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수거
나는 분리수거에 진심이다.
지금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긴 남편이 분리수거를 담당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는 내 담당이었다. 손이 야물지 못한 내가 집안일 중에 그나마 괜찮게 한다고 생각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건 바로 화장실 청소와 분리수거다. 특히, 다년간의 독립생활로 집안일에 도가 튼 남편조차 나의 (나름) 철저한 분리수거 철학에 혀를 내둘렀다.
2인 가족에 둘 다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먹지 않는 편이라 우리 집 분리수거는 2주 또는 최대 3주를 주기로 돌아간다.
투명 페트병과 유색 페트병 분리는 기본. 페트병의 비닐 라벨은 꼭 제거하고 내용물은 깨끗이 비운다. 유리병의 라벨 떼는 작업이 꽤나 고난도인데, 뜨거운 물에 5분 정도 불리면 쉽게 떨어지는 경험을 한 뒤로 이 방법을 주로 활용한다. 그래도 안 떼어지는 건 깔끔하게 포기한다. 종이 박스의 테이프는 위아래 모두 제거하고 반듯하게 접어서 쌓고, 비닐의 경우 가장 큰 사이즈의 비닐에 나머지 비닐 더미를 구겨 넣어 부피를 줄인다. 이 정도의 사전 작업을 마치고 나면, 양손을 최대한 활용하여 한번에 내려갈 수 있도록 분리수거 바구니 하나와 박스 하나에 모든 걸 차곡차곡 담는다. 이렇게 정리하는데 대략 30분~40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뒷베란다에서 이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적당히 해~ 당신 힘들어."라고 매번 난리다. 이렇게 오래 걸릴 건 아닌데, 내가 손이 야물지 못할뿐더러 뭘 해도 손이 빠르지 않은 탓이다. 그냥, 심각한 기후위기에 빠진 지구를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거창하게 환경보호운동을 하거나 적극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은 없지만, 우리 집에서 구입해서 사용하고 버리는 모든 자원이 용도에 맞게 재활용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 이것만큼은 스스로 다짐한 대로 꾸준히 하고 싶었다.
올 초였나... 날씨가 꽤 추운 날이었는데, 그날 아침도 여느 때 와 마찬가지로 뒷베란다에서 분리수거로 내갈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었는데, 빳빳한 박스 모서리에 왼쪽 집게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약하게 피가 비치긴 했지만 내가 힘들까 봐 적당히 하라고 줄곧 걱정 섞인 말을 해 준 남편의 진심을 무시한 것이 뜨끔하여 암말 없이 남은 정리 작업을 깔끔하게 해치우고 집 안으로 들어서서, 슬쩍 반창고를 떼어다가 손가락을 돌돌 말며 드는 생각, '이게 뭐라고 나는 이렇게 진심이지?'. 분리수거 내버리러 나가보면, 가장 기본적인 투명 페트병과 유색 페트병 분리도 제대로 안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맞다. 내가 이렇게 정리하겠다고 정했을 뿐이다.
강제사항도 아니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황사, 미세먼지, 초미세먼지가 뭔지 몰랐던 어린 시절 속 맑은 하늘과 공기를 내가 사랑하는 조카도 그대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그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한 일이다.
세상 번거로울수록 지구에는 이롭다.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숙제처럼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가려고 한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페트병도 주어다가 비닐 라벨 떼고 분리해서 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기도 하는데, 이만 참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