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 속 너에게 전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너와의 시간을 떠올리면서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다가도 너의 웃는 모습 하나에 울다가 웃음 짓고, 가끔은 희미하게나마 기억 나는 너의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첫사랑을 막 시작하던 풋풋한 나의 모습이 생각나서 씁쓸하게 미소 지어보기도 해.
그때의 우리는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 마냥,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데도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흔한 데이트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너무 매몰되어서 서로를 향한 감정이 더욱 깊게 싹튼 것 같다. 입시를 준비하면서도 너의 얼굴을 힐끔거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너의 손을 어쩌다가 잡는 날이면 온 세상을 가진 듯 행복했다.
내가 너를 처음으로 좋아하기 시작한 순간이 생각난다. 입시가 두 달 남짓 남은 시기에 피곤한 눈을 비비며 버스 정류장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네가 나의 등을 한 손가락으로 톡톡 치곤, "잘 가", 라는 말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네모난 안경 아래에서 초승달 모양으로 접히는 눈에 순간 숨이 멎었다. 정확히 반대 모양으로 휘어지는 입꼬리가 예뻤다.
찰나의 설렘이 순식간에 호감으로, 호감이 애정으로 바뀌었다. 학원에서 너의 얼굴을 볼 때면 그 때 그 풋풋한 웃음이 겹쳐 보였다.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리고 왼손으로 힘을 주고 글씨를 쓰고 있는 때면 너는 미간을 살짝 찌뿌리곤 몇 시간이고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면접 준비를 할 때면 말을 살짝 더듬으면서도 미성도 저음도 아닌 살짝 허스키한 목소리로 진지한 말들을 내뱉는 모습이 멋있었다.
너는 내 첫사랑이었어. 그 전에 일 년 남짓 만난 사람이 있었지만 내가 너무 힘들었고, 그 사람을 만나고 나서 일 년 정도 되는 시간들이 나를 힘들게만 했고 행복한 기억은 떠오르지도 않았어. 너를 마지막으로 본 지 오 년도 더 되었어. 그런대도 불구하고 너의 웃는 얼굴만은 선명해. 네가 나에게 했던 사소한 행동들 하나 하나가 아직도 생생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흔한 클리셰를 믿지 않았어. 그때의 네가 나의 첫사랑이 될 거라고도 믿지 않았어. 어린 나이의 소년 소녀가 만나서 풋풋하게 몇 달 만나다가 헤어지는, 진짜 사랑을 알기 전에 지나는 과도기 같은 시기인줄로만 알았어. 내가 진짜 사랑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이 누가 되었든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스무 살도 먹지 않은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장 힘들 때 별 말 없이 내 옆에 와서 나를 가만히 안아주었던, 나를 대신해서 울어주었던 너의 모습이 선명해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학교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같이 합격한 후 서로가 서로를 캠퍼스에서 마주하는 게 로망이었다. 모두가 우리는 붙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모두가 떨어져도 너희만은 붙을 게 확실하다고 자신에 찬 표정으로 모두가 말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었다. 너와 내가 함께 그려나갈 미래를 상상했다. 서로의 어릴 때의 순수함과 나이를 먹고 나서의 노련함이 공존하는, 내가 줄곧 꿈꿔왔던 연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순식간에 모든 게 끝이 났다. 너는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그 학교에 붙었으며, 나는 떨어졌다. 면접을 볼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비참했다. 생애 처음으로 진심으로 원했던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에 밤낮 안 가리고 펑펑 울었다. 한 시간 전이면 괜찮던 기분이 몇 시간 뒤면 손바닥 뒤집듯 급격하게 바뀌면서 웃던 얼굴은 눈물로 얼룩진 못난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이 슬픔에 평생토록 잠식되어서 가라앉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는 순간 다시 기분이 치솟으면서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의 흔적이 깜빡이며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거 알아? 너를 만나고 나서 이상형이 웃는게 예쁜 사람으로 바뀌었어. 웃을 때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휘어지는 사람, 입꼬리가 위로 치솟으면서 입이 완벽한 반달 모양을 만드는 사람이 이상형이 되었어. 그때 그 설렘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어. 아마도 내가 너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때가 와도 그 때 그 웃음은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