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미션은 성공이었다.

그 당시, 이 길 끝에 인턴을 했던 경제지 건물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주신 수첩과 펜을 들고  골목길을 따라 내려와 인파에 밀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맞은편 '동화면세점' 앞까지는 어찌어찌 진출하였는데,  이상 이동하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각자  자리씩 잡고 취재를 시작하였다. 동료들의 눈과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일종의 경쟁심도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자고로 기자라 하면, 본능적으로 이슈를 포착해서 무엇이든  내려가야  텐데, 나는 그러한 내적 기질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동료들에 비해 매우 보잘것없는 결과를 제출했던  같고, 당연하게도, 동료의 제출본이 선배의 기사에 일부 포함이 되어 기사화되었던  같다.  


대신, 그날, 나는 광화문  구석에 서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거리에서 내뿜는 열정을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살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간절하게 염원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것은 처음이었다.


( 이후, 기자의 길에서  발짝  멀어졌지만), 초여름 저녁녘 습하고 더운 공기마저 무력화시키는, 무엇인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대감에 한껏 부푼 사람들의 생기 있는 표정과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희망의 염력이 마음속 깊이 새겨져 저기  골목길과 함께 이렇게 이따금씩 떠오르는 추억의  조각으로 남았으니, 그나마 다행이고,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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