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서재, 춘천
그림책 얘기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난데없지만 남편과의 연애시절 에피소드를 조금 끌어와야 한다. 설레는 소개팅 후 남편은 애프터 데이트를 '춘천'에서 하자고 제안했고, 일단, 누구나 간다는 춘천 닭갈비로 시작했지만, 근대 건축물에 관심이 있다는 나의 얘기를 귀담아들은 그는 너무나도 호젓하고 아름다운 '죽림동 성당'에서 한방에 점수를 따더니, 의암호와 공지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카페에서 저녁노을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뷰를 선사하며 데이트의 정점을 찍었다.
덕분에, 춘천은 내 마음속에 상당 부분 미화되어(?) 고이 봉인되어 있었고, 결혼한 지 수년 만에 우리는 춘천으로 추억여행을 다시 떠나기에 이르렀다. 다시 찾은 호반의 도시 춘천은 그때 그 느낌 그대로 잔잔하고 평화로웠고, 애프터 데이트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혹은 우리가 놓치고 가보지 못했던 핫플레이스 '육림고개'를 넘으며 이런저런 가게를 구경하다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가게 이름에 멈칫하였다.
'첫서재'.
브런치에서 열혈 구독하였던 한 작가님의 북카페였던 것이다.
춘천의 한 폐가를 수리해서 그림책과 소설책 등 좋아하는 책을 커피 한 잔과 함께 탐독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전 과정을 브런치에 연재하셨는데, 그 여정에 함께했던 독자로서 한 번쯤 춘천에 가면 들려봐야지라고 마음먹긴 했지만, 주소를 적어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쉽게 걷는 길에 마주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은 첫서재의 휴무일이었고, 다만, 유리문 너머 북카페 곳곳을 청소하고 계신 사장님을 뵐 수 있었다. 아쉬움에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우리를 보시고는, 청소 중이긴 하지만 잠깐 들어와서 둘러보고 가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고, 죄송하지만 한번 둘러보고 가겠다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한 발 내딛자 삐걱 소리를 내며 묵직하게 연식을 드러내는 마룻바닥.
짧은 시간이었지만, 휘 둘러본 느낌은 상상했던 이미지 그대로고, 여기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특히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림책으로 가득 차 있는 한쪽 벽면이었다.
어린 시절에 즐겨봤던 그림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아, 다 큰 어른이 그림책을 읽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여전히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세월만 보내고 있던 중이었다.
어느 날이었던가, 여덟 살 조카의 집 서가에 잔뜩 꽂혀있던 그림책을 보며, “우와, OO아, 이 책들 도서관에서 빌려온 거야? 외숙모도 그림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어서 도서관에 가면 어린이 책 코너에 한번 가 봐야지 했는데, 쑥스러워서 한 번도 못 가 봤어”.라고 했더니, 1초도 안 돼서 조카는 “어른도 어린이 책 봐도 돼요.”라고 했다.
‘어른도 어린이 책 봐도 된다.’라니.
명료하고 확신에 찬,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그 말을 여덟 살 조카로부터 듣다니.
우리 연애의 시작-, 춘천은 스며들듯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더니 떠날 줄을 모르고, 슬며시 첫서재로 이끌더니 돌고 돌아 그림책의 세계로 안내하였다.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던 일, 어른이지만 그림책을 읽습니다. 한번 해 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