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n Sep 05. 2022

우리는 공원에 간다.

나의 엄마

친정 집에서 5분만 걸어 나오면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풍성한 그늘 덕분에 땡볕에도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는 근린공원 입구에 다다른다.


산을 깎아서 만든 곳이라 평지와 비탈길이 혼재해 있어 산책과 운동 모두 가능하다. 크게 한 바퀴 도는데 성인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리는, 산책이 됐든, 운동이 됐든, 딱 좋은 거리다.


 공원 부지에 드넓은 배밭이 펼쳐져있었는데, 어느  공사를 알리는 가림막이 세워지더니 근린공원으로 재탄생했다. 기존에 식생하던 꽃과 나무를 대거 옮겨 심었지만 새로 심은 나무들이  자란 탓에 제대로  그늘을 만들지 못했고, 산책로  옆으로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듬성듬성한 풀숲도  정이 가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발길을 끊었지만, 엄마는  공원이 생긴  해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다니신다. 내가 스무  대학생이 되던  이곳으로 이사 오고 나서 5년쯤 흘러 공원이 생겼고, 이사   20년이 지났으니, 엄마의 공원사랑은 족히 15년이 넘는다.


15 동안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공원이 생길 무렵 외동딸인 나는 홀로 유학길에 올랐고, 2 간의 유학에서 돌아오자마자 취직해서 서울로 직장을 다녔고, 직장생활   만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서울에 정착해버렸다. 그리고,  중간지점 어딘가 즈음 엄마가 시집와서부터 모셨던 시어머니이자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의 남편, , 우리 아빠는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서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매우 어려워하셨고, (두리뭉실하게 둘러대셨지만) 결론적으로 언제나 할머니 편이셨다.


그 시간 동안 내내 엄마는 혼자였고, 실제로도 ‘나는 혼자’라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외동딸은 지 밥벌이하고 인생 설계한다고 정신없고,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 일로 바쁘고 한없이 무심했다. 그 속에서 엄마가 기댈 곳은 한 군데뿐이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 온다.


“OO아, 공원이 얼마나 좋은지 아니? 나가기가 귀찮아서 그러지, 한번 공원에 오르잖아? 꽃이며, 나무며 얼마나 예쁘고 싱그러운지 몰라. 한 바퀴만 돌고 와도 기분이 달라져~!”라며, 주말 늦잠에 빠진 나를 설득하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요즘은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를 따라 공원에 간다. 꽃피는 봄, 신록의 여름, 붉은 가을, 눈 내리는 겨울… 철마다 외로운 엄마의 친구가 되어준 그곳, 어느덧 세월이 흘러 장성한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그곳에서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걷는다.


엄마는 매일 다섯 바퀴 도신다고 하길래, "그럼 오늘은 여섯 바퀴 가 볼까요?" 했더니, 엄마는 “좋지~!”라고 하셨다.

엄마와 오운완!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