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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에서 중학생을 대하는 자세

하와이에서 배우는 사춘기 자녀 교육법

by 만석맘 지은

갑작스러운 중학교 입학, 설렘보다 두려움


‘Dear Families’라는 인사말로 시작하는 엽서가 도착했다. 큰 아이가 진학할 중학교에서 보낸 등록 안내 엽서였다. 주황색 물고기와 산호가 그려진 하와이 우표가 사랑스러웠다. 앙증맞은 그림 덕분에 등록 절차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다니.

큰 아이는 한국에서 5학년까지 마쳤다. 하와이는 한국과 달리 12학년 제였다. 1월부터 2학기가 시작되었고, 6학년부터 바로 중학생이었다. 아이와 나는 아직 중학교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아, 6학년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5학년 2학기에 입학했다.

한 학기뿐인 마지막 초등학교 기간은 금방 지나갔다. 한국에서는 아직 초등학생일 텐데, 갑자기 중학생이 되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춘기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색다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학교 등록은 오전에 마쳤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오후 5시 30분부터 7시까지 진행되었다. 일하는 부모들도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한 시간이었다. 부모와 아이들이 간단히 요기할 수 있도록 피자와 쿠키, 스낵도 준비되어 있었다.

단상에서는 교장 선생님과 여러 교사들이 차례로 인사하며 연설했다. 하지만 겨우 6개월 배운 영어 실력으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머리는 멍하고 어깨는 뻐근했다. 저녁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좋았지만, 지루함에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사춘기 자녀를 이해하는 법


무료한 시간이 지나고, 아름다운 여선생님이 강단에 올랐다. 다른 교사들과 달리 또렷한 목소리가 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자신을 학교 카운슬러라고 소개하며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강의 주제는 ‘청소년기 동안 집에서 자녀를 돕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시간과 방식으로 자랍니다.”

발표 자료의 첫 문장부터 놀라웠다. ‘다름’을 인정하다! 이어질 내용이 더욱 기대되었다.

“청소년기는 분명 가르치기 힘든 시기예요. 그들은 어떤 것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고집불통이고 스스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부모와 선생님이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도 기대를 놓아서는 안 돼요.”

어학원 수업시간보다 더 집중해서 들었다. 부모들의 공통 관심사는 역시 사춘기 아이들이었다. 내 아이지만 사춘기라는 베일을 쓰면 이해하기 어려웠다.

카운슬러는 오랜 연구 끝에 얻은 결론이라며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아이를 잘 이해하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했다.

“부모님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아이의 선생님과 카운슬러, 학교로부터 도움을 받으세요.”
“아이들은 하루는 불쑥 성장했다가도 다음 날이면 아기가 됩니다. 종종 걷는 방법도 잊어버리고, 아기처럼 우는 방법도 기억해 냅니다. 아이들은 사춘기를 싫어하고,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어합니다. 사랑하기 어렵고, 가르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세요, 하나가 되세요.”

아이가 부모보다 사춘기로 인해 더 혼란해하면서도, 그 혼란을 부모에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부모는 어렵더라도 아이 곁에서 함께하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춘기 자녀를 위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가 실천해야 할 것들


“부모의 신발에 아이를 맞추지 말고, 아이의 신발에 부모를 맞추세요.”

“아이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말하기보다 귀 기울여 들으세요. 실수할 수 있음을 가르치되, 삶이 항상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세요. 권리와 의무는 함께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세요. 아이의 관심사와 읽는 책, 접하는 정보에 관심을 가지세요. 아이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세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춘기라는 과정을 함께 즐기세요.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갑니다.”

“아이들은 더 많은 음식과 휴식, 잠이 필요해요. 많이 자게 하세요. 좋은 아침을 먹이세요. 과도한 스케줄을 잡지 마세요. TV와 게임으로부터 보호하고, 세요. 운동할 수 있도록 하세요. 아이의 선택에 이유가 있다면 존중하세요. 그리고 자주 대화하세요.”


사춘기를 지켜보는 부모의 자세


학교 강의를 듣고 이렇게 충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외부 초청 강사가 아닌, 아이가 다니는 공립학교 상담 선생님의 강의였다. 이런 교육이 일반적인 공립학교 강의라니!

한국에서는 중학생들이 학원으로 내몰리고, 잠을 줄이며 공부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하와이 학교에서는 사춘기는 원래 어렵지만 곧 지나갈 것이며, 부모와 학교가 함께 지켜봐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저하게 아이 중심이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아이의 성공을 위해 무시해 왔던 가장 중요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춘기 중학생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 학교와 상담 교사, 부모가 삼각 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는 강렬했다. 한국에서도 학습 도구로서의 삶이 아닌, 인간으로서 성장할 기회를 보장받는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미국 학교에서 흔히 거론되는 문제는 마약, 총기, 성문제였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학교가 명확한 기준을 세워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춘기, 함께 지나가는 시간


명심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사춘기를 건강하게 보내는 것이 우선이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집중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제 아이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도 화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이가 흰자위가 보이도록 째려봐도, 더 이상 마음 상하지 않기로 했다. 화난 괴물 같은 겉모습 뒤에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가 있음을 믿기로 했다.

이 또한 지나간다. 그날 밤, 아이의 밝은 미래를 그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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