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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Sep 02. 2022

나의 할머니

담배와 쇗대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렴풋이 날 때 즈음부터, 아마도 몇 마디 말을 할 줄 알면서부터 나에게 있어 할머니는 친할머니 한 분이었다. 외할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태어나서부터 함께 살았던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는 삼십몇 년 시어머니를 모셨던 장한 며느리였던 것이다. (엄마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한번 따로 해야겠다.)


우리 할머니는 말 수가 굉장히 적은 분이셨다. 좋다, 싫다, 괴롭다, 짜증 난다, 그 어떤 감정 표현도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시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지금 이 상황에 만족을 하시는지, 뭐가 드시고 싶으신지, 추측에 기댈 뿐 정확히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그럭저럭 만족스러우시면 빙그레 웃으시는 걸로 적절히 알아들어야 했고, 기분이 좋지 않으시다면 그 말 수 없는 분이 더욱 말이 줄어들고 마음의 동굴 속으로 깊이깊이 들어가 버리신다.  


그런 할머니와 손녀인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은, 거의 없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줄곧 엄마와 대화를 나누었고, 철이 든 시점부터 스무 살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에도 집에 돌아오면 할머니 방에 들려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문안 인사를 드릴뿐, 할머니께 먼저 말을 건 적도, 때로 할머니가 식탁에 앉아 계신다고 해서 곰살맞게 그 앞에 앉아 할머니와 시간을 보낸 기억은, 아무리 떠올려봐도, 없다.


그토록 쌀쌀맞았던 손녀는 할머니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신 그 해, 엄마, 아빠를 도와 할머니를 보살피면서 조금씩 생각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아흔두 살 되시던 해, 할머니의 기력은 눈에 띄게 약해지셨고, 그 전에도 자주 낮잠을 주무시긴 했지만 그 해 들어서는 한낮에 유달리 많이 누워계셨다. 평생 담배를 태우셨던 분이고, 식사 후에는 꼭 담배를 태우러 집 앞을 나가셨는데(엄마는 할머니의 흡연을 끝내 말리지 못하셨고, 이에 대해 내내 속상해하셨다.), 그즈음부터는 담배를 태우러 나가는 횟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 스스로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조차 힘들어하셨고, 결국, 할머니를 집 근처 요양원에 모시게 되었다. 병원 진단 결과, 오래 앓고 계시던 당뇨 증상에 더해 할머니 폐에 모양이 몹시 좋아 보이지 않는 혹이 보인다고 하였고, 아흔 살 노인에게 수술은 오히려 좋지 않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일단 '지켜보자.'라고 하셨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흘러 해가 바뀌자마자 너무나도 추웠던 1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조반을 드시고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계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만히 눈을 감으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1년여의 시간 동안 할머니와 가까이 시간을 보내면서 할머니의 환한 웃음을 보았고, 할머니의 정을 느꼈고, 할머니만의 화법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할머니 나이가 예순   태어난 우리 집의  손주이자  손녀인 나를 제일 예뻐하셨던 것도, 많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차조심하고, 길조심 ,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오면 된다고 여러 번 말씀드려도) 쇗대(=집 열쇠) 챙겼냐."라는 말씀만은  빼놓지 않으셨던 것도,  가족 식사 중에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트림 소리에 " 이제 시집은  갔다~"라는 할머니만의 유머러스함까지도. 할머니의 온몸에 기운이  빠져버려서 할머니와     있는  없던 그때서야 하나,  떠올랐던 것이다.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이었기에,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계시겠거니 했던 안이하고 무심했던 지난날의 내가 한탄스러웠다.


할머니를 떠나보낸 지 한참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이제야 철이든 손녀는 '나의 할머니'에 대한 작지만 소중한 추억이 기억 속에서 흩어져 없어지기 전에 이렇게 기록으로나마 남겨 두는 것으로 할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대신한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시던 때도 세상천지 붉은 빛이 선연한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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