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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석맘 지은 Oct 19. 2020

엄마표 영어의 한계

엄마표로 죽어라 시켜봐도

  퇴근하자마자 큰 아이가 뛰어와 자랑했다. 

  “엄마! 원어민 선생님이 칭찬을 해주셨어! 내 발음이 진짜 좋대!”

  처음으로 영어 과목이 포함되는 초등학교 3학년. 영어 시간에 큰 아이는 선생님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고 했다. 반에서 선생님 질문에 답하는 아이가 딱 2명이라고 했다. 그때까지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스스로 주눅 들어 있었는데 모처럼 자랑스럽게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기 어려운 수영,  발레, 미술, 글쓰기 외에는 학원 보내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다. 이미 엄마가 직장에 다니고 있어 학원으로 돌리는 판에 학습을 위한 학원까지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신랑도 나도, 공부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소화해도 충분하고,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학원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학원에서 배운 공부를 학교에서 반복하면 더더욱 흥미가 떨어지겠지 싶었다. 그 덕에 반 아이들은 모두 아는내용을 혼자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의 공부 자존감이 떨어지리라는 생각은 못했다. 엄마 탓이었다. 


  다만, 영어만큼은 신경을 썼는데 영어는 언어이기에 배우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특히 아이들이 지속할 수 있으려면 꼭 재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표 영어가 유행하고 있어 관련된 책을 여럿 읽어봤다. 그중 나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던 내용이 있었는데, 공부잘 하는 아이는 초등학교 때 영어를 떼고 중, 고등학교 때 다른 아이들이 영어공부에 시간을 뺏기는 동안 다른 과목 공부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쉬는 시간에 영어 소설책이나 외국 영화를 보며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정말 환상적인 플랜이었다. 영어 과목 부담만 덜어 주어도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책에서 추천하는 DVD와 영어책을 도서관에서 많이 빌려보고 사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한국말이 나오지 않으면 거부하고 보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아주 유치한 수준의 DVD를 보면서도 깔깔 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TV를 보여주지 않아 왠만한 유치함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순수함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발음을 위해 음원이 함께 딸려 있는 영어책이 많이 필요했는데 우리가 사는 세종시는 물론 인근 대전까지 나가 여행하듯 도서관 투어를 하며 책을 빌리곤 했다. 

  그런 정성 때문이었던지 이내 스무 장이 넘고 글밥이 제법 있는 책까지 읽어냈고 언젠가 갑자기 엄청난 발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신동인가, 너무 신기해서 녹화까지 해두었다. 지금 다시 보면 발음이 좋은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원어민 같게 들렸다. 일일이 손가락으로 단어를 알려주지 않았어도 내용을 이해하기도 해서 더 신기했다. 


  문제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영어가 공부하는 과목이 되는 나이대부터 읽을만한 재미있는 책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아무래도 많은 아이들이 영어학원으로 가게 되면서 그 또래가 읽을만한 책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막상 발견한다 해도 열어보면 학습용으로 제작되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재밌고 신나는 유아용 영어 동화 단계에서 갑자기 무채색에 그림도 몇 개 없는 지루한 책 단계로 수준이 점프해버렸다. 중간 단계에서 읽을만한 책이 없었다. 또래 아이들이 신나게 읽을 만한 살아 숨쉬는 책을 찾기가 어려웠다. 학교, 학원 영어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저쪽으로 건너가야 되는데 다리가 끊어진 절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때 꿈꾸었다. 영어권 나라에 가서 현지 아이들이 즐겨보는 책을 마음껏 읽히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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