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좋아지는 나이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SG워너비의 김진호 씨가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라는 노래를 만들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의 얘기에 백 퍼센트 수긍했던 나는 무릎을 딱 쳤다. 눈여겨보지 않아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우리 엄마 프로필 사진도, 이모의 프로필 사진도 모두 꽃밭에서 찍은 사진이거나, 꽃밭 풍경이었다. 꽃이 예뻐서 찍었겠지,라고 쉽게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젊은 사람들이 프로필 사진 바꿀 때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지 돌이켜보면, 엄마와 이모가 고른 꽃밭 프로필 사진은 그냥 '아무 사진'일리 없는데 내 편의대로 '아무 사진'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십 대, 너나 할 것 없이 디지털카메라(일명, 디카)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고, 그걸 가방에 넣고 다니며 친구들과 서로의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시절, 우리들의 사진첩에는 꽃 사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중요하고, 친구가 그다음. 우리를 둘러싼 그날의 공기, 바람, 풍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의 핸드폰 사진첩은 어느덧 꽃과 하늘, 구름, 노을 사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봄이 절정에 이르면 만개한 벚꽃이, 4월쯤 되면 어디 가나 철쭉이, 푸르른 5월을 지나 초여름 문턱에 다다를 때쯤에는 장미가, 장마철이 지나고 뜨거운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도중 곳곳에서 마주치는 보라보라 한 맥문동 꽃밭,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며 가을이구나 느낄 때쯤 울긋불긋 단풍철이 지나자마자 발에 차일 정도로 후두득 떨어지는 가로수 낙엽, 그리고는 바로 겨울. (맥문동이라는 겨우살이풀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이십 대에 입사한 회사 앞 화단에도, 우리 집 앞 화단에도, 매년 피어나고 존재했지만 어떤 이름을 가진 종자이기에 이렇게 보라보라 하고 새초롬하게 예쁜지 관심을 둔 것은 최근이다.)
꽃이 좋아지는 나이. 내뱉는 말보다 속으로 삼키는 감정이 많아지고, 무조건 행동하기보다 조심하고 자제하는 나이. 어딘지 솔직하지 못한 어른이 되고 보니, 마음 붙이고 기댈 곳은 꽃과 하늘, 구름, 노을 뿐이었고, 그렇게라도 사진을 찍어서 어딘가에 올리고 공유하면 잔뜩 움츠렸던 마음이 풀리는 것만 같다.
나의 프로필 사진은 몇 년째 남편과 결혼할 때 식장에서 찍은 사진이고, 동그란 프로필 사진의 배경을 이루는 사진은 어느 집 담장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5월의 빨간 장미 사진이다. 인생 통틀어 가장 예쁘게 치장했던 내 모습에 꽃 사진이 어우러지니 완벽한 조합일 수밖에…
꽃이 좋아지는 나이로 접어들긴 했지만, 아직은 ‘나 자신’도 중요한, 마음만은 이십 대. 꽃밭 프로필 사진만큼은 몇 년 더 있다가 하고 싶은 소심한 반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