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나이, 국적을 넘어선 우정 이야기
아줌마가 되면서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 아이를 길러내며 살림을 경영하다 보니 생활력이 강해졌다. 더불어 친화력도 향상되었다. 오지랖이 넓어지고 누구와도 쉽게 말하게 되었다. 누구와도 금방 친해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다.
외국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나이나 비슷한 경험이 친구 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감정을 공유하고, 내 편이 되어줄 때 비로소 친구가 된다.
하지만 하와이에서는 달랐다. 개인적인 공간과 적당한 거리가 중요했다. 힘들 때 위로받고 싶었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마치 자석처럼 밀려나는 기분도 들었다.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아줌마 특유의 공감 능력과 밝은 리액션, 그리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성격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20대처럼 넘치는 시간과 체력은 없었지만, 웬만한 일은 웃어넘기는 여유가 있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잴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남녀노소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크리스의 생일 파티 초대
어학원 수업 중에 하와이대학교 학생과 그룹 프리토킹 시간이 있었다. 크리스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였다. 그는 키 190cm의 영화배우 같은 외모를 가졌지만, 수줍음이 많았다. 도도하다고 오해를 살 만큼 말수가 적었는데, 알고 보니 섬세하고 친절한 친구였다. 나는 아줌마답게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잘생겼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덕분에 모두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크리스는 인스타그램을 알려주며 어려운 숙제가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연락도 주고받고 같은 그룹이 될 때마다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하면서 더 친해졌다.
어느 날, 그는 첫 번째 성년 생일이라면서 파티 초대장을 건넸다. 미국 영화에서 보던 흥청망청한 파티일지 걱정하기도 했지만 기우였다. 가족과 친구들이 모여 진심으로 축하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참석한 나도 어학원 친구들과 축하하는 시간을 보냈다. 미국 성년식 파티 문화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0대 단짝 친구, 데이빗
어학원에서 단짝 친구는 한국인 대학생 데이빗이었다. 그는 군대를 다녀와 졸업을 앞두고 어학연수를 온 20대 청년이었다. 처음 점심을 같이 먹을 때 서브웨이에서 척척 주문을 하는 모습이 우러러 보였다.
한국에서 40대 아줌마와 20대 남자 대학생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직장 막내보다 어린 친구였다. 그러나 하와이에서는 가능했다. 나이와 성별을 초월한 우정이었다. 그 친구와 매일 아침 학교 스타벅스에서 만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숙제를 하고, 인간관계와 졸업 후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생각이 깊고 반듯했고, 나이가 많은 나도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 친구 덕분에 어학원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완벽해 보였던 친구, 치에
어학원에서 가장 영어를 잘했던 일본인 친구 치에. 약사였던 그녀는 늘 차분했고, 발표도 잘했으며, 날씬하고 예쁘기까지 했다. 그래서 오히려 처음엔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가 전혀 들리지 않아 좌절하던 날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가던 길, 앞서 걷는 치에를 보고 용기를 내어 불러 세웠다. "커피 한잔할래?"
그녀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어. 영어가 잘 되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하나도 안 들릴 때가 있더라구.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제니(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녀도 시간이 지나서야 지금의 실력이 된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용기가 났다.
치에와는 점점 더 친해졌다. 그녀는 연애 이야기, 결혼 계획까지 나눌 정도로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나중에 그녀의 남편이 된 사람이 나와 같은 일본어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웃음이 번졌다. 나와 남편이 모두 치에에게 숙제를 물어봤다니. 세상은 좁고, 인연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연락을 이어오면서 일본에서도 가족을 만나 우정이 더 돈독해졌다.
하와이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
친절한 콘도 매니저 할 아저씨 부부, 선생님 같은 샐리 언니, 아이들을 사랑해 준 이웃 프랑스 할머니 셀린, 피아노 실력을 칭찬하던 중국인 제니스 할머니, 아이들의 든든한 지지자 이나 선생님, 그리고 내 블로그를 응원해 준 지나 씨까지. 그들이 있어서 하와이 생활이 외롭지 않고 행복으로 가득했다. 이런 소중한 인연들이 있어, 나의 하와이는 더욱 특별했다.
하와이만큼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은 따뜻하고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