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가을이다.

by jen

퇴근길,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취향에 딱 맞는 음악이 나오길래, 음악에 맞춰 집게손가락과 한쪽 발을 까딱까딱해본다. 누가 알아챌까 싶어서 고개는 흔들지 못하겠다. 고작 이 정도의 흥 발산 가지고 무슨 눈치를 보나 하겠지만, 쇼핑을 가서도 매장 직원 분이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뭔가를 사는 사람이고, 아이스 라떼를 주문했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와도 웬만하면 그냥 마시는 사람이라, 나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은 늘 어색하기 짝이 없다.




지난 주말, 남편과 친정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차 안, 디제잉 담당인 나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음악을 틀었다.


보통 순서대로 틀지 않고 셔플 시키는데, 첫 곡부터 취향을 제대로 파고드는 날이 있다. 이른바, 운이 좋은 날. 남편은 말없이 볼륨을 최대치 가깝게 키웠고, 우리는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도시의 밤 풍경을 차 안에서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면서 취향저격 BGM까지 덤으로 깔리다니, 그야말로 완벽한 귀갓길이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보낸 한 시간여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우리 집 주차장에 다다를 때쯤에는 메말랐던 감성이 충만해지면서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더니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스르륵 풀어졌다.




으레, 분위기 있는 음악을 찾게 되는 계절. 가을은 본디 봄, 여름을 씩씩하게 잘 보낸 우리 모두가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한 번쯤 힘을 풀고 쉬어가라고 마련된 시간이다. 여름이 다 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을이 문턱에서 서성이는 것 같다. 기온이 뚝 떨어진 새벽녘 찬기운에 잠을 설칠까 걱정이 되어 소심하게 열어둔 창문 사이를 뚫고 오소소 한 가을바람이 제멋대로 들어온다.


아마도, 가을이다.


멀리서 빈다 ㅡ 나태주(1945~ )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ㅡ 시집 『시인들 나라』 서정시학,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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