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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제남 Mar 26. 2024

운동권청산? 과거청산의 필요 이유!

결혼지옥... 부부간의 과거청산! 운동권은 청산대상이 아니다.

어제저녁 mbc에서 오은영박사가 상담하는 '결혼지옥'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대화불통으로 오해가 해소되지 않아 억울함이 쌓여있는 70대 아내와 남편의 이야기이다.

화면 속의 남편은 아내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아내는 속이 답답해서 화가 쌓여간다.

진행과정에서 남편은 접차 소통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아내와 대화하기 시작한다.

아내는, 남편의 "당신이 그런 거 아닌 거 알아. 내가 미안하다. 사과한다"라는 말 한마디에 눈물을 터뜨린다.

그리고 아내는 마음속에 쌓였던 억울함이 반 이상 순식간에 사라진 거 같다고 이야기한다.

40년 이상 차곡차곡 쌓여있던 억울함이 남편의 짧은 사과 한마디에 이렇게 눈 녹듯이 사라진다.

부부는 앞으로 남은 인생은 행복하게 같이 잘 살아보자며 마무리한다.


우리 부부도 맞벌이 부부로 두 아이를 키우며 꽤나 많이 싸웠었다.

똑 같이 직장 생활하고 돈도 같이 버는데 나는 늘 육아와 가사를 거의 혼자 도맡아서 했다

물론 남편은 늘 합당한 이유나 변명을 내세웠다.

"내가 노느라고 그런 거냐? 회사일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으냐?"

주중에는 초과근무와 회식으로, 주말에는 주중에 쌓인 피로 때문에 종일 잠 속에 빠져있기 일쑤였다.

나는 맞벌이를 하면서 오롯이 거의 혼자 육아를 전담하는 거 같아 부당하고 억울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더 억울한 점은 남편이 이 사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논쟁은 두 아이가 모두 성장하여 독립한 얼마 전까지도 이어졌다.

남편의 주장은 최소한 40% 이상은 자신이 육아와 가사를 했다고 대내외적으로 주장했다.

남편과 사소한 문제로 말싸움이 시작되면 이 문제가 나중에 꼭 등장했고 인정하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아이들도 잘 성장해서 독립한 마당에 그냥 무시하고 넘길까 싶지만 쉽지 않았다.

이런 남편이 너무 괘씸해서 '꼴도 보기 싫다'는 마음이 들곤 했다.

작년 어느 날, 남편과의 대화 내용..


남편: 도대체 왜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는 거지? 이미 지나간 일인데 말이야

        애들도 잘 커서 잘 생활하고 있잖아.

나: 그럼 왜 우리나라가 일본한테 과거 침략을 사과하라고 하는 거지? 이미 지나간 일인데.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고.

     과거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 아닌가?

     나는 부부간의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남편:......


일본과 비유하여 한 이야기를 듣고 남편은 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무 말 없이 방으로...

그리고 잠시 후 방에서 나온 남편이 겸연쩍은 얼굴로 한 말은,


남편: 그래 알았어. 내가 인정할게. 당신이 더 육아하느라 고생한 거.

나: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남편:  1:9 정도?

나: 인정해 줘서 고마운걸


이것이 과거청산이 필요한 진짜 이유이다.

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거 나치시대의 잘못을 수없이 사과한다.

참혹했던 현장과 기록을 보존하며 다시는 과거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발전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일부 극우 역사학자나 정치인들도 이런 일본정부의 논리에 적극 동조한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친일세력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결과이다.


요즘 국힘과 한동훈은 툭하면, 운동권청산을 부르짖는다.

우리 부부는 60년대 중반에 태어난 우리 부부는 80년대 학번이다.

나는 저들이 운동권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싶다.

영화 '1987'에서 그려지는 그 시대에 우리 부부는 소위 '운동권'으로 대학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냈다.

영화 1987 속에서 그려지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소위 586세대의 자화상이다.

그들은 그렇게 젊은 시절 학생운동,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을 하느라 생활이 매우 불안정했었다.

운동권에 투신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 안정적인 삶을 꾸려갈 때,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투신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회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시에 많은 운동권사람들이 감옥에 가고, 의문사를 당하기도 하고 투쟁과정에서 열사가 되기도 하였다.

나 또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구속되어 집행유예형을 두 차례 받았었다.

국립사범대에 입학한 나는 졸업을 3년 반이나 늦게 하게 되어 친구들과 달리 의무발령을 받지 못했다.

1992년부터 교사임용고시가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임용교시를 봐도 데모를 한 전력이 있는 사람들은 임용고시에 붙기 어러운 시절이었다.

92년에 결혼할 때 빚을 얻어 셋방을 구했다.

그리고 나는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수생입시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

당시 운동권들은 같은 조건의 동료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수배와 투옥 등의 긴장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심리정신과적인 병을 얻는 경우도 많았다. 가까운 선배도 그 병을 이기지 못해 폐인처럼 살다가 일찍 생을 마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민주화운동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여전히 그 아픔 속에 살기도 한다.

그나마 나는 뒤늦게 임용고시를 봐서 교사생활을 하게 되어 소위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


운동권출신 중에 일부는 정치적으로 성공? 유명세?를 탄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으면 그들 개인을 비판하면 될 일이다.

그들은 운동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운동권을 대표한다고 할 수도 없다.

독립운동 당시 많은 이름 없는 민중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뒤에 그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운동권은 청산될 대상이 절대 아니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이 정도라도 민주화가 가능했다.

한 번도 자신을 희생해서 민주화를 위해 싸워보지 않은 자들이 운동권청산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희생했던 사람들을 찾아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표하는 것이  그들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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